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가 아닌 제라리? 경매에 출품된 페라리 왜건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1.06.23 11: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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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이한 페라리가 경매에 출품됐다. 그런데 이 페라리는 페라리가 만들지 않았다. 심지어 페라리가 단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은 왜건이다. 대체 어떤 차일까?

페라리 FF와 GT4 그리고 250 GTO 일명 ‘브레드 밴'은 페라리 역사상 매우 드물게 존재하는 슈팅 브레이크다. 사실 페라리는 이런 스타일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작은 250 GTO 브레드 밴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차도 페라리가 제작한 것은 아니었다. 한 레이스팀에서 250 GTO를 중고로 사들인 다음 레이스카의 뒤편에 에어로 다이내믹을 캄 테일(Kamm Tail)로 개선한 모델이었는데, 일설에 따르면 엔초 페라리는 이 팀에게 레이스카를 판매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에도 몇 차례 비슷한 시도는 있었지만, 어쨌든 페라리는 이런 스타일을 극도로 혐오하는 듯했고 대부분 독립 레이스팀이나 카로체리아에서 한두 대 정도 만드는 게 고작이었다. 물론 2000년대 들어서 페라리는 FF와 GTC4처럼 슈팅브레이크를 만들었으며 지금은 SUV인 푸로산게를 개발 중에 있다. 엔초 페라리라면 절대로 승인하지 않았겠지만, 페라리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오늘날 좀 더 융통성 있게 변하고 있는 페라리라도 아마 이 차는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지독한 상상력이 빚어낸 괴물 같은 페라리가 최근 경매에 출품됐다. 이 차는 1960년대 후반, 엔초 페라리가 살아 있던 시절에 만들어졌다. 카지노계의 거물 빌 하라는 평소 4WD 페라리를 염원했지만 엔초 페라리는 극구 그의 청을 거절했다. 몇 차례의 거절에 자존심이 상해버린 그는 결국 스스로 4WD 페라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69년산 페라리 365 GT 2+2를 사들였는데 문제는 사고를 당하면서 그만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부득이한 상황에서 그는 1969년 지프 와고니어를 새로 구입했고 결국 두 차를 하나로 결합하기로 결심했다. 망가진 페라리로부터 근사한 곡선을 지닌 노즈를 살려냈고, 그 속에 들어 있던 엔진과 트랜스미션 역시 함께 건져냈다. 그리고 와고니어의 코를 잘라낸 다음 그곳에 페라리의 파워트레인과 함께 노즈를 결합했다.

그렇게 페라리 역사에도 없었고, 지프 역사에도 없었던 희귀한 변종인 4.5리터 V12 지프 또는 4개의 도어와 SUV의 캐빈룸을 가진 페라리가 태어났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오너는 이 차를 꽤 오랫동안 사용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름도 지프와 페라리를 결합해 제라리(Jerrari)라고 붙였다. 그렇게 몇 년을 즐기던 그는 파워트레인을 원래의 V8으로 교체했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기묘한 프로포션의 제라리는 이 차를 탐내던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

그렇게 한동안 이 차의 존재가 묘연해졌다가 2008년 무렵 다시 경매 사이트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 후 독일로 거처를 옮긴 다음 지금까지 보관되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연과 함께 이 차에는 독특한 개성이 가득하다. 껑충한 지상고를 가진 페라리라는 존재도 어색하기 이를 데 없지만, 네 개의 도어와 함께 마치 상자 같은 캐빈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페라리와 지프 와고니어의 결합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다. 어색하다거나 서투른 이음새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원래부터 이렇게 만들어진 것처럼 깔끔해서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페라리의 프로토타입 카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원 제작자였던 빌 하라는 이 차를 만들면서 자신의 청을 거절한 엔초를 조롱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차체 색깔을 빨간색이 아닌 짙은 녹색으로 바꾼 건 애교 수준이다. 그는 페라리의 사각형 엠블럼 안에서 뛰어노는 플랜싱 호스를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의 형상으로 바꾸었고, 심지어 그 옆에 JEEP라는 이름까지 써넣었다. 그리고 페라리의 레터링을 그대로 복제해 F를 J로만 변경했다. 트렁크 게이트의 레터링에도 그의 장난기 어린 조롱은 계속됐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이 자동차가 최근 경매로 출품됐다. 물론 진지한 페라리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금기를 깨트린 물건이기에 환영받을 리 없지만, 빌 하라만큼 익살 넘치는 부호라면 이 차를 사들인 다음 콩코르소 델레간차에 참가하려 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전에 지프에서 사용했던 V8 엔진을 다시 페라리의 콜롬보 엔진으로 교체하려는 시도는 할 것이다. 그래야 좀 더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엔초 페라리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헨리 포드 2세와 함께 또 한 사람의 괴물을 낳고야 말았다. 대체 엔초가 자동차 문화에 미친 영향력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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