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풍미했던... 쐐기형 디자인의 자동차들

  • 기자명 뉴스팀
  • 입력 2021.08.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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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전 세계에 쐐기형 디자인이 유행을 끌었다. 쐐기형 디자인은 이름 그대로 각지고 날카로운 디자인을 차량 외관에 적용시킨 것을 뜻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전 세계는 2번의 오일쇼크를 겪었다. 이에 배기량만 크고 적은 힘을 발휘하는 엔진 대신 작지만 강한 힘을 발휘하는 엔진이 주목받았다. 부피와 무게가 줄어든 엔진이 탑재되자 자동차 디자인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전면부 부피가 상대적으로 작아지면서 보다 날렵한 디자인 구현이 가능했다. 여기에 공기저항도 효율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공기를 가를 수 있는 각진 모습이 도입됐다.

쐐기형 디자인은 지금까지 자동차와 전혀 다른 이미지를 전달하면서 매우 강한 인상을 전달한다. 이 때문에 일반 승용차보다 스포츠카와 같은 실험적인 성격의 자동차에 주로 적용됐다. 특히 이러한 디자인은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이 애용했다. 슈퍼카부터 국산 세단까지 다양하게 영향을 미쳤던 쐐기형 디자인의 자동차들을 모았다.

1968 알파로메오 카라보(Alfa Romeo Carabo) 컨셉트

1968년 파리모터쇼를 통해 공개된 컨셉트카다. 이탈리아의 디자인 스튜디오 베르토네(Bertone)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에 의해 디자인됐다. 당시 다양한 형태의 쐐기형 모델이 제안됐지만 알파로메오 카라보는 사람들에게 가장 강인한 인상을 남기며 쐐기형 디자인의 ‘조상’이 됐다. 컨셉트카지만 V8 2.0리터 엔진을 미드십 방식으로 얹어 최대 250km/h의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1971 람보르기니 쿤타치(Lamborghini Countach)

알파로메오 카라보의 양산형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거의 동일한 디자인을 갖고 있는 것 역시 마르첼로 간디니에 의해 디자인됐기 때문이다. 컨셉트카에서 선보인 하늘을 향해 열리는 시저 도어(Scissor Door)까지 그대로 갖췄다. 쿤타치의 디자인과 강력한 성능은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고, 단번에 람보르기니를 세계적인 슈퍼카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발판이 됐다. 최근 람보르기니는 쿤타치 등장 50주년을 기념한 쿤타치 LPI 800-4를 공개하기도 했다.

1973 란치아 스트라토스(Lancia Stratos)

마르첼로 간디니의 도전은 랠리카에도 이어진다. 항공기 날개 모양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날렵한 쐐기형 디자인을 갖는 스트라토스는 페라리의 V6 엔진을 탑재해 강력한 성능을 발휘했다. 1974년부터 1976년까지 3회 연속 WRC 랠리에서 우승하며 명성을 쌓았다. 당시 해치백 디자인이 대부분이었던 랠리 경기에서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자동차가 비포장도로와 눈길을 빠른 속도로 누비고 다니는 모습은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고, 현재까지도 란치아를 대표하는 모델로 기억되고 있다.

1974 마세라티 캄신(Maserati Khamsin)

란치아에이어 마세라티도 마르첼로 간디니의 손길을 받았다. 베르토네가 마세라티와 함께 협력한 첫 번째 모델이기도 하다. 캄신이라는 이름은 이집트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격렬한 돌풍에서 따왔다. 기블리 후속 모델로 등장한 캄신은 쐐기형 디자인을 바탕으로 다른 스포츠카와 달리 매우 넓은 유리창 면적을 갖는 점이 특징. 덕분에 시야 확보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330마력을 발휘하는 V8 4.9리터 엔진을 탑재해 그 당시로는 상당히 인상적인 270km/h의 최고 속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1974 애스턴마틴 라곤다(Aston Martin Lagonda)

2+2 스포츠카를 중심으로 판매해온 애스턴마틴은 제한적인 판매량으로 인해 1970년대 자금난을 겪게 된다.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애스턴마틴은 4도어 고급 세단을 개발하게 되는데, 그 결과물이 라곤다다. 파격적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고급스러움, 강력한 성능, 첨단 기능 등을 모두 갖추고 있어 1974년 공개 후 사전 계약만 수백 대나 이뤄졌을 정도. 비록 많은 문제를 일으켜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운 평가를 받고 있지만 존재감만큼은 애스턴마틴 중에서도 가장 큰 모델 중 하나로 꼽힌다.

1978 인터스타일 허슬러(Interstyl Hustler)

허슬러는 애스턴마튼 라곤다를 디자인한 윌리엄 타운스(William Towns)가 설립한 인터스타일(Interstyl)에서 생산한 키트카(Kit Car)다. 키트카는 소비자가 자동차를 직접 조립해 타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자동차를 뜻한다. 미니를 기반으로 개발됐으며, 소비자들이 조립하기 쉽도록 모든 디자인이 직각과 평면으로 이뤄진 점이 특징이다. 덕분에 허슬러도 쐐기형 디자인을 갖게 됐다. 기본형은 유리섬유로 외부 패널이 이뤄지지만 나무로 만들기도 했으며, 4륜 이외에 6륜형 허슬러도 존재했다. 나중에는 12기통 엔진이 탑재된 모델도 등장한다.

1971 클랜 크루세이더(Clan Crusader)

클랜이라는 회사는 폴 하우사우어(Paul Haussauer)와 전직 로터스 엔지니어 존 프레일링(John Frayling)에 의해 설립됐다. 로터스의 성능을 발휘하면서 보다 작고 가벼우며 저렴한 스포츠카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소비자가 직접 자동차를 조립해 완성시키는 키트카 형태로 판매하기도 했다. 매우 독창적인 디자인을 갖는 크루세이더는 외관이 유리섬유로 제작돼 전체 무게가 600kg에 불과할 정도로 가벼웠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키트카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키트카 시장은 극히 축소됐고, 크루세이더는 315대만 판매된 후 단종됐다.

1974년 현대 포니 쿠페 컨셉트(Hyundai Pony Coupe)

1974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등장한 포니 쿠페 컨셉트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에 의해 디자인된 디자인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쐐기형의 디자인에 이를 표현하기 위해 종이접기를 연상시키는 면과 선 조합이 특징이다. 완벽한 쐐기형 디자인은 아니지만 주지아로의 이러한 형태의 디자인은 이후 많은 차량에 반영되기 시작한다. 양산형 포니는 컨셉트모델과 다소 다른 모습으로 출시됐지만 현대차는 포니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디자인을 아이오닉 5에 적용시켰다.

1978 BMW M1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BMW M1 디자인에도 관여했다. M1은 당초 BMW와 람보르기니가 레이싱 경기용차를 개발하는 계획에서 시작된다. 당시 포르쉐와 경쟁하기 위해 BMW와 람보르기니가 손을 잡은 것인데, 개발 도중 람보르기니가 재정난을 이유로 경주차 개발에서 빠지게 되면서 BMW 자체 개발 차량이 됐다. BMW의 M 디비전이 개발한 첫 번째 모델이며, 람보르기니와 개발을 진행한 만큼 대부분의 생산은 이탈리아에서 이뤄졌고 최종 조립만 BMW에서 마무리했다. 총 453대만 생산된 희귀한 모델이기도 하다.

1981 드로리언 DMC-12(Delorean DMC-12)

도로를 달리는 것보다 하늘을 날며 시간 여행을 하는 것으로 익숙한 DMC-12도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손에서 완성됐다. 포니 컨셉트와 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특한 디자인과 하늘을 향해 열리는 걸윙 도어, 브러시드 스테인리스 스틸 외부 패널 등으로 유명했다.

1972 페라리 365 GT4(Ferrari 365 GT4)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유명한 페라리도 쐐기형 디자인을 적용시킨 전례가 있다. 365 GT 후속 모델로 등장한 365 GT4가 그것으로, 이탈리아 피닌파리나(Pininfarina)에 의해 디자인됐다. 페라리 중에서는 대중 모델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갖고 있지만 V12 엔진이 탑재돼 340마력의 괴력을 발휘했다. 365 GT4 이후에는 456, 612 스칼리에티, FF, GTC4 루쏘로 현재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1974 팬서 레이저(Panther Lazer)

쌍용 칼리스타를 통해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알려진 영국 자동차 제조사 펜서. 당시 팬서의 디자이너이자 CEO였던 로버트 잔켈(Robert Jankel)은 아내를 위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다. 극단적인 쐐기형 디자인과 함께 3인승이라는 독특한 시트 구조를 가진 것이 특징. 마치 장난감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재규어의 V12 5.3리터 엔진이 탑재돼 강력한 성능도 발휘했다. 남편의 선물이었지만 정작 아내는 이상하게 생긴 자동차를 받지 않았다고…

1985 스바루 XT(Subaru XT)

일본에서도 쐐기형 디자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날렵한 디자인과 함께 공기저항적인 측면에서도 이점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많은 연구를 한 것. 스바루 XT는 2도어 쿠페 형태의 스포츠카로 개발됐으며, 쐐기형 디자인 덕분에 당시로는 상당히 낮은 수준인 0.29Cd의 공기저항 계수를 기록했다. XT에는 수평대향 엔진, 4륜 구동 시스템, 에어 서스펜션, 힐 스타트 어시스트, 플러시 도어 핸들, 엔진 후드 안쪽에 숨겨진 와이퍼 등 다양한 첨단 사양이 적용됐다.

1986 볼보 480 ES(Volvo 480 ES)

볼보 하면 각진 디자인 혹은 현재와 같은 세련된 디자인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볼보에서도 쐐기형 디자인을 도입한 전례가 있다. 480은 볼보 최초의 전륜구동 차량으로 개발됐다. 동시에 볼보에서 컴팩트 스포츠카로 판매했을 정도로 스포티한 성능도 강조했다. 1.7리터 터보 엔진과 로터스에서 설계한 서스펜션이 탑재된 덕분이다. 테일게이트 대신 후면 유리창으로 화물을 수납할 수 있는 방식이 도입됐는데, 이는 C30에게 영향을 줬다. 미국 NHTSA의 시속 5마일(약 8km/h) 충격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된 범퍼가 유럽 자동차 최초로 적용됐다.

1990 대우 에스페로(Daewoo Espero)

이탈리아 베르토네의 디자인이 적용되면서 국산 양산차로는 유일하게 쐐기형 디자인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존재감을 알리기도 했다. 대우자동차의 첫 독자 개발 모델인 만큼 개발부터 많은 공을 들이고 고급 중형 세단으로 포지셔닝 하려 했다. 하지만 출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프린스가 등장하면서 등급이 모호해진 점, 1.5리터 엔진 탑재로 인해 현대 엘란트라와 비교됐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인해 후기형 모델에서는 준중형 급으로 자리 잡게 됐다. 영화 탑건을 연상시키는 광고, 독특한 형태로 실내 도어를 여는 방법 등도 에스페로를 떠올리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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