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매품으로 구입할 수 있는 600마력의 전기 모터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10.23 18:2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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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대배기량 엔진이 달린 자동차는 마치 공룡과 같은 존재로 치부되고 있다. 다시 말해 더는 생산되지 않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의 엔진 제작 기술로는 나날이 까다로워지고 있는 환경 기준을 맞출 수 없어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의 경우 신형 V12 엔진 개발을 포기했으며, 그보다 절반밖에 되지 않는 V6혹은 L6 엔진들 조차 탄소배출량의 제한에 따라 거의 대부분의 중형 세단들에게서 사라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포드는 7.3L V8 일명 ‘고질라'엔진을 새롭게 소개했다. 포드 뿐만 아니라 쉐보레 역시 570마력의 7L V8을 개선해 시장에 내놓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현재 포드나 쉐보레에서 이 엔진을 사용하는 모델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들은 멸종 위기의 공룡들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다.

이는 미국만의 독특한 자동차 문화에 의한 것으로, 매우 열성적인 자동차 마니아라면 미국이라는 곳은 그야말로 천국과도 같다. 왜냐하면 이런 엔진들을 직접 구입해 내가 원하는 자동차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 말이다. 한 때 우리나라에도 1.5L 혹은 1.6L의 준중형차 엔진을 2.0L로 교체해 더 큰 마력을 만들어 내는 이른바 ‘엔진 스왑’ 튜닝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방금 소개한 엔진들 역시 그런 용도로 쓰이는 엔진들이다.

물론 대부분은 모터스포츠 팀에서 새로운 레이스카에 쓸 목적으로 구입하지만, 일부는 개인이 제작하는 ‘핫로드'용 엔진으로도 쓰이며 드물게 로드카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끌어 올릴 목적, 그러니까 엔진 스왑을 위해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엔진들은 웨어 하우스에서 마치 점화 플러그나 몽키 스페너를 구입하듯 간단히 쇼핑 카트에 넣고 계산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구입이 가능하다.

이처럼 괴물같은 엔진들이 진열된 매대에 새로운 파워 트레인이 한가지 더 추가됐다. 이 파워트레인은 앞서 소개한 포드와 쉐보레의 엔진에 버금가는 출력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어떠한 소음이나 진동도 만들어내지 않으며, 심지어 이산화탄소도 배출하지 않는다.

만약 머리 속에서 테슬라와 같은 전기자동차를 떠올렸다면 당신의 상상이 맞다. 바로 전기모터다. 최근 EV 웨스트라는 회사는 별매품으로 구입할 수 있는 크레이트(Crate) 전기모터를 발표했다. 다른 크레이트 엔진들과 마찬가지로 이 파워 트레인의 주 고객층은 클래식 머슬카 오너들이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출생한 베이비 부머들에게 머스탱, 카마로, 챌린저와 같은 V8 엔진의 머슬카는 그야말로 손에 닿을 수 있는 드림카였다. 부가 넘쳐나던 시절에 만들어진 머슬카들은 베이비부머들의 청춘의 시간을 채워줬고,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가장 화려했던 미국의 상징적인 자동차로 인식되어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지금의 젊은이들에게까지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도 조악했던 품질 탓에 60년대에 제작된 머슬카를 구입해 타려면 기본적으로 상당한 보수가 필요하며, 교체 리스트에 항상 엔진도 함께 오르는데, 문제는 점차 까다로워지는 환경 기준 때문에 완벽한 리스토어가 서서히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위에서 소개한 V8 엔진들로 교체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언제까지 그런 엔진을 구입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요즘이다.

그래서 비교적 대배기량 엔진에 관대한 미국의 클래식카 리스토어 시장에도 서서히 파워트레인에 대한 고민이 떠올랐으며, 테슬라의 전기모터를 가지고 1965년산 포드 머스탱을 전기자동차로 바꾼 리볼트 시스템즈의 컴플릿 카도 그런 고민의 흔적 중 하나다. 이는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도 마찬가지여서 재규어의 경우 실험적으로 E타입을 전동화해 소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 편승에 등장한 것이 지금 소개하는 크레이트 전기 모터다.

그 중에서도 EV 웨스트는 매우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회사로, 특별한 프로젝트가 아닌 머슬카 개인 오너 혹은 리스토어 전문 개러지들을 위한 별매품 크레이터 전기모터를 진열대 위에 올려 놓았다. 이들의 전기모터는 세로배치 엔진을 사용한 거의 대부분의 머슬카와 호환되게 제작했다고 하는데, 만약 머슬카 오너가 어느 정도의 정비 능력이 된다면 자신의 차고에서 낡은 V8 혹은 V6 엔진을 들어내고 이 전기모터로 교체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환산된 출력은 약 600마력으로 머슬카 기준으로 본다면 슈퍼차져나 터보차져가 장착된 빅블록 V8 엔진 정도에서 기대할만한 출력을 그보다 훨씬 컴팩트한 사이즈의 전기모터로 구현할 수 있다. 게다가 전기모터의 특성상 프론트 타이어가 들릴 정도의 강력한 토크를 아주 간단히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다만 몇가지 문제가 있는데, 우선 전기모터만 제공될 뿐이라는 점이다. 사실 전기자동차 파워트레인의 핵심은 전기모터가 아닌 배터리와 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 그리고 충전 시스템에 있다. 그런데 EV 웨스트의 전기모터에는 이런 시스템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온전히 구동시키려면 배터리 팩 역시 별매품으로 구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별매품으로 구입할 수 있었던 V8엔진들 역시 기어박스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나, 적어도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기어박스나 연료탱크를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기차에서 배터리의 중요도는 내연기관의 기어박스나 연료탱크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게다가 가격도 문제다. 구체적인 가격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25,000~35,000달러 사이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면 완전히 낡아버린 머슬카를 완벽히 복원하는 비용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엔진에 관심을 쏟는 머슬카 애호가들은 큰 기대를 걸고 있다. 10,000달러도 되지 않는 비용으로 사들인 낡은 차를 그보다 몇 배의 돈을 투자해 복원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에게 가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나만의 자동차를 만들길 좋아하는 미국의 애호가들에게 전동화된 머슬카는 새로운 트렌드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은 가격과 더불어 호환되는 부품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조차도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그저 새로운 즐거움 정도로 여겨지기에 충분하며, 따라서 이 시장은 앞으로 점점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평범한 자동차를 타는 우리들에게는 그야말로 가성비 떨어지는 말도 안되는 일이겠지만, 덕 중에 덕은 양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이미 머슬카의 전동화용 배터리와 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는 회사가 등장했다.

따라서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머슬카의 전동화는 그야말로 양덕들을 위한 새로운 도전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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