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현대, 7세대 그랜저 3.5 LPI & 3.5 AWD
한국 시장 전용의 말랑말랑한 세단
7세대 그랜저가 출시됐다. 그랜저의 역사만 36년에 이른다. 현대차의 최고급 세단, 그것이 그랜저의 시작이었다. 포지션의 변동도 있었는데, 2세대 그랜저로 고급화를 추구한 다이너스티, 미쓰비시와 합작 개발한 에쿠스가 출시되며 쏘나타 위에 포지셔닝 하는 준대형급 세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엔 제네시스(BH)가 등장하며, 가격을 높여 받기 위해 억지스레 만든 아슬란 때문에 그랜저는 최상급 모델 탈환 기회를 몇 차례 더 잃었다.
제 자리를 찾은 것은 6세대 모델인 그랜저 IG부터다. 그리고 7세대는 덩치를 키우며 최상급 모델로의 존재감을 강화했다. 1세대 ‘(각)그랜저’를 시작으로 과거 모델들의 특징을 이어받으면서 헤리티지까지 얘기한다.
그랜저를 바라보며 우리 팀의 의견은 좁혀졌다. ‘차가 좋건 나쁘건 무조건 잘 팔릴 것’이라고, 유튜브에서는 ‘최고의 차’로 칭송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그것이 우리 시장에서 현대차가 갖는 위상이다. 어차피 이길 싸움을 하는 그랜저, 그래도 조금 더 깊은 얘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디자인 (Design)
신차지만 그랜저의 디자인이 새롭지는 않다. 끊김 없이 연결된 수평형 LED 램프(Seamless Horizon Lamp)가 특징인데, 상용차 스타리아를 눌러 놓은 디자인이라는 얘기도 자주 들린다. 그랜저 입장에서는 억울함도 있을 것, 개발 및 출시 시기에서 스타리아가 앞섰을 뿐, 이미 그랜저도 같은 디자인으로 개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올 현대차의 대부분이 이 디자인을 따라가게 된다. 당장, 올해 등장할 쏘나타, 아반떼, 코나가 그렇다.
측면부 실루엣도 독특하다. 앞부분만 보면 대형 세단처럼 보이는데, 뒷부분의 트렁크로 이어지는 라인은 쿠페 스타일에 가깝다. 헤드램프에서 테일램프까지 이어지는 수평 라인과 후륜부터 테일램프까지 올라가는 사선 라인도 독특하다.
C-필러에는 오페라 글래스도 추가됐다. 1세대 그랜저를 연상시키는 디자인. 보통 C-필러에 유리창이 추가되는 모델은 뒷좌석 탑승 중심의 차라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현 세대 그랜저의 포지션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플러시 도어 핸들, 프레임리스 도어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다. 현대차는 프레임리스 도어를 96년 스포티 쿠페 티뷰론에서 처음 썼다. 그랜저에 사용된 것은 3세대 XG 시절 때였고, 7세대에 와서 다시 프레임리스 타입을 택했다. 처음 사용 때보다 견고한 모습을 보이는데, 덕분에 장시간 사용해도 윈도의 떨림 등이 쉽게 나타나지 않을 듯하다.
차체는 정말 크다. 한때 대형 세단의 기준으로 불리던 5m를 넘어선다. 수평적인 디자인 요소들이 결합되면서 차체가 더 커 보인다. 둥글둥글했던 그랜저 IG와 비교하니 확실히 한 체급 커진 티가 난다. 물론 무게도 늘었다. 실측해 보니 3.5 LPG 기본 모델 기준 1688kg, 3.5 가솔린 4륜 구동 풀옵션이 1842kg이였다. 그랜저 IG 후기형 3.3 풀옵션이 1706kg였으니 몸무게가 꽤 늘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간과 편의 장비 – 인테리어 (Interior)
실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스티어링 휠 디자인. 1세대 그랜저의 원 스포크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사진으로 보면 어색해도 실제로는 괜찮아 보인다. 다만 스티어링 휠을 돌리다 6시 방향에 손이 갈 때 스포크 디자인에 의한 어색함이 들 때가 있다.
나머지는 그랜저 IG 후기형의 연장선에 있다. 12.3인치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대시보드 디자인도 유사하다. 하단에 배치된 가로줄 형태의 송풍구도 더 발전한 형태다. 터치스크린 방식의 공조장치는 10.25인치 크기다.
콘솔은 제법 다르다. 버튼식 변속기도 스티어링 칼럼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레버를 앞으로 돌리면 전진, 뒤로 감으면 후진이다. 오작동을 막는데 유리하겠다. 물론 사람에 따라 조작 방식이 불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버튼식보다 안전하고 좋다. 다만 앞으로 밀면 후진, 뒤로 당기면 전진하는 벤츠와는 방향이 달라 벤츠를 타던 소비자가 운전할 때 헷갈릴 수 있다.
변속 레버가 자리하던 공간에 여유가 생기면서 수납공간이 넓어졌다. 심지어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 면적도 넉넉하다. 콘솔 부분의 변화가 그랜저 IG 대비 시원스럽고 넓은 실내를 갖게 했다.
앞 좌석과 뒷좌석 공간 모두 넉넉하다. 커진 차체 덕분에 대단히 넓은 뒷좌석을 기대할 소비자들이 많다. 하지만 제네시스 G90 정도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나 어지한간 국산 및 수입차를 불문하고 이 정도 공간을 가진 차는 없다. 현대차는 주어진 상황 안에서 공간을 잘 뽑는데, 차체까지 키웠으니 말이 필요 없다. 분명한 것은 전륜 구동형 세단으로는 대단한 수준의 공간을 자랑한다는 것, 브랜드 밸류, 차량의 완성도를 논외로 공간만 보면 볼보의 S90과 비교될 수 있겠다.
뒷좌석 공간의 시각적인 영향을 주는 센터터널은 4륜 구동 유무에 따라 높이가 다르다. 2륜 구동 버전은 센터터널 높이가 높아야 11cm 가량, 낮은 부분이 5cm에 불과했다. 반면 4륜 시스템이 탑재되면 동력 전달을 위한 드라이브 샤프트 탑재를 위해 높이가 20cm 까지 높아진다. 원가절감을 위해 높은 센터터널로 통일하는 할 수 있었을 텐데 차체를 2가지로 구분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국산 초대형 세단답게 트렁크 크기도 넉넉하다. 다수의 골프 백이나 각종 캠핑 장비 적재도 우습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트렁크 상단 안쪽까지 마감했는데, 현대차가 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시트 폴딩이 안된다. 리클라이닝 옵션에 의한 부재는 이해하나 일반 버전엔 기능을 넣는 편이 좋았을 텐데. 최근 현대차는 시트 폴드에 대해 인색하다. 공간 확장을 원한다면 값비싼 SUV를 구입하라는 메시지일까?
구성은 좋다. 기본형 모델부터 12.3인치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탑재된다. 전동 및 열선 시트, 이중 접합유리에 고속도로주행보조와 같은 ADAS 기능도 모두 갖췄다. 현대 기아차는 이중 접합유리에 상당히 인색한 편인데, 그랜저에는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
다만 기본형 사양에 통풍시트가 빠진다. 욕심나면 옵션을 추가하거나 상급 트림을 택하라는 의도다. 하지만 이것만 빼면 구성은 좋다. 시트는 좋았다. 기본형 시트가 최상급 캘리그래피 시트보다 몸을 감싸는 부분, 헤드레스트도 편하게 느껴졌다. 캘리그래피 버전의 헤드레스트는 디자인적 측면서 이점은 있지만 편의성 차원에서 이점이 크지는 않다.
디스플레이 계기판을 비롯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디자인이 변경됐다. 계기판은 조금 더 밋밋해진 느낌이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제네시스처럼 타일 형태로 UI 변화가 있었다. 스티어링 휠의 ADAS 조작 위치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지는 등 일부 세세한 변화들이 눈에 띈다.
일부 인터페이스가 변경됐다지만 사용 편의성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원하는 기능이 이 정도에 있겠다 싶으면 바로 거기에 있다. 만약 일부 복잡한 기능이라 찾기가 힘들다면 음성인식 기능을 활용하면 된다. 음성인식 기능으로 내비게이션과 공조장치는 물론 창문이나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10.25인치 터치형 공조장치는 몇 번 써봐야 한다. 기존에는 시트 통풍 열선과 스티어링 열선 버튼이 한곳에 모여 있어 직관적으로 찾기 쉬웠는데 터치 모니터 방식으로 변경된 이후 각각의 기능이 분산됐다. 그리고 널찍한 화면과 달리 송풍량을 조절하는 버튼 크기가 너무 작은 편이다. 공조장치를 조작하기 위한 패널인데 왜 오토홀드와 카메라 영상을 확인하는 버튼을 추가했는지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소비자들을 위해 매우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테마를 바꿔주는 기능까지 준비했다. 확실히 이런 세심한 부분은 국산 제조사가 잘 한다.
주행 성능은 향상되었는가? – Test drive (Ride & Handling & N.V.H)
이번 테스트한 모델은 3.5 가솔린 4륜과 3.5 LPG 2륜. 가솔린 사양은 300마력의 최고 출력과 36.6kgf·m의 최대 토크을 발휘하고 LPG 엔진은 240마력과 32.0kgf·m의 토크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198마력을 발휘하는 4기통 2.5리터 가솔린과 시스템 출력 230마력을 만들어내는 1.6 터보 하이브리드까지 총 4가지 라인업으로 운영된다.
대배기량 엔진이 탑재된 만큼 시동이 걸리면 어느 정도 엔진 & 배기음이 느껴진다. 가솔린과 LPG 모델 모두 아이들 상태 실내 중앙 정숙성은 38.5 dBA를 기록했다. 6세대 그랜저 전기형 3.0리터 모델이 38.5 dBA, 후기형 3.3리터 모델이 38.0 dBA을 보인 바 있으니 과거 대비 큰 폭으로 개선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2.5 가솔린 모델의 정숙성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주행을 하면 기존 모델보다 조용해졌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가솔린 3.5 모델과 LPG 모두 시속 80km 주행 환경에서 57.0 dBA를 기록했다. 동일한 조건에서 6세대 그랜저 전기형이 58.0 dBA, 후기형이 58.5 dBA를 보인 바 있는 만큼 최대 1.5 dBA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수치적인 결과를 떠나 사람이 느끼는 정숙성이 크게 좋아졌다는 것이 쉽게 체감됐다. 다만 속도 증가에 따라 바람 소리가 늘어난다. 100km/h까지는 무난한데, 그 이상으로 접어들면 소음이 거슬릴 때가 있다. 하부로 치고 올라오는 소음도 향후 현대차가 풀어야 할 숙제다. 이런 소음은 앞 좌석보다 뒷좌석에서 조금 더 부각된다.
모든 움직임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가속 페달을 밟아도 엔진이 여유롭게 반응하고 브레이크도 직관적인 반응 보다 느긋하게 속도를 줄여주는 성격이다. 스티어링 휠을 돌려도 차체는 푹신푹신 흔들흔들하고 움직인다.
그랜저 HG와 IG를 거치면서 현대차는 젊은 소비자 유입을 위해 그랜저의 주행 성향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가져가려 노력했다. 쏘나타와 비교하면 뚜렷하게 고급스럽다 느낄 승차감이었다.
하지만 7세대 그랜저는 편안함? 아니 충격 완화에 초점을 맞췄다. 현대차 라인의 최상의 모델에게 부여한 특징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편안한 승차감이란 것이 결이 조금 다르다. 이 승차감을 만들기 위해 서스펜션은 부드럽게 출렁거린다. 하지만 과속방지턱이나 요철을 넘을 때 첫 충격을 의외로 강하게 전달한다. 이후 요철을 넘으면 출렁이는 움직임이 꽤 오래 지속된다. 충격 이후 자리 잡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는 얘기다.
고급스러운 승차감이란 초반에 전달되는 충격을 최대한 부드럽게 처리하고 뒷바퀴까지 지나갔을 때 출렁거림 없이 깔끔하게 원래 자세로 되돌아오는 부분이 중요하다. 이 기준에서 바라볼 때 그랜저는 훌륭한 승차감까지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현대차가 기술이 부족해서? 그건 아니다. 제네시스 G80과 G90, 그리고 기아 K9에서 나름대로 승차감 경쟁력을 높인 흔적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랜저와 제네시스 간 급차이를 뒀을 가능성도 예상해야 한다.
미디어를 비롯해 일부 인플루언서들은 그랜저의 승차감이 좋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얘기가 맞는 것일까? 이들이 얘기하는 좋은 승차감이란 충격을 최대한 완화시켰다는 의미다. 반복된 상하 움직임을 논외로 부드러움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좋은 승차감’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충격 완화에 목적을 둔 것이 이번 그랜저의 하체다. 여기서 주의가 필요하다. 상하의 움직임이 많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멀미를 유발할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누군가는 짧게 치는 충격에, 누군가는 물렁거리는 움직임 때문에 멀미를 할 수 있다. 이 특성을 잘 알고 구입해야 후회가 없다.
전자제어 서스펜션 유무에 따른 차이는?
우리 팀은 기본 구성, 캘리그래피 사양의 그랜저를 두고 승차감을 비교해 봤다. 그 결과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없을 때 움직임이 더 크게 느껴졌다. 물론 타이어도 변수가 되는데, 그랜저에는 18인치부터 20인치까지 다양한 사이즈의 타이어가 쓰인다.
그리고 사이드 월(타이어 측면) 편평비가 큰 18인치, 기본 서스펜션을 채용한 그랜저의 상하 움직임이 더 컸다. 서스펜션과 타이어가 변수가 된다는 얘기다. 20인치 휠과 전자제어 서스펜션을 사용한 그랜저도 상하 움직임이 적지 않지만, 적어도 기본 사양보다는 낫다.
기아 K8과 비교하면? 그랜저는 한쪽 축으로 기운 서스펜션을 갖췄다. 반면 K8은 승차감이란 과제를 두고 나름대로 기아차 스타일의 ‘핸들링’ 감각을 가미하려 했다. 부드러움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균형미에서는 K8이 낫다는 얘기다. 최근 소식에 따르면 기아차도 페이스리프트 이후 K8의 서스펜션을 물렁하게 풀어버릴 것이라 한다. 이 소식이 사실이 아니길 희망한다.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은 효과가 있을까? 결론적으로 있긴 하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이 옵션은 도로 상황을 읽어 댐퍼 값을 조정해 주는 기술이다. 정해진 범위 안에서 탄력적으로 대응한다고 보면 맞다. 그러나 정해진 셋업의 범위 이상을 넘나들 수는 없다. 우리 팀은 과거 이 기능이 적용된 제네시스 GV80으로 프리뷰 기능에 대한 시험을 해봤는데, 그래도 5% 이상 유의미한 결과를 가졌음을 확인한 바 있다. 체감하기 쉽지는 않지만 기술 도입 차원에서 상징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랜저는 큰 차체, 다양한 편의 장비를 무기로 7세대로 거듭났다. 여기에 1~2세대 그랜저를 타던 세대들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기존 오빠 차의 이미지를 가진 그랜저가 30~40대를 겨냥했다면 이번 그랜저는 뒷좌석 공간, 80~90년대 스타일의 하체 셋업으로 50~60대 소비자층을 타깃으로 하는 느낌이 짙다.
수입차 구입 경험이 있는 소비자들이 그랜저를 경험하면 꽤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유럽차에서 옮겨오는 소비자들이 문제다. 운동성능이 좋은 3~5천만 원대 콤팩트 모델은 물론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정도를 탔던 소비자들이 편안한 운영을 이유로 접근했을 경우 실망감이 커질 것이다. 독일 프리미엄 비즈니스 세단 스타일이 몸이 익숙해진 상태여서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워도 몸이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특히 안정감 저하를 지적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출시된 현대차를 보면 고민의 흔적이 느껴진다. 한때 비어만 사장을 중심에 두고 핸들링 성능을 향상시키던 현대차다. 젊은 엔지니어들도 달라지는 분위기에 맞춰 자신의 실력을 닦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비어만 사장은 유럽차 일부만 관여하고, 국내 사양의 섀시 튜닝 파트 등은 예전 임원들이 이끄는 듯하다. 앞으로도 주행 안정성 보다 부드러움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부가 기능으로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꿀 수 있고 패들을 통해 변속기 조작도 할 수 있다. 이때는 엔진 반응이 빨라지고 스티어링 휠도 조금 묵직해진다. 변속기도 높은 회전수를 유지한다. 하지만 차이가 조금 미미한 수준이다. 엄밀히 따지면 스포츠 모드라도 가속 페달에 따른 엔진 반응도 조금 느리며 패들로 변속해도 여유로움에 중점을 둔다. 애초에 처음부터 끝까지 부드러움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보면 된다.
코너링에서도 이런 특성이 잘 나타나는데, 코너에 진입하면서 한쪽으로 쏠리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발생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차체를 지지하지만 롤 발생에 대한 저항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이후 원래 자세로 돌아올 때도 한 번에 정자세를 만들지 못하고 흔들거리며 자잘한 움직임을 지속시킨다.
7세대 그랜저의 지향점은 더없이 뚜렷하다. 현대자동차 안에서 구입할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승용차로 개발된 것이다. 하지만 위로 제네시스가 존재하기 때문에 한계도 명확하게 설정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4륜 구동(AWD) 성능은?
이번 그랜저에는 AWD 시스템이 옵션으로 설정됐다. 이에 스바루의 세단, 아우디 콰트로 등을 생각할 소비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전륜구동 기반의 AWD로 평상시 앞바퀴에 동력을 보내는 방식으로 투싼, 싼타페 등의 SUV에 사용된 것과 같은 방식이다. 항시 4바퀴에 일정 수준의 토크를 보내면 안정감 측면에 도움이 되지만 가속 및 연비 등의 부가적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랜저는 성능 지향형 모델이 아니기에 이 방식이면 충분하다. 볼보도 AWD를 자주 사용하는데, 유사한 구동 배분을 쓴다. 그렇다면 눈길 주행을 위해 선택하면? 이 환경에서는 추천하지 않는다. 눈길, 빙판 등에서는 타이어와 노면 간의 마찰력이 더 중요하다. 4륜 구동으로 언덕은 어떻게 올라도 내리막이 시작되는 순간 쭉쭉 미끄러지는 것은 같으니까. AWD 시스템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한 뒤 내 취향과 맞는지를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좋다.
겨울철이 걱정된다면 그 환경에 강한 타이어를 사용하는 편이 낫다. 그렇다면 그랜저에 AWD를 장착하는 것은? 그랜저의 상당수는 일상에서 쓰인다. 일상 주행에서 AWD가 요구되는 환경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즉, 주행 때의 취향에 따른 선택을 해야지 이것으로 미끄러운 노면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면 안 된다.
가속 & 제동 성능
이번엔 가속력을 보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데 3.5 LPG는 7.46초, 3.5 가솔린은 6.98초를 기록했다. 4륜 구동 시스템을 통해 초반 가속에서 유리하고 출력까지 높은 가솔린 모델이 한층 좋은 성능을 발휘했다. 참고로 6세대 후기형 모델(3.3)은 7.43초가 소요된 바 있다.
제동 성능을 보면 두 모델 간 다소 편차가 있었다. 가솔린 모델의 100-0km/h 제동거리는 38m, 하지만 LPG 모델은 41m의 최단거리를 기록했다. 탑재된 타이어와 너비 등 요소로 인해 제동거리 차이를 보인 것. 참고로 LPG 모델에는 225 / 55 R18 사이즈의 넥센 엔페라 슈프림 S가, 3.5 가솔린 모델에는 245 / 40 R20 사이즈의 피렐리 피제로 올시즌 타이어가 사용된다.
그랜저를 시승하니 지금은 판매되지 않고 있는 링컨 컨티넨탈이 떠올랐다. 국내 판매 중인 수입차 중 가장 부드러운 서스펜션 성격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과속방지턱도 무섭지 않았다. SUV처럼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컨티넨탈은 코너에서 안정적으로 차체를 지지해 줬으며, 승차감은 물론 핸들링 성능 일부도 잡았다.
링컨 컨티넨탈은 8천만 원이 넘었으니까 당연히 좋아야 한다고? 문제는 그랜저의 높아진 가격에서 나온다. 소위 말하는 깡통 모델은 3천만 원대부터 시작하긴 한다. 하지만 몇 가지 옵션을 추가하거나 트림을 높이면 1천만 원이 추가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럴 일이 많진 않겠지만 일부 풀옵션 모델은 6천만 원에 육박할 정도로 비싸다.
지금은 5600만 원대 시작가를 갖는 제네시스 G80. 그러나 발표 당시의 구입 가격은 5200만 원대였다. 리스 등 조건을 잘 맞추면 차량 구입 자체는 4천만 원대 후반에 진입할 수 있었다.
현재 그랜저의 가격 3천만 원대 후반은 그렇다 해도 5천만 원 선을 넘는 순간 분명 적은 금액이 아니다. 이 정도면 ‘국산차 치고 잘 만들었다’고 섣불리 말하기도 어렵다. 제네시스 G80과 가격대가 겹칠 정도인데, G80도 주행 밸런스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브랜드 밸류와 고급스러움 등 지키려 노력했다. 당연히 이 부분에서 그랜저를 앞선다.
때문에 그랜저를 구입할 때 적정 가격선에서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성을 잘 택해야 한다. 우리 팀이 추천하는 그랜저는 무엇일까?
추천 트림
우리 팀은 기본형인 프리미엄 트림에 프리미엄 초이스 옵션을 추가를 추천한다. 기본형 트림의 구성도 충분히 좋기 때문. 외관에 풀 LED 헤드램프 및 리어램프가 장착되고 앞 좌석과 뒷좌석 모두 이중 차음 유리가 쓰인다. 실내도 12.3인치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잘 갖췄고 앞 좌석과 뒷좌석 모두 열선이 잘 들어갔다.
통풍시트가 없는데 130만 원짜리 프리미엄 초이스를 추가하면 천연가죽에 통풍 기능과 전동 트렁크와 스마트폰 무선 충전까지 챙길 수 있다. 이 구성이면 3846만 원(3.5% 개소세 포함)에 만족스러운 그랜저 구입이 가능하다.
옵션이 더 욕심난다면? 우리는 익스클루시브 트림에 옵션을 추가하지 않는 구성을 추천한다.
후측방 관련 안전기술이 추가되고 통풍에 마사지 기능까지 추가된 천연가죽 시트, 360도 전방위 카메라 등 구성적으로 충분히 좋기 때문이다. 뒷좌석 이용 빈도가 높은 경우 100만 원짜리 뒷좌석 컴포트 패키지 옵션을 추가하면 뒷좌석 리클라이닝에 통풍 기능까지 갖출 수 있다.
욕심을 내서 익스클루시브 트림에 다양한 옵션을 추가하는 것은 말리고 싶다. 금세 캘리그래피 가격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외선 살균기나 스웨이드 마감 등 캘리그래피 전용 사양이 탑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비싼 값을 낼 각오가 됐다면 차라리 캘리그래피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랜저를 구입한다면 3천만 원 후반에서 4천만 원 초반대 가격이 가장 이상적이다. 적정한 가격대에 좋은 구성까지 가져가 만족감을 높여갈 수 있으니까.
현대차는 한국 소비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다. 주행성능 일부를 포기했지만 더 그럴싸한 모습과 다양한 기능성, 고급스러워 보이는 구성에 집중했다. 물론 보란 듯이 가격도 올렸다. 지금의 그랜저는 쏘나타 위의 고급형 그랜저가 아니라 현대차의 최상급 모델을 구입한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그랜저는 해외 수출 계획이 없다. 내수 전용 모델로 기획됐고 판매를 하는 것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해외시장에서 잘 팔리지도 않았다. 이번 셋업을 보면 확실히 지역 특화형 모델임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걱정도 된다. 전 세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자국 내에서만 인지도가 높은 모델로 전락해버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토요타 크라운과 센츄리가 그러한 절차를 따르지 않았던가?
우리 팀의 결론, 국내 소비자 상당수가 그랜저에 점수를 줄 확률이 높다. 많은 것들을 갖췄고, 공간 이점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체만 보면 6세대 보다 퇴보했다. 주행 측면으로 보면 옆그레이드라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6세대에서 7세대로 옮겨 탈 소비자는 많지 않다. 차량의 업그레이드 현실을 보면 아반떼, 쏘나타 등 하위 모델에서 옮겨 타는 경우가 많으니까. 적어도 이 소비자층에게 큰 차를 샀다는 만족감을 전해줄 수 있다. 모든 상품이 그렇듯 완벽한 것은 없다. 소비자는 그 상품의 최대 장점, 그것이 나와 매칭되는지를 생각하면 된다. 다만 자동차 선진국형 셋업을 하던 현대차의 방향성이 다시금 과거로 회귀했다는 점이 반갑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