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에서 쿠페와 로드스터가 사라진다면?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11.1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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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의 첫 번째 매력은 어떤 모델이건 다이나믹하다는 점이다. 장르를 막론하고 이 브랜드에서 출시한 자동차는 거의 틀림없이 즐거운 운전 경험을 제공한다. 그것이 SUV건 혹은 EV건 상관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BMW의 개성과 매력을 가장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모델은 역시나 쿠페와 로드스터다.

특별히 두 장르를 더 잘 만든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쿠페와 로드스터의 특성상 다이나믹한 드라이빙 감각을 전해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쿠페의 경우 나즈막한 포지션과 무게 중심 그리고 두 개의 도어 덕분에 더 강해진 비틀림 강성을 가질 수 있고 그래서 어떤 코너에서도 4도어보다 더 단단하고 다이나믹하게 달린다.

로드스터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로드스터는 오픈 에어링 상태에서 가장 즐거운 드라이빙 경험을 제공한다. 게다가 루프가 없다는 한계로 인해 대부분의 로드스터는 차체를 더 단단하게 보강하기 때문에 설계상의 결함이 없는 이상 틀림없이 즐거운 드라이빙을 느껴볼 수 있다.

그래서 BMW도 오랜시간 쿠페와 로드스터를 만들어 왔다. 80년 전 328이 처음 등장한 이래 BMW의 모델 라인업에서 쿠페나 로드스터가 빠진 적은 없다. 지금도 BMW는 4시리즈와 8시리즈 그리고 Z4를 비롯해 다양한 쿠페와 로드스터 그리고 컨버터블을 만들고 있다. 비록 예전에 비해 판매량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고 해도 그들은 쿠페와 로스스터를 거의 습관처럼 만들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최근 BMW의 CEO 올리버 집세는 무척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쿠페와 컨버터블 그리고 로드스터 중 앞으로 무엇이 남게 될지 지켜볼 예정입니다.”

표현은 단호하지도 격정적이지도 않았지만, 문제는 CEO가 남긴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는 BMW의 전략과 정책을 입안하고 승인하며 결정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위 문장은 적어도 쿠페나 컨버터블 그리고 로드스터 중 한 가지 이상은 향후 BMW 라인업에서 사라진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만약 그렇게 결정한다고 해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BMW 뿐만 아니라 다른 브랜드들 역시 과거부터 수익성이 떨어졌던 쿠페, 컨버터블, 로드스터를 언제든 없애고 싶어했다. 푸조는 대중적인 브랜드 중에서도 컨버터블을 만들던 몇 안되는 브랜드였으나, 이제 그들의 웹 사이트에서 컨버터블은 찾아볼 수 없다. VW은 일찌감치 컨버터블을 정리했으며, 볼보 역시 새로운 지주사를 만난 후 컨버터블을 가장 먼저 정리했다.

그나마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이 장르를 되도록 지키고 싶어했다. 세단에 비해 비싼 가격이었지만 그래도 스포츠 드라이빙에 특화된 장르를 원하는 특별한 고객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BMW는 실로 다양한 종류의 쿠페와 컨버터블 그리고 로드스터를 보유하고 있었다.

2시리즈부터, 4시리즈, 8시리즈와 함께 Z 그리고 i8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그것도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됐다. 더 이상 실리콘 밸리의 영리치들에게 쿠페, 컨버터블, 로드스터는 매력적인 차가 아니며, 다른 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당장 4시리즈만 보더라도 컨버터블과 쿠페가 있지만 어느새 그란 쿠페라는 이름의 4도어 쿠페가 슬그머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이 판매되고 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8시리즈는 마치 8의 저주라도 내린 듯 과거의 8시리즈처럼 절망적인 수준의 판매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도 그란 쿠페가 있기 때문에 8시리즈가 유지되는 수준이다.

그래서 BMW는 용기있는 결단을 내리려 준비 중이다. 징후는 이전부터 있었다. Z시리즈만 보더라도 그렇다. 실험적인 Z1을 시작으로 Z3 그리고 이후 등장한 Z4와 하드탑 컨버터블이었던 Z4까지, BMW 로드스터의 계보는 그렇게 이어졌지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판매량은 점차 하락했다. 그리고 오늘날 그 자리를 이어가는 Z4는 BMW 독자적 개발이 아닌 토요타와의 협력에 의해 만들어진 쌍둥이 스포츠카가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협력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양사 모두 이미지 메이킹 이외에는 수익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자동차를 개발하는데 더 이상 투자하길 원치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뜻이 맞고 시장이 절대 겹치지 않는 두 브랜드가 만나 공동개발을 명목으로 각자 비용을 부담해 하나의 결과물을 만든 다음 서로 나눠가진 것이다.

그렇게 절약한 비용으로 BMW는 전동화 작업에 돌입했으며, 더 많은 PHEV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수익을 만들어 주는 SUV에게 더 큰 다양성을 부여하길 원한다. 많은 사람들이 프리미엄 SUV 트렌드의 시작을 카이엔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 장르를 처음 개척한 것은 BMW였다. 잠시 랜드로버를 보유하고 있을 때 SUV 개발에 필요한 자원을 축적했고, 곧바로 X5를 출시했다. 전에 없었던 새로운 모델의 출시에 따른 부담이 컸는지 그들은 SUV라는 단어 대신 우린 다르다며 SAV로 소개하긴 했으나, 어찌되었건 결과는 히트였다.

그 후부터 BMW는 X 시리즈의 볼륨을 키우기 시작했다. 현재 X시리즈는 1부터 7까지 빠짐없이 채워져 있으며, 심지어 iX3와 더불어 내년에 출시예정인 iX까지, 무려 9가지의 SUV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가 됐다. 심지어 SUV 전문 브랜드인 랜드로버보다도 많다. 여기에 롤스로이스의 컬리넌과 미니 컨트리맨까지 포함시킨다면 그룹사 전체에서 전개 중인 SUV는 무려 11가지나 된다. 언제 이렇게 늘어났나 싶을 정도로 BMW 역시 알게 모르게 SUV 라인업을 부풀려왔고, 앞으로 펼쳐나갈 전동화 시대에는 이런 분위기가 더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BMW CEO의 이야기는 이미 결정된 사안의 힌트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의 이야기처럼 쿠페, 컨버터블, 로드스터 모두를 없애진 않을 것이다. 다만 없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로드스터일 것이고, 그 다음은 컨버터블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염려스러운 점은 분명히 있다. 푸조가 그랬을 때와는 아마 사뭇 다른 반응들이 팬들 사이에서 나올 것이 틀림없다.

항상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슬로건으로 주장해왔던 것과는 상반되는 결정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들의 주장처럼 SAV가 다이나믹하다고 해도 쿠페나 컨버터블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는 분명히 다르다. 물리적인 한계도 명확하지만 감성적인 접근 방식에 있어서도 SUV와 쿠페는 엄연히 다르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의 추구에 있다.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는 것이 있다면 그 부분에 역량을 더 보태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다만 BMW는 늘 궁극의 드라이빙 머신(Ultimate Driving Machine)을 외쳐왔으며, 실제로 그런 자동차들을 계속 만들어왔던 회사다. 그리고 그 점에 이끌려 전세계 수많은 소비자와 팬들이 생겨났다.

따라서 BMW에서도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대들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장르를 그럼에도 헤리티지라는 명분으로 끌고 가야할지, 아니면 과감히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길 것인지. 어느쪽이든 진통은 있을 것이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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