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BMW급 가격이 문제

지프에게는 고민 아닌 고민이 있다. 랭글러가 잘 팔리는데 무슨 고민이라고 생각할 소비자도 많은 것이다. 그러나 지프의 전체 라인업 판매량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위 표는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지프 모델 판매량이다. 지프 브랜드의 기함급 모델인 (현재는 그랜드 왜고니어) 그랜드 체로키가 가장 많이 팔렸다. 지프의 자존심 랭글러도 만만치 않은 인기를 보였다. 다음이 체로키, 컴패스, 레니게이드 순이다.

시장의 볼륨 모델로 통하는 컴팩트 SUV 인기가 지프 안에서는 신통치 않다. 지프가 가장 많이 파는 모델도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을 겸비한 랭글러 또는 그랜드 체로키 등이다. 소비자 방향성이 뚜렷하다는 것.

하지만 언제까지나 정통 오프로더만 판매할 수는 없다. 전 세계 대부분의 SUV가 온로드 주행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중 대다수는 준중형~중형급 SUV들이다. 지금처럼 지프 브랜드가 소비되는 구조로는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남는데 제한이 따른다.

때문에 컴패스와 같은 컴팩트 SUV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신규 소비자 진입, 그것이 지프 브랜드의 대중화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레니게이드는 너무 패션카 느낌이 난다. 반면 컴패스는 지프 브랜드의 독창적인 색을 쉽게 전달할 수 있다.

이래저래 어깨가 무거운 컴패스가 2세대 페이스리프트 사양으로 국내 들어왔다. 한국에서도 지프의 대중화를 이끌 수 있을까?

1세대 컴패스는 조금 이상하게 생겼었다. 컨셉트카의 디자인을 그대로 옮겼지만 오리지널 지프 느낌이 적었고, 그렇다고 도심형 SUV 느낌도 나지 않았다. 2세대 모델만 해도 확실한 디자인 방향이 애매했다. 페이스리프트 이후 갈피를 잡은 것 같다.

이번 컴패스의 디자인 특징은 ‘업 스케일’이다. 상급 모델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쓴 것이다. 디자인으로 보면 작은 그랜드 체로키를 떠올리게 한다. 지프 특유의 세븐-슬롯 그릴을 유지하면서 강한 이미지를 보인다. 범퍼 디자인도 달라졌는데, 이 덕분에 전체적인 이미지가 달라 보인다. 분명 멋있어졌다.

측면부나 후면부 차이가 크지 않다. 지프를 상징하는 사다리꼴 형태의 휠 하우스, 리어램프나 범퍼 디자인은 그대로 유지했다. 휠 디자인만 새롭게 바꾼 정도다.

지프만의 아이디어와 유머 코드도 곳곳에 숨어있다. 윈드실드 구석에는 오리지널 지프가 등반을 하는 모습, 테일게이트 윈도우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 컵홀더나 트렁크 측면 커버 등에 지프를 상징하는 램프와 세븐-슬롯 그릴을 표현한 그림도 숨겨 넣었다.

실내는 크게 변했다. 기존 모델의 인테리어는 한마디로 표현해 너무 올드한 모습이었다. 큼지막한 버튼이 조작성은 좋아도 시각적 아쉬움을 키운다. 스티어링 휠도 두껍고 뭉툭했으며, 센터페시아 하단 트레이도 비대칭형이었다. 수직적인 디자인 때문에 실내가 넓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아쉬움이 해소됐다. 계기판을 10.25인치 디스플레이로 바꿔 다양한 정보를 멋지게 보여준다. 새로운 스티어링 휠도 세련된 디자인을 가지며, 개선된 버튼 배열로 조작 경험까지 살렸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10.1인치 터치스크린에 태블릿 스타일이다. 하단의 버튼 배치도 한결 깔끔해졌다. 대시보드도 수평적인 구도로 바꾸면서 안정적이고 넓어 보이게 구성했다. 심지어 송풍구 디자인까지 세련된 모습이다. 이제서야 지프도 트렌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어디서 많이 봤던 디자인이다. 마세라티를 통해 경험한 적이 있던 UI(User Interface)다. 그러나 더 빠르고 직관적이다. 운전자가 자주 사용하는 메뉴를 밖으로 노출시키는 등 개인 설정도 할 수 있다. 사용 환경 측면서 어렵지 않고 쾌적해 만족스러웠다.

미국차답지 않게 마감 품질도 무난 해졌다. 대시보드는 가죽 소재로 덮였는데, 박음질(스티칭) 장식으로 멋을 부렸다. 도어 패널에도 가죽이 사용된다. 플라스틱 소재가 그대로 노출됐던 공조장치와 기어 레버 주변은 하이그로시 블랙으로 마감했다. 크롬도 적절히 사용했고, 브러시드 처리가 이뤄진 장식까지 더했다. 과거 컴패스에서 생각할 수 없었던 고급화 전략이다.

한국인의 필수 사양 통풍과 열선시트도 지원한다. 다만 시트백이 아닌 쿠션 부분만 시원하게 해주는 한계가 있다. 시트는 몸을 잘 지지하는 타입이 아닌, 편안함에 초점을 맞춘다.

차체 크기가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수준에 해당하는 만큼 뒷좌석 공간이 넉넉하지는 않다. 유아용 시트 장착을 위한 ISO FIX도 별도 커버 없이 쿠션과 시트백 사이에 끼워 채결하는 방식이다.

구성은 무난하다. 컴패스 최초로 열선 스티어링 휠도 달았다. USB 포트는 A 타입과 C 타입 모두를 지원한다. 12V 파워 아울렛과 230V 전원 단자도 있다.

트렁크 공간은 차체 사이즈에 비례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폭이 아쉬운데, 휠 하우스에 의한 돌출 공간과 스피커까지 추가돼 다소 좁아 보이는 약점이 있다. 트렁크는 전동식으로 여닫힌다.

사운드 시스템은 알파인(Alpine) 제품이다. 특출나게 뛰어난 사운드는 아니지만 랭글러나 글래디에이터, 레이게이드와 비교하면 조금 더 깔끔한 느낌을 준다.

주행을 위해 시동을 건다. 4기통 2.4리터 멀티에어 엔진이 작동을 시작한다. 이 멀티에어 엔진은 일반적인 캠축에 의한 밸브 작동이 아닌 유압으로 밸브를 컨트롤한다는 특징이 있다. 캠축에 의해 일정한 움직임만 가능했던 방식과 달리 컴퓨터가 필요에 따라 밸브 조작을 직접 한다는 점이 이점으로 작용한다. 다른 엔진들처럼 밸브를 열고 닫는 것은 물론, 피스톤 상사점 이전에 밸브를 열거나 하사점 이전에 밸브 닫기, 필요에 따라 밸브를 짧게 열고 닫는 작업을 수차례나 끊어 진행할 수도 있다. 엔진 제어 시스템이 직접 밸브를 제어함으로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필요에 따라 큰 힘을 내다가 최소한의 연료로 자동차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덕분에 같은 배기량의 엔진 대비 10%가량 높은 효율을 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기술이 지금 시대에 어필되긴 어렵다. 자연흡기 방식으로 175마력과 23.4kgf·m의 토크를 만들어내는데, 현재 기준으로 볼 때 뛰어나지 않은 수준이다. 수입차를 고려하는 상당수 소비자들은 터보 엔진을 경험했고, 여유로운 토크에 의한 가속성능에 익숙해졌다. 컴패스에게도 조금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가다 서다가 많은 도심 환경, 이때는 운전이 편하다. 가속페달 조작에 따른 빠른 엔진 반응 덕분이다. 터보차저가 힘을 내주기까지의 시간, 터보래그가 필요 없다는 이점 덕이다. 일상에서의 가속 및 도심을 중심에서 편했다는 얘기다.

이는 어디까지나 가속페달을 50% 미만으로 조작하는 환경이다. 그러나 가속페달을 절반 이상 밟거나 끝까지 밟을 때 가속감 차이는 크지 않았다. 단, 5000rpm 이후부터 다시금 힘이 활발해지는 시기가 찾아오는데 이를 위해 가속페달을 지속적으로 깊이 밟고 있기는 부담이 따른다.

변속기는 지프답다. 느리다는 얘기다. 9단 변속기를 사용하는데, 일반적인 주행 환경에서 느긋하게 작동한다. 수동모드로 변경해도 마찬가지. 오프로더의 피를 물려받았고, 빠른 주행을 위한 모델이 아니니 크게 문제 삼을 필요는 없겠다. 엔진 성향처럼 여유로운 운전을 하면 되다고 할까? 참고로 2WD 모델은 6단 변속기를 쓴다.

스티어링 감각과 하체의 반응 등에서 나름대로의 세련미를 찾을 수 있다. 유격이 커서 덜렁거리는 감각은 없다. 이 차가 도심형 SUV라는 부분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스티어링 휠을 조작하면 나름 빠른 템포로 움직이려 한다. 후륜이 따라오는 속도도 나름대로 빠르다. 이러한 성격에 맞춰 서스펜션도 탄탄한 성격으로 바꿨다. 노면의 요철을 어느 정도 실내로 전달하는 정도다. 하지만 SUV 성격에 맞춰 위아래로 움직이는 스트로크는 긴 편인데, 과속방지턱과 넘을 때 서스펜션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많았다.

주행모드도 지프답다. 컴포트, 스포츠, 인디비주얼과 같은 주행모드는 없다. 셀렉-터레인(Selec-Terrain) 지형 설정 시스템만 있는데, 주행 환경에 맞춰 인지하는 오토, 눈길, 모래, 진흙까지 4가지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여기에 2륜과 4륜을 오갈 수 있는 기능을 비롯해 전후 구동 배분을 50:50으로 맞춰주는 4륜 락(4WD Lock) 기능, 험로 탈출이 가능한 4륜 저단 기어(4WD Low), 내리막길 속도 제어장치인 HDC(Hill Decent Control)까지 다양한 오프로드 기술이 담겼다. 패션카라고 하기엔 제대로 된 오프로드 구성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오프로드에 진심인 지프가 컴패스에 브리지스톤의 듀얼러 H/P 스포츠(Dueler H/P Sport) 타이어를 신겼다는 것. 이 타이어는 SUV 타이어 중 고성능 여름용 타이어에 해당한다. 오프로드를 즐기기보다 도심 주행 환경에서 제 성능을 발휘하는 성격이다.

적당히 빠른 거동과 탄탄한 승차감을 전달하는 섀시와 함께 고성능 타이어까지 장착되니 코너를 돌아나가는 감각이 좋은 편에 속한다. 해치백과 유사한 수준의 완전한 도심형 SUV까지는 아니지만 지프로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그랜드체로키 L에서 느꼈던 기대 이상의 주행성능이다. 그저 타이어 접지력에 의존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아 만들어낼 수 있는 안정감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도심형 SUV 매력을 갖췄다는 점은 ADAS에서도 볼 수 있다. 정차 및 재출발이 가능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로 중앙 유지, 표지판 인식, 운전자 졸음 감지 기능 등을 갖췄다. 뿐만 아니다. 평행 및 수직 주차와 출차까지 지원하는 자동 주차 기능, 360도 전방위 카메라, 무선 충전 패드 등 고급 편의 장비도 탑재됐다.

신형 컴패스는 지프 브랜드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드러난다. 젊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을 실내외에 적용했고 주행감각도 온로드 중심으로 많은 튜닝을 했다. 다양한 편의 및 안전장비를 갖췄으면서 충실한 오프로드 성능으로 지프 브랜드의 유산도 지켰다.

잘 팔릴 수 있는 차다. 새로운 컴패스를 경험한 다른 팀원들도 달라진 지프의 모습에 만족감을 표했다. 하지만 아직 컴패스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먼저 이미지와 브랜딩을 확실히 해야 한다. 지금의 지프 이미지는 대중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 어디에 속하지 않는 상태다. 랭글러를 제외하면 일반 대중 브랜드보다 조금 더 비싸게 받는 제조사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컴패스의 가격이 5140~5640만 원으로 출시됐다. 불과 작년까지 판매됐던 전기형 컴패스가 4390~4590만 원에 판매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1천만 원 가까이 비싸진 것이다. 여러 기능성이 추가됐지만 그럼에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 가격이다. 물론 경쟁 모델인(경쟁하고 싶은)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나 메르세데스-벤츠 GLA와 비교하면 더 많은 기능을 갖추면서 저렴해 보인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현재의 컴패스를 GLA와 동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렉서스 UX보다도 비싸다.

가격만큼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었다. 그러나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단순히 기능 많이 넣고 프리미엄 브랜드라고 자처하는 브래드도 있지만 이를 통해 시장에서 경쟁하기엔 어려움이 많다.

지프에게 입문형 모델의 역할은 크다. 랭글러가 부담스러운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 혹은 랭글러에 매료된 소비자들이 지프 브랜드에 입문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역할을 컴패스가 해야 한다. 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지프 브랜드 입문자들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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