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된 핫해치 전쟁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05.11 15:2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네시스 G80 3.5L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의 출력은 380마력이다.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대부분이 특별한 감흥을 받지 못할 거다. 300마력이라는 숫자가 더는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숫자는 결코 만만히 볼 숫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정확히 3세대 전 BMW M3가 300마력대 엔진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절 M3는 지금보다 존재감이 훨씬 더 컸던 차라는 걸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이 숫자가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제 해치백에서도 이런 출력을 경험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3.5L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으로 380마력을 만들어내는 건 기술적으로 그리 어려워 보이는 일은 아니지만, 해치백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그 차들은 대부분 2L 이하의 작은 엔진들을 탑재하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르노 클리오 V6처럼 이따금 상식을 뒤엎는 경우도 있지만, 무척 예외적인 경우다.

그런데 요즘 2L 엔진으로 300마력을 가뿐히 넘어서는 핫해치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시작을 알린 것은 메르세데스-벤츠 A45 AMG부터였다. 메르세데스-벤츠 최초로 시도된 핫해치였기 때문이었는지, 2013년 처음 선을 보였을 때부터 A45 AMG는 360마력이라는 놀라운 숫자를 들고 나왔다.

이는 2L 4기통 엔진의 한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2L 엔진에서 얻을 수 있는 출력의 한계는 200마력대라고 여기는 게 상식이었다. 여기에도 예외의 경우는 있다. 예를 들어 레이스 카의 엔진이라면 말이다. 레이스 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엔진들의 수명은 대체로 12개월~24개월을 넘기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양산 차는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10년은 족히 정상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리터당 100마력을 뛰어넘는 출력은 무리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터보차저를 사용해 더 강력한 출력을 끌어낸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엔진 블록과 피스톤 그리고 커넥팅 로드와 함께 고출력에서 발생하는 높은 열에 베어링 등이 버틸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그런데 메르세데스-벤츠는 그 일을 해냈다.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1.6L V6 터보차저 엔진을 개발하면서 엔진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기술들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바로 포뮬러 1 엔진이다. 한때는 1경기 1엔진도 모자라 1세션 1엔진을 사용했던 시절도 있었을 만큼 낭비가 심했던 시절은 지나가고, 현재는 적어도 5~7경기 이상은 하나의 엔진으로 버텨야 하는 시대이기에 이들은 출력과 내구성을 모두 끌어올려야 하는 힘든 숙제를 받아들었다.

그 결과 A45 AMG와 같은 핫해치도 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6년 새로운 A45 AMG는 같은 타입의 엔진에서 거의 20마력을 더 끌어올려 381마력이 되었다. 메르세데스-벤츠에서 가장 작은 해치백이 몇 세대 전 M3의 출력을 가뿐히 뛰어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A45 AMG를 시작으로 해치백 시장에 출력 경쟁이 시작됐다.

다음으로 경쟁에 뛰어든 것은 A45 AMG와 직접적인 경쟁을 펼쳐야 하는 MINI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골프 R과 함께 MINI JCW는 한국에서 가장 강력하고 값비싼 해치백이었다. 게다가 폭스바겐이 곤란한 시간을 보내면서 MINI JCW는 한국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핫해치였다. 하지만 A45 AMG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물론 여전히 비교할 수 없는 스타일링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문제는 130마력 가량 차이 나는 출력이었다.

당시 MINI JCW의 출력은 231마력으로 가벼운 차체에 쓰이기에 가장 밸런스가 좋은 출력으로 평가되기도 했는데, 그 상식이 뒤집어지면서 A45 AMG로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벨로스터 N이 등장해 비슷한 출력에 더 저렴한 가격이라는 매력으로 시장을 흔들어 놓았다. 핫해치는 기본적으로 고객층이 얇은 데다가 적당한 가격에 높은 출력이라는 매력에 고객들이 쉽게 흔들리는 시장인 만큼 벨로스터 N의 등장은 MINI JCW에게는 그리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이들에게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간이 찾아왔고, 지난해 GP 에디션을 시작으로 컨트리맨, 클럽맨에 이르기까지 모두 301마력으로 업그레이드된 엔진에 탑재됐다.

(아우디 RS3 스포트백도 이들 경쟁에 충분히 동참할만한 고성능 핫해치이지만 애석하게도 2.5L 5기통 엔진이기도 하며 한국 시장에는 소개되지 않았으므로 비교 대상에서는 제외했다.)

이렇게 프리미엄 해치백을 선보이는 두 회사의 300마력 영역으로의 진출이, 전통적인 핫해치의 강자들에게는 크나큰 자극이 되었던 모양이다. 결국 폭스바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핫해치라는 이름을 제대로 알린 것은 폭스바겐이었다. 이들은 골프에 말도 안 되는 출력과 재미를 쓸어 담은 GTI를 꾸준히 선보이며 이 시장의 교과서로 자리매김해왔다. 하지만 GTI만으로는 모자랐던 것인지 R 모델을 통해 더 강력한 해치백을 만들어냈다. MINI JCW와 함께 290마력대의 강자였던 골프 R는 한때 신성시되던 핫해치였다. 하지만 A45 AMG가 등장했고, MINI JCW가 이들을 따라 300마력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왕좌에서 건네줘야 할 상황에 놓였다.

그래서일까? 아직 8세대 골프 R이 등장하기 전임에도 벌써부터 이들이 300마력대로 업그레이드 한 골프 R을 내놓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현재 뉘르부르크링에서 마지막 밸런스를 찾아가고 있는 골프 R은 소문에 따르면 약 330마력 정도의 출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보다 더 엄청난 사실은 향후 R+가 등장할 수 있으며 그 차는 무려 402마력의 출력을 낸다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2L 엔진으로 400마력을 끌어낸다면 레이스 카 엔진을 제외하고 리터당 출력이 가장 높은 엔진으로 이름을 남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단순히 출력을 올리는 것은 어쩌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진짜 문제는 10년 후에도 이 엔진이 멀쩡하게 돌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며, 특히 10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고객들의 주머니를 털어내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가이다.

출력은 400마력인데 예전 슈퍼카들처럼 매 10,000km마다 뭔가를 교환해야 한다면 더 이상 핫해치로서의 의미가 없다.

그래서 400마력의 출력을 만들어 내기 위해 하이브리드를 이용한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하이브리드라면 엔진의 컨디션을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출력을 손쉽게 배가시킬 수 있다. 게다가 잘 활용만 한다면 골치 아픈 탄소 배출량 문제나 연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아주 간단히 AWD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안정성도 더 높아질 수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해치백 강자에 대한 소문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푸조는 전 세계에서 해치백을 가장 잘 만들고 가장 많이 파는 브랜드이며 동시에 모터스포츠에 자신들의 해치백을 내보내는 것에 매우 익숙한 브랜드이다. 물론 골프 GTI 만큼 고성능 해치백을 널리 퍼트리진 못했지만, WRC나 온로드 레이스를 통해 또 하나의 GTi를 알려온 브랜드이기도 하다.

게다가 1.6L 엔진으로 250마력대의 출력을 만들어 냈으니, 이들의 엔진 만드는 실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골프 GTI보다 앞선다는 평가도 많은데, 단 하나 부족한 건 인지도 뿐이다. 푸조도 골프 R과 비슷한 방식인 하이브리드 타입으로 새로운 핫해치를 만든다는 소문이 흘렀다.

현재 PSA 그룹은 앞으로 몇 년 간 자신들의 자동차 대부분을 전동화하려는 전략을 펼치는 중이며, 따라서 다음 세대 308은 전기자동차로 바뀔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럼에도 내연기관만의 맛을 추구하는 이들을 위해 새로운 308 GTi를 하이브리드화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1.6L 터보차저 엔진에 두 개의 전기모터를 추가하는 방식 될 것이며 이를 통해 300마력대의 출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소문의 주된 내용이다. 만약 푸조 308 마저도 300마력의 영역으로 진입한다면 전통적인 강자였던 혼다 시빅 타입 R도 동참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제 막 이 시장에 뛰어들어 공룡들을 쓰러뜨리고 있는 현대의 i30 N도 출력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

한때 핫해치는 사라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고객의 연령층이 비교적 젊은 핫해치는 최근 젊은 층들이 자동차보다는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면서 시장의 규모가 점차 작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적당한 무게와 적절한 출력을 가지고 쥐어짜내며, 마치 공부나 훈련을 하듯 자동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현상 역시 핫해치 시장이 점차 줄어드는 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브랜드들은 이렇게 사라지는 고객들을 더 강력한 출력으로 다시 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실로 오랜만에 자동차 시장에 출력 경쟁이 다시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늘 그러하듯, 브랜드 사이에 펼쳐지는 경쟁은 소비자들을 즐겁게 만든다. 이제 다시 해치백을 타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저작권자 © 오토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