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 환희의 여신상이 모습을 바꾸는 이유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2.02.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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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게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롤스로이스를 상징했던 스피릿 오브 엑스타시(환희의 여신상)이 모습을 바꿀 예정이다. 브랜드를 넘어 브리티시 프리미엄을 상징했던 여신상의 디자인을 바꾸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짝 구부린 무릎과 바람을 향해 숙인 등과 허리 그리고 그 뒤에 펼쳐진 휘날리는 옷자락. 웅장하다 못해 권위마저 느껴지는 사각형의 롤스로이스 엔진 후드. 그 끝에 청초하게 서서 오롯이 바람을 맞는 스피릿 오브 엑스타시는 롤스로이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심벌이자 동시에 브리티시 프리미엄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흔히 환희의 여신상이라고도 불리는 이 조각상은 처음부터 롤스로이스의 것은 아니었다. 롤스로이스를 주문했던 영국의 귀족, 몬테규 남작에 의해 탄생한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1909년 롤스로이스의 실버 고스트를 주문한 몬테규 남작은 평범하게 마감된 라디에이터 캡이 허전했던 나머지 자신이 후원하던 조각가, 찰스 로빈슨 사익스에게 자신만을 위한 마스코트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다.

그렇게 찰스 로빈슨 사익스는 엘리노어 벨라스코 쏜튼을 모델로 선택했고 펄럭이는 예복을 입힌 후 그 자태를 조각으로 남겼다. 당시 몬테규 남작을 위해 제작한 조각상은 총 네 점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훗날 이 조각상의 모델이었던 엘리노어 벨라스코 쏜튼의 신분을 초월한 비밀스러운 사랑 이야기가 밝혀지면서 조각상의 신비로움을 더 했다.

이후 롤스로이스는 사익스의 조각상에 주목했고, 결국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조형물로써 스피릿 오브 엑스타시를 선택했고 그로부터 10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롤스로이스의 아이콘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시대를 초월해 하나의 브랜드를 넘어 럭셔리 그리고 프리미엄을 상징하게 된 스피릿 오브 엑스타시의 디자인이 110년만에 바뀔 예정이다.

보행자 안전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발의된 라디에이터 장식물에 대한 엄격한 규제 속에서도 끝내 살아 남은 거의 유일한 존재이자 100년 넘게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상징물, 스피릿 오브 엑스타시의 디자인을 바꾸는 건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롤스로이스가 이 위험한 작업을 진행하려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유는 바로 공기 저항 때문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EQS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EQS는 분명 S클래스에 속하는 EV임에도 불구하고 S클래스의 상징과도 같은 3포인트 스타 엠블럼이 없다. 이유는 공기 저항계수를 0.20Cd까지 낮추기 위함이었다. 이 정도의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면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공기 저항을 줄일 방법이 없다는 것이 보다 구체적인 해석일 것 같다. 결국 EQS는 웅장한 라디에이터 그릴도, 상징적인 엠블럼도 없이 티어 드롭과 캡 포워드 형태로 디자인되어 세상에 등장했다.

이런 상황은 롤스로이스도 피해가기 어렵다. 이미 2023년 스펙터를 통해 전동화를 선언한 롤스로이스가 직면한 상황은 어쩌면 더 힘든 것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롤스로이스는 V12 엔진이 수납되는 거대한 엔진룸의 부피조차도 자신들의 상징물로 지정할 정도로 겉으로 드러나는 감출 수 없는 웅장함에 무척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EV 컨셉트카 103EX만 보더라도 이들이 사각형의 영역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롤스로이스가 고집하는 형태는 분명 공기 저항을 줄이는데 불리하다. 그래서 결국 롤스로이스는 드러나는 웅장함과 공기저항의 감소라는 효율 사이에 타협안을 찾았고 그게 바로 스피릿 오브 엑스타시 디자인의 변경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롤스로이스의 EV에서는 더 이상 드레스를 펼친 여신상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마치 재규어가 리핑 캣 대신 원형 버튼에 재규어를 가둔 것처럼 여신상의 이미지도 어딘가에 평면으로 가둘 속셈인 것일까?

“스피릿 오브 엑스타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의 마스코트이자 단순한 상징성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브랜드를 나타냄과 동시에 고객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자부심을 부여하는 원천과도 같습니다.” 라고 설명한 톨스텐 뮐러, 롤스로이스 CEO는 매 시대마다 조금씩 스피릿 오브 엑스타시의 디자인은 바뀌어 왔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새로운 디자인은 지금보다 좀 더 유선형의 우아한 모습이 될 것이며, 지금까지 디자인된 스피릿 오브 엑스타시 중 가장 공기역학적인 형태를 갖게 될 예정이라 전했다.

롤스로이스의 이야기처럼 스피릿 오브 엑스타시의 변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세월일 바뀌면서 원래 모습에서 크기를 줄이거나 조금씩 형태를 바꾸며 진화해왔다. 그 중에는 부득이하게 사라져야 했던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조명이 들어오는 크리스탈 소재의 스피릿 오브 엑스타시로, 유럽 연합의 야간 조명 규정에 따라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어떤 형태로 다듬어질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2023년 롤스로이스의 첫 번째 EV인 스펙터의 등장과 함께 공개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의 디자인은 내연기관 롤스로이스를 위해서만 사용될 예정으로 향후 롤스로이스가 내연기관 생산을 포기하게 될 경우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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