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봐도 멋진데... 빛도 못 보고 사라진 명차들

  • 기자명 뉴스팀
  • 입력 2021.07.1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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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의 자동차가 세상에 등장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을 거친다. 가장 험난한 과정은 결정권자의 선택을 받는 데 있다. 콘셉트카 등장과 함께 전 세계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았지만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양산되지 못하거나 양산 준비까지 끝났지만 갑작스러운 경영 악화로 빛을 보지 못한 모델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기다렸지만 도로 위를 달리지 못한 아쉬운 모델들을 모았다.

1993년 아마티 제도스 6 & 제도스 9(Amati XEDOS 6, XEDOS 9)

토요타가 고급 브랜드 렉서스를 내놓자 다른 일본 브랜드도 고급 브랜드를 런칭하기 시작했다. 혼다는 어큐라(Acura)를, 닛산은 인피니티(Infiniti)로 프리미엄 시장을 노리기 시작한 것. 마쯔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마티(Amati)라는 이름으로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놨으며 제도스 6과 제도스 9이라는 이름의 프리미엄 세단도 공개했다. 하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를 운영해도 이익을 내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고, 결국 프리미엄 브랜드는 폐지됐다.

2008년 아우디 R8 TDI

아우디는 2000년대 초반 디젤엔진을 바탕으로 르망 24시를 휩쓸었다. 이 기술력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자사의 슈퍼카 R8에 V12 디젤엔진을 넣은 콘셉트카를 만들어 2008년 LA 오토쇼에 내놨다. 이미 아우디는 Q7에 V12 디젤이 탑재된 바 있는 상황. R8 TDI는 양산 최초의 디젤 슈퍼카 타이틀을 갖게 될 예정이었지만 판매해도 이윤이 남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 나와 양산이 되지 못했다.

1996년 BMW M3 컴팩트

BMW의 1세대(E30) M3는 가벼운 차체, 강력한 동력성능, 날렵한 핸들링으로 등장 직후부터 많은 팬을 모았다. 그러나 2세대(E36)으로 변경되면서 1200kg 전후에 머물렀던 무게가 순식간에 1500kg을 넘어버리고 말았다. 이에 BMW는 M3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M3 컴팩트를 개발했다. 해치백 수준으로 크기를 줄여 1300kg 대 무게로 맞춘 것. 하지만 직렬 6기통 3.2리터 엔진에서 발휘되는 321마력의 출력은 동일하게 발휘됐다. 보다 저렴한 가격과 가벼운 무게 등으로 젊은 소비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 것 같았지만 BMW는 계획을 보류하고 1대의 프로토타입만 남긴 채 양산을 관뒀다.

1987년 BMW 767iL

BMW는 V12 5.0리터 엔진에 4개의 실린더를 더해 V16 6.7리터 엔진을 만들었고, 이것을 7시리즈에 탑재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16기통 엔진은 408마력을 발휘했는데, 당시 기준으로 보면 슈퍼카에 맞먹는 힘이었다. 하지만 엔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바람에 750iL 엔진룸 중 라디에이터를 뺄 수밖에 없었다. 라디에이터는 2개로 나눠 트렁크에 장착했고 공기 흡입을 위한 별도의 흡입구까지 마련했다. 767iL는 실 주행 테스트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BMW 임원들은 V12 엔진 이상의 시장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해당 프로젝트를 취소시켰다.

2010년 재규어 C-X75

재규어 창립 75주년을 기념해 등장한 C-X75는 재규어와 영국 F1 팀 윌리엄스 F1과 함께 개발한 미래형 슈퍼카다. 구동은 전기모터가, 전력은 마이크로 디젤 가스터빈 엔진이 공급하는 레인지 익스텐더 구성을 갖췄다. 디젤 연료를 가득 채우면 한 번에 900km 주행이 가능했을 정도로 효율도 좋았다. 출력은 780마력, 최대토크는 163.2kgf·m로 강력한 힘을 발휘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2.9초 만에 도달했다. 하지만 당시 국제 금융위기 여파로 인해 80만~100만 파운드(약 12억 7천만 원~15억 9천만 원) 짜리 차를 판매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논의가 이어졌고, 결국 C-X75 프로젝트는 취소됐다. 그래도 C-X75는 6대가 만들어졌다.

2021 재규어 XJ EV

당초 재규어의 기함급 세단 XJ는 6세대 모델체인지를 통해 전기차로 등장할 예정이었다. 공개 시기는 2020년. 하지만 차세대 XJ는 내부적으로 성능, 주행거리, 각종 기능 등을 동급 경쟁 모델들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티저 이미지까지 공개하고 양산 일정까지 잡혀 있었지만 6세대 전기 XJ는 최종 단계에서 빛을 못 보고 정리됐다.

2008년 기아 픽업트럭

현재는 현대차가 싼타크루즈를 통해 북미 픽업트럭 시장에 진출했지만 첫 시도는 기아에서 나왔다. 2008년 2세대 쏘렌토를 기초로 픽업트럭을 개발한다는 것인데, 혼다의 릿지라인(Ridgeline)과 같은 유니바디 기반의 픽업트럭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07년 미국 발 국제 금융 위기가 발생했고 유가도 치솟으면서 기아의 트럭 개발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현대 싼타크루즈가 탄생했다.

1995년 람보르기니 칼라

람보르기니는 1994년까지 크라이슬러 산하에서 활동했으며, 이후 메가테크(Megatech)에 인수됐다. 람보르기니의 새로운 시작은 이탈디자인(Italdesign)과 공동 진행한 입문형 슈퍼카 칼라(Cala)를 통해 진행되는 듯했다. 칼라는 V10 4.0리터 엔진을 중앙에 탑재한 슈퍼카로, 당시 디아블로가 유일했던 람보르기니에게 많은 기대를 안겨줬던 모델이다. 하지만 람보르기니의 신차 출시 계획은 지지부진하게 미뤄졌고, 결국 1998년 폭스바겐에게 인수될 때까지 칼라는 출시되지 못했다.

2018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SV 쿠페

2018 제네바 모터쇼에서 랜드로버는 레인지로버 SV 쿠페라는 이름의 고급 모델을 공개했다. 랜드로버 최상위 모델인 레인지로버의 쿠페형 모델로, 사치적인 감성을 높인 모델이었다. 당시 24만 파운드(약 3억 8천만 원)에 이를 정도로 값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하지만 나 홀로 레인지로버를 즐기고 싶은 일부 부호층 수요를 노렸고 양산 가능성도 높게 평가됐다. 그러나 랜드로버의 매출과 이익이 빠르게 적자 상태로 바뀌면서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레인지로버 SV 쿠페 프로젝트는 취소되고 말았다.

1991년 메르세데스-벤츠 C112

벤츠 300SL은 당시 어떤 모델보다 빠른 슈퍼카 역할을 했다. 도어가 위로 열리는 걸윙 도어와 함께 수려한 디자인으로 많은 사랑도 받았다. C112는 바로 300SL의 후속 모델 역할을 하는 슈퍼카다. 이 모델은 1990년 C11 그룹 C 레이스카의 공도 주행 인증용 역할도 했을 정도로 강력한 성능을 발휘했다. 400마력을 발휘하는 V12 6.0리터 엔진을 사용했으며, 각종 경량화 기술과 에어로 다이내믹 등 최신 기술이 모두 집약됐다. C112가 등장한 이후 구입 신청만 700건 이상 받았을 정도. 하지만 벤츠는 오직 모터스포츠에 집중하기 위해 C112를 양산 시키지 않았다.

1985년 닛산 미드4(Nissan Mid4)

198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통해 등장한 미드4는 닛산이 로터스의 영역을 넘보기 위해 내놓은 미드십 경량 스포츠카다. 현재도 일부 슈퍼카들만 사용 중인 미드십 구조를 채택한 것이 특징. 여기에 스카이라인 GT-R에 사용됐던 4륜 시스템과 4휠 스티어링 시스템을 탑재해 주행성능을 더욱 높였다. 엔진은 V6 3.0리터를 사용했다.

1987년 다시 등장한 미드4 II 콘셉트는 한층 멋스러운 디자인과 V6 3.0리터 엔진에 2개의 터보차저를 더해 출력을 325마력까지 끌어올렸다. 미드4 스포츠카는 양산 직전까지 갔으나 대당 제작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진다는 점으로 인해 끝내 판매되지 못했다.

1989년 포르쉐 989

포르쉐 911은 4명이 탑승한 상태로 편안하게 장거리 이동이 가능한 GT카 개념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조금 더 뒷좌석 탑승자를 위해 배려한 모델이 989다. 989는 실제 911을 늘리고 뒷좌석 도어를 더한 모델이다. 차량이 크고 무거워진 만큼 공랭식 수평대향 엔진 대신 아우디에서 빌려온 V8 4.2리터 엔진을 탑재했다. 989는 기본형 모델이 350마력을 발휘했을 정도로 힘도 넉넉했다. 하지만 포르쉐는 1991년 989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당시 포르쉐는 989의 제작 단가가 너무 비싸 양산하기 힘들었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르쉐 989 프로젝트는 현재 파나메라를 통해 실현됐다.

1994년 포르쉐 C88

중국이 1980년대 시장 개방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선 제조사는 폭스바겐과 아우디였다. 이들은 일찍부터 중국 자동차 업체와 합작회사를 설립했고, 현재는 중국인들에게 국산차 못지않은 친근한 이미지를 갖는데 성공했다. 포르쉐도 중국 시장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포르쉐는 저가형 세단을 만들어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 했으며, 4개월이라는 짧은 연구 개발 기간을 거쳐 1994년 베이징 모터쇼에서 C88을 공개했다. 하지만 중국 자동차 회사들에게 다양한 아이디어만 전달해 줬을 뿐 포르쉐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포르쉐는 중국 시장에 진출도 하지 못한 상태로 C88은 단 1대만 제작됐다.

1997년 폭스바겐 W12

폭스바겐도 자사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슈퍼카 개발을 진행했다. 1997년 VR6 엔진 2개를 결합한 W12 엔진을 개발했고, 이 엔진으로 미드십 슈퍼카 W12를 발표한 것. 단순히 신개발 엔진을 알리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고 실제 양산까지 계획되어 있었다. 초창기 모델의 배기량은 5.6리터였지만 향후 6.0리터로 배기량도 늘렸다. 2001년에는 나르도(Nardo) 트랙에서 357km/h의 기록, 2002년 나르도 트랙 7740km를 평균속도 322.981km/h의 속도로 주행하는 등 다양한 기록을 작성하며 양산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폭스바겐 회장은 W12 프로젝트를 취소시키는 대신 이 기술력을 다르게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W16 엔진으로 1000마력 이상 발휘하며 400km/h 이상 달릴 수 있는 부가티 베이론이 탄생하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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