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팀과 디자인 그룹이 함께 만든 전기차 플랫폼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1.05.2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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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뮬러1팀과 자동차 디자인 그룹이 만나 EV 플랫폼을 만들었다. 1,300마력의 출력과 1,000km의 주행거리가 목표라고 한다.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기술과 감성에 대한 만족도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전기차의 시대로 전환되면서 전에 없던 새로운 전기차 제조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테슬라만 봐도 그렇다. 이들은 이미 지난해 폭스바겐과 토요타의 시가총액을 뛰어 넘었다. 물론 판매 실적보다는 금융 상태가 급격히 호전되면서 생긴 일이긴 하지만 신생업체라고 해서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아직 신생 전기차 회사들에 대해 신뢰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단순히 전기모터만 달았다고 자동차라고 인정해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두 회사의 프로젝트는 어떨까? 우선 이름값만으로도 기술과 감성에 대한 신뢰를 가지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너무 늦게 프로젝트를 공개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최근 윌리엄스 어드밴스드 엔지니어링과 이탈 디자인이 전기차 모듈러 아키텍처를 세상에 소개했다. 우선 이탈 디자인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중에서도 이탈 디자인의 터치가 가미된 차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 회사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자동차 디자인 전문 그룹이다.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포니 컨셉트카가 바로 이 회사의 작품이다.

하지만 윌리엄스 어드밴스드 엔지니어링이라 하면 생소하다 여길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 이 회사는 윌리엄스 그랑프리 엔지니어링 소속인데, 이 회사 안에 40년 이상 포뮬러1에서 활동해온 윌리엄스 F1 팀이 있다. 그리고 이 회사는 포뮬러1을 위해 개발한 기술을 보다 다양한 분야에 응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다.

현재 윌리엄스 어드밴스드 엔지니어링(이하 WAE)은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EV 파워트레인을 포함해 대중 교통수단의 기술 혁신이나 방위산업을 위한 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다. 가령 풍력 발전기의 블레이드와 모터 효율을 개선한다던지 트램이나 버스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공급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 업무다.

40년 동안 모터스포츠에서 활동하면서 이들은 매년 새로운 레이스카를 직접 제작해왔고, KERS(오늘날 회생 제동 브레이크)가 처음 포뮬러1에 도입됐을 때도 시스템을 직접 개발하면서 막대한 기술 노하우를 축적했다. 게다가 포뮬러 E, ETCR, 익스트림 E를 위한 파워트레인 개발에도 참여했고 로터스의 EV 하이퍼카 배터리도 제작 공급했으니, 이쯤되면 전기차 그리고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기술은 충분하다고 봐도 좋다.

이렇게 디자인과 자동차 선행 기술 회사가 만나 진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플랫폼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EVX 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복합 소재로 만들어진 스케이트 보드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WAE는 카본 파이버를 30년 이상 다루어온 전문가들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이들은 배터리의 무게로 인한 주행거리 감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선 배터리가 탑재될 차체 가운데 영역을 카본으로 제작했다. 여기에 충돌시 캐빈을 보호할 목적으로 금속제 충돌 구조물을 앞 뒤로 배치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역시나 배터리 시스템이다. WAE는 이 플랫폼에 104kWh~120kWh급의 배터리가 장착될 예정이라 밝혔다. 게다가 최근 현대차와 포르쉐가 적용하기 시작한 800V 고전압 시스템을 적용해 충전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시켰다. 만약 160kWh급의 배터리를 적용할 경우 주행거리는 무려 1,000km대로 확장된다. 또한 탑재되는 전기모터는 최대 1,000kW급의 출력이 공급한다. 이를 마력으로 환산하면 대략 1,341마력이다. 이미 WAE는 로터스 에바이야를 위한 2,000kWh급 배터리를 제작한 경험이 있다.

물론 제시된 수치는 아직 이론에 불과하다. 실제로 1,000km에 도달하게 만들려면 차체의 무게와 모터의 갯수 그리고 에너지를 공급하고 회수하는 시스템이 이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WAE라면 충분히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이 매년 레이스를 위해 더 가벼운 차체를 만들고 더 많은 에너지를 회수하고 방출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제작해왔으니 말이다.

한편 EVX는 다른 EV 전용 플랫폼들처럼 모듈러 설계로 높은 확장성을 갖췄다. 이들의 발표에 따르면 스포츠 컨버터블부터 세단 그리고 SUV까지 하나의 플랫폼으로 모두 제작이 가능하며, RWD와 AWD 역시 모두 제작할 수 있다. 이 플랫폼에 적용될 스타일링은 당연히 이탈디자인이 맡게 된다.

다만 이들이 직접 자동차 브랜드를 만들고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두 회사는 EVX가 프리미엄 자동차를 위한 플랫폼이라 소개했으며, 원하는 회사가 있다면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소문에 따르면 폭스바겐그룹이 EVX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이탈디자인은 2010년 폭스바겐그룹과 람보르기니에 인수된 회사다. 어쩌면 새로운 람보르기니를 위한 EV 플랫폼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값비싼 카본 복합 소재와 더불어 1,341마력의 출력을 원하는 회사는 그리 많이 않을테니, 람보르기니를 위한 새로운 전기차 플랫폼으로 공급될 것이라는 소문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

아직 어떤 회사가 EVX 플랫폼을 사용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이들의 레디 엔지니어링(Ready Engineering) 솔루션에 대한 기대는 무척 크다. 모터스포츠의 첨단에 존재하는 회사와 자동차 디자인 장인들이 탄생시킨 결과물이니 두 회사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검증이 됐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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