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3년 반만에 F1에서 우승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2.03.2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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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세 시즌 만이다. 스쿠데리아 페라리가 오랜 침묵을 깨고 2022 포뮬러1 시즌 개막전에서 원 - 투 피니쉬를 차지하며 새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심지어 압도적인 차이를 기록하며 언터쳐블로 거듭났다.

2022년 포뮬러1 시즌이 드디어 개막을 알렸다. 이번 시즌은 테스트부터 수많은 이슈가 양산됐고, 이런 저런 뉴스들이 지면을 뒤덮었다. 이유는 2014년 이후 무려 8년만에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의 레이스카 샤시가 첫 선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규정이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시즌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강자가 등장한다. 최근 10년만 되돌아봐도 그렇다. 2009년 브런 GP가 그랬고, 다음에는 레드불 레이싱이 그리고 바로 이전 시즌까지는 메르세데스 AMG가 그랬다. 이렇게 엄청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새로운 규정의 변화 속에서도 페라리는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포뮬러1에서 가장 유명하며, 전세계 스포츠카 시장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페라리에게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그들의 존재 이유이자 심장이며 열정이다. 그러나 그들이 거두어 들인 성적을 보면 그들의 열정만큼 뜨겁지 못하다. 특히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여덟 번의 시즌은 더욱 그러했다. 심지어 지난 두 시즌 동안 페라리는 아예 한 번도 우승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레드불 레이싱과 메르세데스 AMG가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페라리는 이른바 무풍지대에 홀로 서 있을 뿐이었다. TV에서 페라리의 스칼렛 레드는 보이지 않았으며, 이따금 보인다고 해도 의미없는 장면이었거나 혹은 사고 장면이었다.

70년 페라리 포뮬러1 역사에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팬들은 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스쿠데리아를 응원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페라리를 향한 애정은 그들의 성적과 무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페라리이기 때문에 응원하는 것 뿐. 그럼에도 페라리는 한 시즌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게 그들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그 어떤 팀보다 거대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만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페라리는 그런 노력이 늘 빛을 발하는 게 아니라는 걸 지난 몇 시즌 동안 뼈저리게 느꼈다. 특히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파워 유닛 퍼포먼스를 높이기 위해 무던히 애썼건만, 그들의 노력은 FIA에 의해 금지되거나 제한당했고 결국 모든 것이 리셋되기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냥 기다리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걸 페라리는 트랙 위에서 스스로 입증해보였다.

사실 윈터 테스트 기간 중 페라리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지난 시즌 그들의 순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특별히 빠르지도 않았고, 심지어 새로운 이슈로 등장한 퍼포이징(Porpoising-차가 출렁이며 트랙션을 잃어 버리는 현상을 말하는 신조어) 문제도 가장 심각해 보였다. 그래서 페라리가 새로운 시즌에 무언가 놀랄만한 것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 넘치는 겸손을 보였던 레드불 레이싱에게 더 많은 시선이 주목됐다. 물론 윈터 테스트는 자체적으로 기획한 테스트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여기서 꼭 플랫 아웃할 필요는 없다지만, 그럼에도 페라리는 꽤 근사해 보이는 디자인을 제외하면 특별히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이 철저한 연기이고 연막이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주말 열린 2022 포뮬러1 시즌 개막전, 바레인 그랑프리의 예선에서 페라리는 실로 오랜만에 폴 포지션을 차지했다. 샤를 르클레르는 디펜딩 챔피언, 막스 페르스타펜보다 0.128초 가량 빨랐다. 퀄리파잉 모드로 돌입하면 그 차의 진정한 한계 퍼포먼스를 경험하게 되는데, 막스와 레드불이 아닌 페라리와 샤를이 어떤 우연이나 행운도 아닌 실력으로 폴 포지션을 차지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일은 레이스 당일 일어났다. 많은 이들은 디펜딩 챔피언이 스타트와 동시에 샤를을 추월하고 유유히 첫 번째 코너를 빠져나간 후 간격을 만든 다음 그대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할 거라 믿었다. 심지어 5번 그리드에 선 루이스 해밀턴과 메르세데스의 예선 결과에는 그들도 알지 못하는 실수가 있었을 것이라 믿기도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코너를 통과했을 때, 모든 예상은 깨졌고 샤를은 단 몇 랩만에 디펜딩 챔피언과의 거리를 3초 이상 벌려나가기 시작했다. 막스 페르스타펜이 새로운 18인치 타이어로 교체하고 나온 직후 잠시 2001년 미카 하키넨과 미하엘 슈마허의 레전드 배틀을 재현하는 듯 했지만, 그 싸움의 승자는 루이스 해밀턴에게도 두려움없이 도전했던 막스가 아니라 지난 시즌 내내 조용하기만 했던 샤를 르클레르였다. 이후 레드불에게는 기회가 없었다.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기회를 만들수 없었다.

샤를과 페라리는 아주 빠르고 안정적이었다. 실수가 없었고 강력했다. 반면 혼다에서 레드불 파워트레인즈로 파워 유닛 생산 시스템을 전환한 레드불 레이싱은 50랩을 넘기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두 대 모두 엔진 트러블로 인해 리타이어했고, 같은 엔진을 사용하는 피에르 개슬리의 알파 타우리도 같은 문제로 트랙을 떠났다.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의 퍼포먼스는 빈약했다. 비단 메르세데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파워 유닛을 공유하는 모든 팀(멕라렌, 윌리엄스, 애스턴 마틴)이 그랬다.

반면 페라리의 엔진을 공유하는 하스는 몇 시즌만에 5위를 차지하며 귀중한 포인트를 획득했다. 그리고 파워 유닛의 생산자, 페라리는 스쿠데리아 페라리에게 1,2위 포디움을 동시에 안겨줬다. 레이스 내내 그들을 건드릴만한 팀은 없었다. 변수를 유도하는 전략도, 도발도 심지어 예기치 않은 세이프티카 상황도 스쿠데리아의 우세를 막지 못했다. 스칼렛 레드팀을 응원하는 붉은색의 물결은 환호를 퍼부었고, 그렇게 페라리는 2019년 싱가포르 그랑프리 이후 시달렸던 극심한 우승 가뭄에 엄청난 소나기를 뿌렸다.

물론 시즌 개막전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페라리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닌 스스로의 노력과 실력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는 것이다. 파워 유닛의 안정성과 퍼포먼스는 물론 에어로다이나믹과 타이어에 대한 이해도,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이제 막 시즌이 시작한 것 뿐이지만 현재 페라리의 모습은 한 두 레이스만에 사라질 정도로 가볍지 않다.

다시 포뮬러1 우승을 향한 경쟁 구도로 돌아온 스쿠데리아 팬들에게는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포뮬러1에게도 좋은 일이다. 어찌됐건 페라리가 있기 때문에 그들도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2022년 포뮬러1, 확실히 좋은 분위기에서 출발했다. 과연 페라리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슈마허 이후 멈췄던 지배의 시대를 다시 열 수 있을지 지켜보자.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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