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스포츠카의 진화

  • 기자명 김기태 PD
  • 입력 2017.10.0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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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전신은 마차에서 시작된다. 승객에게 편안한 승차감을 전하는 서스펜션의 유래도 마차에서 유래했다.

초기의 자동차는 사람을 실어 나르기 위한 운송수단으로 발전해 왔지만 엔진 성능이 높아지면서 기술력을 뽐내기 위한 경주로 확대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포츠카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포르셰, 페라리, 람보르기니, 맥라렌 등은 스포츠카를 전문으로 만드는 브랜드들이다. 하지만 대중적 성향이 강한 브랜드들도 스포티한 자동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현대차가 첫 쿠페를 만들어 판매한 바 있다. 당시의 이름은 스쿠프(Scoupe)였다.

스쿠프는 당시 엑셀(Excel)이란 세단의 뼈대로 만들어졌다. 과거 세계에서 가장 느린 스포츠카라는 쓴소리도 들었지만 국내 스포츠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모델이다. 초기형은 엑셀의 파워트레인을 공유했지만 이후 독자 개발한 알파(α) 엔진을 얹었는데 이 엔진은 실린더당 3개의 밸브를 갖고 있었다. 흡기 포트 2개, 배기 포트 1개를 가진 구조였다. 이와 같은 특징을 알리기 위해 α12라는 문구를 차체에 붙여 넣기도 했다. 엔진 배기량은 1500cc급이었다.

지금은 다양한 모델에 터보 엔진이 쓰이지만 현대차가 승용차에 처음 터보 엔진을 장착한 것은 스쿠프를 통해서다. 하지만 당시엔 스쿠프 터보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터보차저는 배기가스의 힘으로 공기를 압축하는데, 압축과정에서 높은 열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공기를 냉각시키는 인터쿨러(Intercooler)의 장착이 필연적이다. 하지만 스쿠프 터보엔 이와 같은 인터쿨러가 없었다. 때문에 더운 여름이 되면 엔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스쿠프 마니아들은 고가의 수입 인터쿨러 또는 2.5톤 트럭 마이티의 인터쿨러를 장착해 제 성능이 나오도록 튜닝하기도 했다.

당시 스쿠프는 가벼운 차체가 자랑이었다. 지금의 현대차와 달린 높은 강성을 갖지는 못했지만 가벼움을 무기 삼아 경쾌하게 내달렸다.

이후 현대차가 내놓은 것은 티뷰론이다. 아반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큼 견고함에서 스쿠프를 능가했다. 스쿠프와 달리 2.0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얹고 데뷔했는데 이때 쓰인 것이 베타(β) 엔진이다. 롱스트로크 타입(피스톤 직경보다 운동 거리가 긴)의 베타 엔진은 두둑한 토크를 앞세워 좋은 수준의 가속력을 냈다. 베타 엔진은 1.8리터 배기량으로도 출시되었으며 당시 1세대 아반떼, 왜건형인 아반떼 투어링에도 사용된 바 있다.

당시의 티뷰론 가격은 기본 모델 기준 1200만 원대에서 풀옵션 사양 기준 1500만 원대에 팔렸다. 당시의 쏘나타 풀옵션과 맞먹는 고가였지만 새로운 차를 열망하는 소비자층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며 인기를 끌었다. 알루미늄 휠도 15인치를 사용했다. 당시 뉴그랜저조차 14인치 휠을 사용하던 시절이기에 큰 사이즈 휠의 채용에 의미가 컸다.

티뷰론은 2.0 기본형을 중심으로 고급형 사양 SRX로 분리돼 판매되었으며 96년 12월, ECU(엔진제어 프로그램)과 변속기의 기어비를 개선해 가속성능을 높인 TGX라는 트림을 출시했다. TGX의 특징은 커다란 리어윙이었는데 초기형 모델은 뒤에서 볼 때 '┏━┓' 와 같은 모양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떨림이 심하다는 소비자 지적이 일자 현대차는 중간에 지지대를 넣은 '┏┳┓' 형태의 리어 윙으로 바꿔 달았다. 또한 티뷰론 스페셜이란 모델을 출시했는데 외부 패널을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경량화를 추구한 것이 특징이었다. 차체를 가로지르는 스트라이프 무늬도 이 모델의 특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특징으로 꼽혔다. 티뷰론 스페셜은 총 500여 대가 생산됐다. 스페셜 을 위한 별도의 알루미늄 휠도 쓰였는데 당시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것을 카피했다는 논란도 있었다.

또한 이 당시 튜닝 시장의 활성화도 차량 판매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됐다. 같은 시기에 데뷔한 기아 엘란은 영국의 전통적인 스포츠카 브랜드 로터스를 통해 들여온 기본기 좋은 모델이었지만 2700만 원대라는 당시로는 높은 가격 때문에 1천 대 미만의 판매량을 보인 뒤 단종됐다. 쌍용차도 클래식한 멋을 가진 스포츠카 칼리스타를 도입했지만 역시 실패한 사례가 되고 말았다.

티뷰론은 페이스리프트(F/L)을 통해 티뷰론 터뷸런스로 거듭난다. 2개로 분할된 헤드램프, 보다 스포티한 디자인 덕분에 젊은 층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기본 틀은 티뷰론을 것을 기초로 했지만 아기자기한 요소를 집어넣어 보다 세련된 스포츠카의 멋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었다.

티뷰론의 후속 모델은 투스카니다. 프로젝트명 GK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투스카니는 엔진룸 하부를 견고하게 잡아주는 우물 정(井) 모양의 프레임 덕분에 보다 탄탄한 차체를 가졌다. 같은 2.0리터 베타 엔진을 사용하는 티뷰론 대비 차체가 무거워 가속성능이 떨어졌지만 2.7 엘리사(Elisa)라는 고성능 모델을 출시하며 차별화를 꾀했다. 당시의 엘리사에는 아이신제 6단 수동변속기가 최초로 적용됐으며 2.7리터 배기량으로 175마력의 최고 출력을 냈다. 또한 엘리사에는 미쉐린이 공급한 파일럿 스포츠(Pilot Sport)라는 고성능 타이어가 쓰였다.

하지만 과거 티뷰론 시절의 판매량을 내지는 못했다. 당시 수입 중고차 시장이 본격화되며 스포츠카 수요층을 상당 부분 빼앗겼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중고 스포츠카의 수입이 본격화되며 투스카니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티뷰론 시절, 수백 수천만 원을 들여 튜닝 하던 소비자들이 애초 성능 좋은 수입차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 수입차 시장에서 주목받던 대표적인 고성능 모델로는 BMW의 M3(E46)가 꼽힌다.

투스카니는 2번의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얼굴을 바꿨다. 하지만 변화도 티뷰론의 인기를 따라 잡지 못했다. 이미 다양한 수입차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전륜구동 국산 쿠페가 갖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것도 이유로 꼽혔다.

현대차는 마니아층의 요구를 받아들여 후륜구동 스포츠카 개발에 착수한다. 그리고 2.0리터 터보 엔진, 3.8리터 V6 엔진을 장착한 제네시스 쿠페를 내놓는다. 지금은 독자 브랜드로 운영되는 제네시스지만 초기엔 현대차의 고급 라인으로 세단형의 제네시스, 그리고 쿠페형인 제네시스 쿠페라는 모델명을 부여받아 판매되기 시작했다.

제네시스 세단은 후륜구동 방식으로 만들어진 고급 세단이었지만 제네시스 쿠페는 고급차라는 느낌을 주기에 한계가 있었다. 특히 아반떼, 쏘나타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 디자인이 고급차로 다가서기 힘든 한계를 느끼게 했다. 투스카니 2.7 엘리사가 2천만 원대의 가격을 가졌던 것에 반해 3.8 엔진을 가진 제네시스 쿠페의 가격은 3천만 원대 후반까지 접근했다. 제네시스 쿠페는 기대만큼의 판매량을 기록하지 못했는데 높아진 가격대 역시 제네시스 쿠페의 판매량에 제한이 된 요소로 꼽힌다.

하지만 국산 첫 후륜구동 쿠페의 탄생은 드리프트(뒤 타이어를 미끄러뜨리는 기술) 마니아를 양성함과 동시에 국내 모터스포츠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린 모델로 평가받았다. 국내 드라이버들의 기량을 높이는데 크게 일조했던 것.

그리고 현대차는 새로운 도전 목표를 세운다. 고성능 브랜드 'N'을 출범이었다. 이를 위해 BMW에서 M 모델을 담당하던 알버트 비어만을 경영진으로 앉힌다. 그리고 N의 첫 작품은 고성능 해치백이 될 것이라 발표했다. 곧 데뷔할 i30N, 그리고 국내 시장과 북미 시장을 겨냥하는 벨로스터 N 등이 고성능 브랜드 N을 대표하는 첫 작품들이다.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은 이후 투싼 등에도 N 버전이 추가될 것이라 밝혀 다양한 파생 모델이 만들어질 것을 예고했다.

현대차 산하의 기아는 과거 엘란의 실패 이후 고성능 모델에 대한 도전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7년 스팅어라는 고성능 스포츠 세단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고 있다. 현대차는 스팅어보다 작은 차체, 이를 바탕으로 한 역동성을 무기로 갖는 제네시스 G70을 내놨다. 이들은 모두 370마력의 3.3리터 터보 엔진을 갖춘다. 또한 고성능 트렌드에 맞춰 0-100km/h 가속 시간을 5초 미만에 끊는다.

한국 시장에 있어 스포티한 모델들의 판매량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고성능 모델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대변함과 동시에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시키는데 의미가 있다.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저마다 고성능 모델을 개발하는 이유다.

한편, 경쟁사인 한국지엠은 과거 지엠 대우 시절 G2X라는 로드스터(2인승 오픈 모델)를 선보인 바 있다. GM 산하의 브랜드였던 새턴(Saturn)의 스카이(Sky)를 그대로 들여와 G2X라는 이름으로 판매한 것인데 2.0리터 엔진으로 264마력이란 높은 성능을 냈다. 운동성능 역시 좋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4천만 원대 이상의 가격, 좁은 트렁크, 마케팅의 부재로 인해 조기 단종된 모델이 되고 말았다.

이후 한국 지엠은 3.6리터 엔진을 장착한 기본형 카마로와 기본형 콜벳을 들여왔다. 하지만 판매량은 절망적이었다. 우선 기본형 콜벳의 가격이 8천만 원대에 이르렀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조기 단종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이후 들여온 카마로 SS는 고성능, 미국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이끌고 있다. 과거 카마로 RS의 판매량이 한 자릿수였던 것에 반해 지금도 높은 판매량을 이끄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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