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랠리카의 재해석 - 싱어 포르쉐 911 ACS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1.01.2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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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의 클래식을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가볍게 하지만 완벽하게 터치하며 세계적인 입지를 다진 싱어가 새로운 작품을 내놓았다. 이번에는 포르쉐의 랠리 히스토리를 재해석했다.

포르쉐에 자신들만의 기술이나 스타일을 더하는 튜너 혹은 리스토어 전문 브랜드는 많다. 하지만 어떤 브랜드는 아예 포르쉐를 새롭게 정의하면서 독립적인 브랜드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다. RUF와 더불어 지금부터 소개할 이 브랜드가 그렇다.

싱어 비히클 디자인(이하 싱어)은 RUF에 비해 비교적 역사가 짧은 브랜드다. 하지만 이들은 첫 걸음부터 매우 강렬했다. 내로우(Narrow) 911 카레라를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세계 수많은 포르쉐 마니아들의 소유욕을 있는데로 흔들어 놓기까지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들의 가능성을 포착한 윌리엄스 포뮬러1팀의 또 다른 부서, 윌리엄스 어드벤스드 엔지니어링은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자신들의 기술을 지원해주기로 약속하면서 싱어의 입지는 독보적인 수준으로 떠올랐다. 심지어 제조 공장 중 일부를 윌리엄스가 있는 옥스포드셔로 옮기기까지 했다.

이렇게 일약 슈퍼스타로 떠오른 싱어가 최근 두 대의 의미깊은 작품을 소개했다. 앞선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도 포르쉐 클래식을 자신들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바로 포르쉐의 모터스포츠 헤리티지를 살짝 빌려온 것이다.

모터스포츠에서 포르쉐의 이야기를 빼면 아마 인류 모터스포츠 역사의 30% 이상은 지워질 것이다. 그만큼 포르쉐가 모터스포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압도적이다. 1만번 이상의 우승을 거두어들인 것으로 알려진 포르쉐의 역사 중 대부분은 트랙에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르쉐가 타막이 깔린 트랙에서만 강력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타막은 물론 비포장 도로 심지어 아예 길이 없는 곳에서도 여전히 강했다. 오늘날 ‘카레라’와 ‘파나메라'를 탄생시킨 카레라 파나메리카나와 같은 온로드 랠리는 물론이고, 월드 랠리 챔피언십이나 아프리카 사파리 랠리 심지어 다카르 랠리에 이르기까지 모래 위에서도 포르쉐라는 이름에 걸맞는 성과를 거두어 들였다.

싱어는 이와 같은 포르쉐의 성과에 주목했다. 그래서 1980년대 랠리 붐에 맞춰 개발됐던 포르쉐 911 SC/RS와 959를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제작된 싱어의 랠리카가 바로 포르쉐 911 ACS(All terrain Competition Study)다.

911 ACS의 베이스는 1990년식 포르쉐 964로 다른 싱어 모델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스타일에 변화는 거의 주지 않았다. 특히 당시 사용했던 3.6L 자연흡기 엔진 역시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보다 적극적인 오프로드를 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개조 작업을 진행했다.

우선 지상고를 대폭 수정했다. 충분한 서스펜션 트레블링을 확보하기 위해 휠 하우징과 타이어 사이의 거리도 충분히 확보했으며, 거의 랠리 버기 수준으로 지상고를 충분히 위로 끌어 올렸다. 차체 아래쪽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이드 실을 바디로 바짝 끌어 올린 탓에 도어는 절반 가량 잘려나가야 했지만, 타고내리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프론트 범퍼 쪽에는 독특한 디자인의 머드 가드가 새로 디자인됐으며, 리어 엔드의 바디워크는 꽤 많은 수정을 거쳤다. 또한 머플러는 리어 리플렉터 바로 아래까지 바짝 올라와 있는데 이는 바닥에 깔린 자갈이나 바위 때문에 배기 시스템에 손상이 생기는 걸 최소화하기 위함이라 한다.

랠리카로 개조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 랠리카마냥 케이블 타이로 감아놓거나 노멕스 테이프로 말아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구석 구석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철저히 마감했다. 리어 보디 워크 안쪽에 숨겨진 엔진룸 조차도 하얀색 가죽으로 꼼꼼히 말아두는가하면, 스페어 타이어를 덮는 프론트 후드의 안쪽까지 특별한 아트워크를 더했다.

테일램프는 마치 이글거리는 듯 붉게 빛나며, 덕테일의 엣지는 붉은색 라인을 넣어 클래식함을 강조했다. 이들의 완벽함은 새시에서도 엿보인다. 새시 프레임에 용접자욱을 하나도 남기지 않은 것은 물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 싶을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부분을 거의 프라모델 수준으로 깎고 다듬었다.

인테리어는 더욱 근사하다. 붉은색 형광빛으로 빛나는 롤 케이지는 어지간한 팩토리팀에서도 구경하기 힘들만큼 깨끗하고 깔끔하다. 어느 곳에서도 테이프 자욱이나 케이블타이를 발견할 수 없다. 카본으로 만들어진 기어노브와 더불어 핸드 브레이크 레버는 하이엔드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주듯 하다.

스티어링 휠 역시 심상치 않다. 어쩌면 실제 포르쉐를 가진 사람들조차 탐낼만한 수준이다. 세 개의 스포크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가운데 구멍을 냈으며, 드러난 절단면은 모두 붉은색으로 마감해두었다. 게다가 알칸타라는 스티어링 휠 림을 정확히 절반만 덮고 있다. 금속과 알칸타라가 주는 이질감이 절묘하다.

버킷 시트 역시 한껏 멋을 부렸다. 마치 화염이 튀어 오른 듯한 독특한 페인팅이 가미되어 있으며, 붉은색과 흰색 그리고 검정색으로 조합된 힙과 백의 마감은 거의 명품 패딩을 보는 듯 하다.

이런 수준의 마감은 사실 모터스포츠에서는 그야말로 불필요한 것들이다. 레이스의 목적에서 한없이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어는 911 ACS를 커스터머 모터스포츠 스펙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차를 모터스포츠 전문가, 리차드 투트힐에게 건내어 사막과 그래블을 달리게 했다.

싱어는 AWD와 터보차져 엔진 그리고 올 터레인 드라이빙 시스템을 통해 충분한 오프로드 드라이빙 퍼포먼스를 입증했다고 전했다. 싱어의 제작 의도는 분명하다. 달리는 것은 물론 보는 것까지도 100%의 만족을 가져다 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싱어 911 ACS는 컨셉트 스터디 모델이다. 당장 이 차를 손에 넣고 싶다고 해도 당분간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예상컨데 머지않아 이 차는 새로운 고객 예약을 받게 될 것이다.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다. 어쩌면 클래식 959만큼이나 비쌀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컴플리케이션 워치 수준의 복잡한 기능과 기계적 완벽성 그리고 기계 미학을 한계까지 끌어 올린 이들의 작품에 수백만 달러를 흔쾌히 지불하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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