새로움의 시작... 진화는 옳은가?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 1세대는 오토뷰 로드테스트팀과 제법 함께 어울렸던 모델이다. 그란투리스모는 서킷 계측도 진행하며 그 성능을 기록했고 강원도의 멋진 고갯길도 질주했다. 그란카브리오는 무더운 여름날 서울에서 떠나 멋진 경광의 남해 바다를 눈에 담을 수 있게 해줬다. 그날 남해바다가 그란카브리오에게 보여줬던 보랏빛의 석양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새로운 세대의 그란투리스모의 한국 상륙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2023년 글로벌 출시됐지만 국내 시장에는 올해 공개됐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던 마세라티. 2세대 그란투리스모를 마세라티는 어떻게 다듬어냈을까?
볼륨은 강조하고 디테일은 섬세하게
전반적인 외관 디자인 요소를 전 세대 모델로부터 이어받아 새로운 맛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디자인의 익숙함 덕분에 2세대 모델을 처음 보는 사람이더라도 18여년동안 쌓아둔 이미지로 그란투리스모라는 이름을 쉽게 떠올릴 수 있게 한다.
헤드램프와 리어램프의 변화가 가장 눈에 띈다. 모두 가늘고 길게 변화하면서 우아한 외모로 가꿔진 모습이다. 여전히 램프 내부의 디테일은 요즘의 디자인 트렌드보다는 간결함을 유지해 차체 외관에 정성껏 만들어낸 곡선이 아름답게 도드라지도록 양보한다. 전반적으로 전 세대 모델이 갖춘 디테일 하나하나가 큼직하고 넓었던 반면 현 모델은 세심함이 강조되어 다소 여성스러운 디자인 흐름이 느껴진다.
범퍼와 보닛의 연결은 보다 입체적이다. 라디에이터 그릴 내부로 타고 들어온 공기를 보닛의 양 측면 라인으로 흐르도록 설계해 고속 주행 안정성을 고려했다. 또한 이 디자인 요소로 하여금 좌우 펜더의 볼륨은 보다 강조되어 보인다.
측면에는 세개의 에어벤트가 자리한다. 이 또한 전 세대 디자인을 그대로 계승해온 것. 이번 세대 디자인에서 마음에 드는 요소는 도어의 위치인데 이전 세대 모델은 도어 길이가 긴 편이었음에도 후륜 펜더까지 남는 공간이 많아 다소 허전했다. 반면 현 세대 모델은 도어 라인의 위치가 적절한 시점에 맞춰져서 비율이 보기 좋아졌다.
후면부도 앞서 느낀 인상과 같은 결이다. 다소 과격함이 느껴졌던 비율을 가진 트렁크 리드 스포일러와 리어램프가 전 세대 모델의 특징이었다. 현 세대 모델은 보기에 더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비율을 갖췄다. C필러의 마세라티 앰블럼은 카브리오 모델이 가질 수 없는 쿠페만의 디테일 요소다. 후면부의 트렁크 리드가 가지는 넓은 곡선은 펜더의 볼륨감을 높인다. 쿼드 머플러, 디퓨저 요소도 입체감 있으면서도 간결하다. 결과 현 세대 모델의 디자인은 전 세대를 압도한다.
아날로그 시계를 돌려주세요
1세대 탄생으로부터 무려 18여년이 흘렀다. 18여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은 운전석에 앉으며 곧바로 알 수 있다. 스로틀을 밟을때마다 바삐 움직이던 아날로그 계기판의 바늘은 이제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채워졌다. 대시보드 가운데에 자리한 아날로그 시계도 디스플레이로 표현된다.
스티어링을 중심으로 수많은 버튼들이 자리하며 복잡함을 느꼈던 과거 그란투리스모의 운전석이지만 이제는 한층 간결해졌다. 물론 아날로그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마세라티 엠블럼이 배경으로 새겨진 시계 정도는 아날로그로 남겨뒀다면 익조틱 GT 모델로서 고급감은 더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마세라티 가치를 상징했던 아이콘을 무척 쉽게 도려냈다는 것이 의아했다.
변속 레버 대신 버튼
1세대 그란투리스모의 기어 레버는 자동 변속기임에도 제법 무게감을 갖춰 높은 성능의 기계를 다룬다는 인상을 전해왔었다. P부터 D까지 기어 레버를 내릴 때 기계적인 감각은 주행 시작에 앞서 운전자에게 긴장과 기대감을 가지도록 했다.
이제 기어 레버는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에 존재하지 않는 부품이다. 그렇다면 기어 변속은 어떻게 할까? 중앙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 하단에 수평으로 줄지어 있는 4개의 버튼으로 변속기를 제어하게 된다. 그렇다면 누르는 감각이 특별하냐고? 그렇지 않다. 스티어링에 자리한 크루즈 컨트롤 활성화 버튼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감각이다.
페달은 그대로
브레이크, 스로틀 페달은 여전히 알루미늄으로 갖춰 반갑다. 하지만 1세대 모델처럼 브레이크 페달의 면적이 넓지는 않다. 무게감도 보다 가벼워졌다. 이전 세대 모델은 시대를 공유했던 페라리 모델(F430 등)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묵직한 페달 감각이 고조감을 한껏 이끌어냈었다. ‘지금 마세라티를 타고 있지만 사실은 페라리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는 그런 이미지를 운전자에게 은연 중에 심어줬었다.
정답이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러워진다. 현재 행보로 보면 스텔란티스의 마세라티는 대중성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마세라티 정도면 대중화가 필요한가?
한때 마세라티의 엔트리 모델 기블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었다. 그런데 그 성공 신화의 배경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블리가 좋은 모델이라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은 기블리로 마세라티의 이미지를 사간 것이다. 그동안 마세라티가 차곡이 쌓아 올리기만 하고 대중들에게는 감췄던 ‘신비로운’ 이야기들 말이다. 기블리는 그 이미지를 마세라티 탄생 이래 가장 저렴한 가격에 사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물은 언젠가 마르기 마련이다. 더 이상 소비될 이야기들이 없다면 가치는 인정받기 어렵게 된다. ‘마세라티는 그때 굶었더라도 자리는 지켰어야 했다’는 것이 지금에서야 알 수 있는 교훈이다.
마세라티를 탔지만 푸조가 들린다
스텔란티스 그룹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을 채용한 결과, 그룹 내 차종들과 많은 요소들이 공유된다. 예를 들면 ADAS 또는 안전 경고음 등은 푸조의 것과 흡사하다. 페라리를 제외한 람보르기니도 이와 같은 요소가 존재한다.
사운드 시스템은 소너스 파베르(Sonus faber)가 담당했다. 자동차 제조사와는 마세라티를 비롯해 파가니, 람보르기니와 협업했다. 공통점이라면 이탈리아 제조사들이면서 모두 엔진 배기 사운드가 탁월하다는 것이다.
순수 전기 모델인 폴고레의 정숙성은 인증 노면 기준 60.8dBA, 내연모델인 트로페오는 그보다 1dBA 높다. 국산 준중형 세단들보다 높은 소음 수준이다. 곧 의미는 다음과 같다. 결국 고속주행을 펼치면 주행 소음은 더욱 커지기 마련, 주행 소음으로 인해 볼륨을 점차 높이게 될 것이므로 사운드 시스템의 퀄리티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큰 의미는 없다.
다만 사운드 시스템은 저음역보다 중역이 돋보이는 음향을 제공하므로 주행 소음이 발생하는 와중에도 선명한 음을 들려주려는 의도가 돋보인다. 웅장하게 울리는 장르에 대한 표현력은 그다지 높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인테리어 트림
전 세대 모델들은 대체로 단일 색상의 가죽 소재를 인테리어에 적용했다. 60-70년대 당시의 고급 모델들이 행했던 인테리어 컨셉을 재현해본 것이다. 현 세대는 두가지 컬러의 가죽으로 세련된 이미지를 표현했다.
플라스틱의 존재도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인테리어 트림은 가죽으로 덮였고 카본 디테일도 더해지며 실내를 화려하게 채웠다. 대시보드에는 의외의 소재도 쓰였다. 바로 우드 트림이다. 송풍구를 따라 수평으로 뻗었는데 과거 마세라티의 기함급 모델이었던 콰트로포르테(Quattroporte)에서나 볼법한 트림 소재다. 우드 트림은 실내에 따스함을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시트 헤드레스트 및 안전벨트 클립에는 마세라티 앰블럼이 새겨졌다. 플로어 매트에는 트림명이 자수로 놓인다. 조수석 송풍구 하단에는 모델명 엠블럼이 위치한다. 엠블럼이 놓여도 괜찮은 안전한 위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멋진 요소임은 틀림없다.
완벽해진 스티어링 시스템
그란투리스모의 등장 시기는 2007년이며 카브리오는 2010년 데뷔했다. 2007년 즈음을 떠올려보면 당시는 전자식 스티어링 시스템과 유압 스티어링 시스템이 혼재하던 시기였다. 마세라티는 2017년 그란투리스모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내놓으면서도 유압 스티어링 시스템을 고수했다.
유압 시스템을 탑재했던 당시 스티어링 감각은 이상적인 편은 아니었다. 스티어링은 두터운 무게감을 가졌으며 조향 초기 영역은 고성능 GT 모델임을 감안했을 때 날렵하다는 인상을 주지 못했었다. 덕분에 차량을 한계에서 제어하는 과정에서 운전자가 구슬땀을 흘릴 정도로 넓은 스티어링 조작 각도를 요구했다.
과거에는 그랬지만 현재 모델에는 전자식 스티어링 시스템이 탑재되며 스티어링에 대한 응답과 조작에 필요한 각도 그리고 무게감까지 모든 것이 달라졌다. 무척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스티어링은 이제 섬세한 각도의 조작에도 반응하며 차체를 움직인다. 코너에서 많은 조타각도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무게감도 덜어지며 조작감이 경쾌하다. 과거의 유압 시스템을 그리워할 이유가 없다.
격정을 넘어선 안정감
서스펜션의 성격 변화도 새로운 세대 그란투리스모의 성숙함을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 세대부터 에어 스프링을 탑재하며 더욱 호사로운 일상 주행이 가능하다. 과거 그란투리스모는 스포티한 성향이 무척 본격적이었다. 제법 날카롭고 단단했기에 익숙하지 않은 경로는 대다수의 슈퍼카들의 일상이 그렇듯 일단 피하고 보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에어 스프링은 날카로운 요철 상쇄감을 한층 뭉툭하게 다듬는 역할을 해냈다. 더 이상 정비되지 못한 도로의 요철은 운전자에게 불안한 감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에어 스프링은 차고 조절이라는 부차적인 편의성도 제공한다. 본격적인 GT 쿠페로서 활동 범위가 과거 모델보다 확장됐다. 다만 차체의 강성감은 다소 부족하게 느껴져 이전 모델 대비 진일보를 이루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AWD, 마세라티는 이제 쉬운 차
1세대 그란투리스모의 V8 자연흡기 엔진은 날카로운 음향이 매력적이었다. 고회전 영역에서 좋은 성능을 발휘하는 만큼 스포츠 주행에서 높은 RPM 영역을 유지하는 것이 만족도가 높았다. 다만 출력을 남김없이 후륜 축에 전달하려는 타이트한 기계식 디퍼런셜 탓에 스로틀 페달 위에 올려진 오른발은 인내심이라는 미덕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오른발의 인내심은 슈퍼카를 운전하는 드라이버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소양이었다. 적어도 과거에는 트랙션 컨트롤과 자세제어장치도 스마트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타이어 성능이 영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의 그란투리스모가 그랬듯 높은 배기량이면서 후륜 구동을 고수했던 구성의 모델이 대다수였다.
오늘날은 상황이 다르다. 고성능, 고출력 모델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 AWD 구동 방식을 택하면서 타이어의 성능과 전자제어의 섬세함도 불과 몇 년사이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고성능 모델과 일상을 함께하는 대다수의 운전자들에게는 축복 같은 일이었다. 타이어만 잘 갖춘다면 어느 시기에 운전해도 차량이 품고 있는 출력이 왈칵 쏟아지면서 차량 자세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그란투리스모도 AWD 구동을 선택했다. 만약 마세라티의 의도가 모델의 대중화라면 성공이다. 차체가 움직이는 거동 초입은 여전히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다. 날카로운 움직임으로 차체 회전이 극적으로 많아지는 순간, 흐트러진 자세를 고칠 필요가 있다고 운전자가 느낄 즈음 ESC ON/OFF와 무관하게 전자제어가 개입해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코너 탈출 부근에서 가속 페달로 차체를 이끌어 나갈 때 구동 배분은 후륜에 집중된 감각이 들도록 한다. 하지만 가속 페달을 더해 후륜의 미끄러짐을 내심 기대해도 전륜에 곧장 구동을 나누고 일정한 언더스티어를 만들어내며 운전자가 움직임을 읽기 쉽도록 난이도를 낮춰버린다.
AWD는 주행 성능 향상에 효과적이다. 한편 마세라티라는 이름 아래에서 AWD 때문에 야성적인 주행 매력이 가려진 것은 아닐까? BMW M이 동일한 이유로 2WD 모드를 따로 두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마세라티도 여력이 된다면 2WD 모드 도입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폴고레와 트로페오
가속 성능 계측을 위해 런치 컨트롤을 작동시킨다. 제조사 별로 런치 컨트롤 진입 방법이 다른 경우가 있다. 대다수의 모델들은 대체로 간단한 편이다. 주행모드를 스포츠에 두고 브레이크 페달을 왼발로 꾹 누른 상태에서 스로틀 페달을 끝까지 누르면 계기판에 ‘Launch control’ 메시지가 출력되면 성공이다.
페라리와 마세라티는 다소 독특하다. 페라리는 3개의 기어 레버 중 L 레버를 당기면 런치 컨트롤 모드에 진입하며 ‘삐-‘하는 비핑음을 들려준다. 마세라티는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정차 상태에서 양쪽 기어 패들을 당기고 있으면 런치 컨트롤을 활성화하겠냐는 메시지를 계기판 디스플레이 왼편에 띄운다. 오른쪽 페들을 당기면 ‘Yes’라는 대답을 차량에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디스플레이 왼편에는 브레이크 페달의 입력양을 ‘바 그래프’에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브레이크 페달은 초록색 바가 채워질 만큼 밟아야 한다. 그리고 스로틀 페달을 끝까지 밟아 엔진을 깨운다. 이제 브레이크 페달만 놓으면 런치 컨트롤이 시작된다!
마세라티에 의하면 그란 카브리오 폴고레는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불과 2.8초만에 가속할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의 실제 계측 기록은 3.06초로 제원에 도달하지 못한 결과가 확인됐다. 200km/h까지는 10.02초만에 가속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폴고레에게는 제원 수치와 비교가 큰 의미는 없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순수 전기 모델 중 가장 빠른 컨버터블 모델이기 때문이다. 폴고레의 최고출력은 778마력, 최대토크는 137.66kgfm에 달한다.
내연기관 모델인 그란투리스모 트로페오는 페라리의 자연흡기 V8 엔진을 떠나보내고 마세라티가 직접 개발한 네튜노 V6 3리터 트윈터보을 탑재했다. 최고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66.28kgfm으로 전 세대의 MC 스트라달레보다 더 강력한 엔진을 갖게 됐다. 제원 기록은 0-100km/h 3.50초로 가속능력은 폴고레에게 뒤쳐진다. 실제 계측 기록은 3.60초를 기록하며 제원 기록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폴고레보다 제원 기록 편차는 더 좁았다.
내연 vs 전동
이제는 제동성능을 확인할 차례다. 전 세대 그란투리스모 스포츠는 34.38m의 준수한 기록을 세웠던 바 있다. 아마도 독자들 대부분이 제동 성능은 그란투리스모 트로페오가 폴고레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할 것 같다. 사실 폴고레와 트로페오 사이의 무게 차이는 무려 542kg가량 차이가 있다. 트로페오가 가볍기 때문에 두 모델이 좋은 제동 시스템을 잘 갖췄다면 물리적으로 트로페오가 유리한 구성을 가진다.
차는 정말 타봐야 알 수 있다. 스펙만 가지고는 차를 가늠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안다고 착각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트로페오는 전륜 265/30ZR20, 후륜 295/30ZR21 사이즈의 굿이어 이글 F1 슈퍼 스포츠이 장착됐다.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4S, 콘티넨탈 스포츠 콘택트 7급의 고성능 타이어다. 이 조합의 기록은 34.18m로 확인됐다. 전 세대 모델보다 더 짧게 멈춰설 수 있다.
폴고레는 트로페오와 동일한 사이즈지만 타이어는 피렐리 피제로 PZ4 일렉트(ELECT)가 장착됐다. 제동 시험 결과 기록은 33.67m로 가벼운 무게의 트로페오를 압도했다. 폴고레가 무게가 무거웠음에도 제동 성능이 좋을 수 있었던 것은 두가지 경우로 추측할 수 있다.
첫번째는 무게 배분의 이점이다. 폴고레는 48.98%의 전후 배분율을 갖춘 반면 트로페오는 52.14%로 다소 전륜 축에 치우쳐진 배분을 보였다. 제동은 전륜 축이 주로 많은 부하를 견뎌내지만 후륜 축의 기여를 무시할 수 없다. 폴고레가 제동할 때 후륜 축의 제동 기여도가 트로페오 대비 높았던 점이 제동 거리를 단축할 수 있던 이유가 아닐까 예상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타이어의 성능이다. 피렐리의 전기차 사양 타이어가 종방향 접지력에 특화되어 제동했을 때 우수한 성능을 발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폴고레는 트로페오 대비 횡방향 접지력에서 만족할만한 성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발진가속, 제동성능 모두 폴고레의 승리다.
한편 무대를 핸들링 코스로 옮기면 트로페오의 압도적 승리다. 폴고레는 기존 내연기관의 엔진룸과 변속기, 프로펠러 샤프트, 연료탱크 등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가능한 낮은 위치에 배터리 팩과 모터를 배치했다. 하지만 현실의 물리엔진은 솔직하게 작동한다. 폴고레는 슬라럼에서 회전 관성이 점차 붙어가는 현상을 확인했다. 반면 트로페오는 상대적으로 가뿐한 움직임이다.
횡가속도에 대응하는 타이어의 역량도 트로페오의 굿이어 이글 F1 슈퍼스포츠가 한 수 위에 있다. 코너에서의 타이어 접지력이 워낙 강한 나머지 리어 타이어를 미끄러뜨리는데 실패했다. 실패 원인에는 타이어가 주요했지만 코너링 상황을 기가막히게 감지해내는 자세제어장치의 탓도 있다.
한편 폴고레는 자세제어장치를 이겨내고 리어 타이어를 미끄러뜨리는 것은 가능했다. 과거 후륜구동 마세라티 모델들이 선보였던 멋진 파워슬라이드는 이제 미드십 모델인 MC20만의 전유물이 됐다.
그란카브리오의 오픈 드라이빙
폴고레는 현존하는 가장 빠른 순수 전기 오픈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행시험장에서 시승을 끝내니 잔존 배터리양이 얼마 없다. 폴고레는 92.5kWh급 배터리가 탑재된다. 실제 사용 가능 용량은 83kWh 정도다. 급속 충전 성능은 270kW 수준이며 20에서 80%까지 18분만에 완료한다.
시승차 차고지에서 주행시험장까지는 5.26km/kWh의 효율을 기록했다. 약 40km의 여정으로 도심 주행 15km, 나머지 도로는 정속 주행이 가능한 자동차 전용 도로다. 유사한 조건의 여정에서 순수 전기 차종들이 5~6km/kWh 사이의 효율을 기록하니 무난한 편이다. 동일 구간에서 그란투리스모 트로페오는 9.1km/l를 기록했다.
폴고레의 카브리오 탑은 8.8인치 통합형 컨트롤러 디스플레이로 제어할 수 있다. 버튼 ON/OFF 방식이 아닌 디스플레이를 좌우로 쓸고 터치를 유지한 상태(Swipe & hold)에서 탑이 접힌다. 이때 디스플레이를 터치한 상태로 유지한다. 디스플레이에서 손가락을 떼면 접히던 탑이 그대로 멈춘다. 탑이 열리고 접히는 조건은 시속 50km 미만이며 최단 소요시간은 14초다.
윈드스톱(디플렉터)도 장착할 수 있다. 하지만 수동으로 장, 탈착해야 한다. 윈드스톱은 트렁크에서 꺼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윈드스톱을 설치하면 뒷좌석은 사용할 수 없다. 윈드스톱 없이 고속도로 오픈 주행을 시작하자 약간의 바람이 들어오기는 했으나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묘하다. 속도는 높아지는데 엔진 사운드는 없다. 바람 소리만 점차 커져간다. 포르쉐도 순수 전기 컨버터블 모델을 만들고 있다. 비슷한 감각을 보여줄까?
마세라티의 희소성
2세대 그란투리스모 트로페오와 카브리오 폴고레로 마세라티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보다 안정감 높은 주행성, GT 성향을 주력하는 편안한 승차감 그리고 내연기관의 유지와 전동화의 가능성 탐구 등이다. 2019년 1세대 모델의 단종 이후 그란투리스모를 기억하고 찾는 고객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사치품에 가성비를 따질 이유도 없다. 자주 보이지 않을 수록 더 가치가 높아지는 모델이라니, 아이러니하지만 럭셔리 브랜드가 감내할 왕관의 무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