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RX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편안함, 정숙함, 고급스러움 정도를 떠올릴 것이고 ‘일본 차’라며 꺼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특별한 단어나 이미지를 갖지 않는 무난한 매력을 갖는 모델이 RX다. 그것을 무기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시장 프리미엄 브랜드 판매 1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독일 브랜드 대신 주행 부분은 약점으로 꼽혔다. 늘 오랜 기간 동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리 봐야 할 시점이 왔다. 이제는 렉서스도 주행 부분에서 높은 수준을 갖기 시작했다. 이미 ES 300h F-Sport 모델을 통해 렉서스의 잠재력을 살펴봤기 때문에 이번 RX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일단 국내 출시 당시 가격이 다소 높아 보인다. 가격이 높아지면 그만큼 평가 기준도 엄격해지는 법. 5세대 RX는 높은 가격만큼 만족도를 전달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디자인은 아직 호불호가 있어 보인다. 새로운 변화를 반기는 소비자, 어색해 하는 소비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릴 디자인이 뭔가 만들다 만 것 같은데… 그릴과 차체가 융합된 형태라는 의미로, 스핀들 그릴에서 스핀들 바디라는 이름으로 변경됐다. 하지만 램프에는 렉서스만의 L자 형태 주간 주행등이 유지됐다.

흥미로운 부분은 엔진 후드를 튀어나오게 디자인했다는 점. 8기통 엔진을 연상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친환경적인 파워유닛을 품고 있다.

측면부 실루엣은 부드러워졌다. C-필러의 독특한 형태도 눈길을 끈다. 이것만으로 심심한 SUV 이미지에서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후륜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라인으로 동적인 이미지도 표현했다. 어퍼 미들급 SUV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법인데, 렉서스가 RX를 통해 어떤 성격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도어 핸들 자체의 디자인은 일반적이다. 전자식 도어 핸들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안쪽의 버튼을 통해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 안쪽에서도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린다. 여기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 안쪽에서 문을 강제적으로 열어야 한다면 버튼을 레버처럼 당기면 물리적인 방식으로 문을 열 수 있다. 일부 전기차는 운전석에만, 아니면 앞좌석에만 이 기능을 넣는데 RX는 전 좌석에 동일한 기능을 넣었다. 칭찬할 요소다.

후면부는 좌우가 연결된 리어램프가 눈길을 끈다. 범퍼 양측면의 공기 배출구 디자인과 볼륨감 있게 표현한 범퍼로 멋스러움을 더했다.

많이 비싸진 5세대 RX. ‘이 돈이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실내로 들어서는 순간 왜 이차가 가격이 높은지 어느 정도는 수긍하게 된다. 한마디로 비싼 티가 잘 난다.

디자인이야 개인 취향이 있으니 뒤로하고 실내에 사용된 소재, 조립 완성도, 마감 품질 등에서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최근 출시되는 독일 브랜드의 실내는 과도하게 사용된 터치 패널과 갈수록 허술해지는 조립 마감, 여기에 일부 저렴한 소재 사용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하지만 RX에서는 그런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잘 하는 제네시스와 비교해 볼까? 렉서스가 다시 한번 앞서간 느낌이 들 정도다.

계기판 디자인에서 과거 LFA의 전통성을 이어가려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다른 디자인으로 바꿀 수 없고 요즘 차들에 비해 계기판 디스플레이 면적이 작은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여기에 작은 디스플레이 속에 LFA 전통을 이어가려는 원형 디자인을 유지하고 각종 정보까지 넣으려다 보니 조금은 정리되지 않고 복잡하게 아이콘들이 나타난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는 바로 알아차리겠지만 일반 소비자라면 알 수 없는 표시들이 계기판 여기저기에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미국 IIHS에서도 이와 관련해서 간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스티어링 휠 디자인이 새로워졌다. 터치 기능이 포함된 물리 버튼이 양쪽에 자리하는 방식이다. 이 기능 대부분은 헤드-업 디스플레이 설정에 쓰일 듯하다. 헤드-업 디스플레이 자체도 화질이 좋고 넓은 면적을 보여준다.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존재감이 크다. 화면 면적만 14인치에 이르기 때문이다. 새롭게 개발한 UI 덕분에 메뉴가 간단해졌다. 기능을 찾는 과정도 어렵지 않다. 기존 모델보다 3.6배 빠른 CPU를 사용한 덕분에 반응 속도도 만족스럽다. 다만 타사처럼 홈 화면이 없다는 점은 뭔가 허전한 느낌을 준다. 14인치 화면 중 일부 하단은 공조 기능을 위해 할애했다. 직관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만족스럽다.

무선 충전 패드와 USB 충전 포트도 잘 갖췄다. 무선 충전 속도는 기존 대비 50% 빨라졌다고 한다. 고속 무선 충전이 안 되는 것을 보면 아마 7.5W를 쓰는 듯하다.

시트는 편안하다. 소재와 디자인, 기능성 모두 만족스럽다. 생긴 것보다 은근 몸을 잘 감싸주는 스타일이다. 렉서스는 이를 딥-헝 구조라고 부르고 있는데, 장거리 주행을 해도 쉽게 피로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2열 시트는 전동으로 조작될 뿐 아니라 트렁크에서 원터치 조작도 할 수 있다. 가격이 얼마인데… 없으면 섭섭할 뻔했다.

테스트 모델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RX450h+. 때문에 기어 레버 주위에 전기모터를 우선으로 할지 엔진과 함께 쓸지, 엔진으로 배터리를 충전할지 결정할 수 있는 버튼이 마련됐다. 이외에 자동 주차 기능을 비롯해 요즘 확대 적용되고 있는 리어 카메라 뷰 미러도 적용됐다. 확실히 구성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낄 소비자들은 없을 듯하다.

이제 RX와 함께 주행을 시작해 보자. 시동 버튼을 눌러도 엔진은 잠자고 있고 시스템만 깨어난다. 은근 오프닝 세리머니도 화려하다.

주행의 시작은 전기모터가 책임진다. RX450h+에는 4기통 2.5리터 자연흡기 엔진과 2개의 전기모터가 전기 발전과 구동을 책임지는 직병렬 형태다. 후륜에도 전기모터가 추가되어 총 3개의 모터가 쓰이는 형식이다. 일반적인 하이브리드 모드에서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40~50km 정도까지 전기모터만으로 이동 가능하다.

EV 모드가 인상적이다. 병렬 방식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주로 사용하는 독일 브랜드의 EV 모드는 페달을 밟아도 킥다운 스위치를 밟으면 엔진이 개입한다. 하지만 RX는 EV 모드로 설정하면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도 엔진이 개입하지 않는다. 페달 조작에 신경 써야 하는 절반뿐인 EV 모드가 아닌 진짜 전기차처럼 이용 가능한 EV 모드라는 것이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도 여유롭게 가능하다. 전기모터만으로 11.54초면 도달 가능할 정도. 대략 2.0리터 가솔린 세단과 유사한 수준에 해당한다. 경차보다는 확실히 빠를 정도. 한마디로 시내 주행 환경에서는 EV 모드로 여유로운 주행이 가능한 정도다.

배터리는 18.1kWh 용량을 갖는다. 20~30kWh 용량으로 급속충전까지 지원하는 최신 독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비교하면 스펙상 소폭 부족한 것을 사실이다. 하지만 1회 충전 기준 50km 전후 주행이 가능했다. 서울에서 경기도 근방 정도는 연료를 쓰지 않고 이동 가능한 수준이다.

전기차처럼 이용 가능하지만 회생제동 부분은 자연스럽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내연기관 모델의 엔진브레이크 정도만 속도 감속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덕분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환경에서 좋은 승차감과 더불어 운전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기본적인 승차감을 부드럽다. 서스펜션의 상하 움직임 폭도 길고 노면에서 발생하는 충격도 잘 걸러준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에어 서스펜션이 탑재됐다고 말해도 믿을 정도다. 최근 코일 스프링과 댐퍼, 여기에 각종 부싱과 섀시 셋업 기술이 눈에 띄게 발전했는데 렉서스도 이러한 트렌드를 잘 따라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런 감흥이 없을 정도로 그저 흐느적거리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주행 환경이나 노면 상황이 바뀌면 가변 댐핑 기술을 통해 차체를 확실히 통제한다. 어떤 경우는 다소 단단하다고 느낄 정도다.

이러한 성격 변화 폭도 꽤나 큰 편에 속한다. 지금까지 다양한 모델에 탑재된 가변 댐핑 기술은 주행 중 댐퍼의 성격이 변한다고 느끼기 힘들었다. 그만큼 변화의 폭이 소극적이었다는 것. 하지만 RX에 탑재된 가변 댐핑 기술은 에코 모드에 있더라도 순간적으로 스포츠 모드로 변한 것 같은 큰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탄력적으로 대응해 주는 서스펜션 덕분에 일상 주행에서는 편안한 주행감을 누릴 수 있고, 빠르게 달리면 안정적인 감각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속도가 시속 180km 이상으로 높아지면 댐퍼가 다소 과하게 단단해진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때문에 노면이 불규칙하다면 차량이 다소 튄다고 생각할 수 있을듯하다.

필요하면 3개의 전기모터가 차량 발진 가속에 힘을 실어주는 덕분에 힘 부족은 느껴지지 않는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6.9초를 기록했다. 물론 독일 브랜드의 SUV였다면 5초대 가속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RX와 같은 고급스러움과 효율 중심 성격을 생각하면 6초대 가속은 분명 느리지 않은 성능이다.

시속 200km 가속도 가능하다. 차량 속도가 일정 수준 이상 상승하면 전기모터보다 내연기관에 의지하는 비율이 높게 커지게 되는데, 덕분에 6초대 빠른 가속과 달리 200km/h 가속은 31.96초가 소요됐다.

살짝 얇아 손에 감기는 느낌이 좋은 스티어링 휠을 조작해 본다. 조작에 따라 차량이 일관적으로 반응한다. 너무 민감하거나 둔하지 않다는 것. 기존 4세대 모델과 비교하면 조금 더 날카롭고 선형적으로 변경됐으며, 독일 경쟁 모델과 비교하면 직관성이 살짝 부족한 정도다.

하지만 독일 브랜드는 우수한 주행 및 핸들링 성능을 위해 부족해진 승차감을 에어 서스펜션으로 만회하고 있다. 좋은 성능과 승차감을 양립하기 위해 더 크고 무거우며 관리가 필요한 시스템이 추가된 것이다. 하지만 RX는 에어 서스펜션 없이도 좋은 승차감과 우수한 주행감각을 전달하도록 튜닝했다. 이 부분은 기술적인 부분에 노하우까지 필요한 영역이다. 렉서스도 그냥 놀고 있지만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선형적이고 일관적인 움직임 덕분에 코너에서 빠른 주행을 해도 운전자가 느끼는 부담감은 크지 않다. 섀시 자체의 높은 완성도가 쉽게 체감되는 부분이다.

4륜 시스템도 주행 부분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의 E-Four 4륜 시스템은 험로 탈출 혹은 가속 시 도움을 주는 정도로 기능성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E-Four는 모터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필요하면 전륜 구동 토크를 줄여서라도 후륜에 보다 큰 힘을 전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기계적으로 연결되는 본격 4륜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더 능동적인 4륜 시스템이 RX를 보조한다고 이해하면 쉽다.

그렇다고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랩타임을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달리는 성격은 아니다. 브리지스톤의 4계절 타이어 알렌자 스포트 A/S가 사용됐고 폭도 235m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차는 주행성능도 겸비했지만 효율도 챙기면서 가족용으로 좋은 감각을 전달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고 볼 수 있다. 21인치에 235mm 사이즈가 흔한 사이즈는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타이어 교체하는데 번거로울 수는 있겠다.

제동성능을 보면 딱 토요타 렉서스의 다른 모델만큼 나온다. 최단거리 40.48m를 기록한 덕분이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제동성능만큼은 참 한결같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테스트를 반복해도 평균 41.02m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억 대 가격을 갖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일원이라면 제동성능도 ‘업계 평균’ 정도는 맞춰줬으면 좋겠다. 소비자들은 좋게 만들면 좋다고 하지 싫다고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환경에서 테스트한 결과 RX450h+는 대략적으로 15~16km/L대의 연비를 보여줬다. 특히 시내 구간에서는 연비 측정이라는 것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전기차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경쟁사가 자극을 받았으면 하는 높은 품질과 고급스러움을 갖춘 실내, 에어 서스펜션 못지않은 좋은 승차감까지 겸비했다. 여기에 주행 감각은 한 번 더 성장했다.

시승 전까지만 해도 1억 원으로 렉서스 RX를?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승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적어도 1억 원이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만족감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가 같지만 자동차 쪽도 가격 인플레이션이 조금은 과하다고 느껴지는 시기에 살고 있다. 때문에 가격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아지는 신차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RX는 이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돈값 하게 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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