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전지 VS 배터리, 표준 전쟁의 승자는 누구?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07.3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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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테이프 표준 전쟁을 기억하는가? 자기 저장 방식으로 영상을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대규모로 보급하기 위해 펼쳤던 소니와 JVC 간의 첨예한 경쟁을 두고 비디오 테이프 표준 전쟁이라 불렀다. 오디오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컨텐츠 소비는 소리에서 영상으로 빠르게 이동했는데, 이 시대에 맞춰 가정용 홈 비디오를 보급하기 위해 두 회사는 거의 총력전에 가까울 정도의 경쟁을 펼쳤다.

이 두 회사는 자신들의 방식이 업계 표준이 된다면 향후 수십 년간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기술적으로 앞서 있었던 소니의 베타맥스가 아닌, 좀 더 쉽고 저렴하며 더 많은 재생시간을 저장할 수 있었던 VHS의 승으로 끝났다.

그리고 이 승리의 이면에는 소비자들의 선택이 있었다. 당시 소비자들은 일반 극장에서는 차마 볼 수 없는 다양한 영상물(폭력, 선정성이 강력한 자극적 영상물)을 집에서 몰래 숨어 보기를 원했고, VHS는 그런 심리를 빠르게 읽은 후 영상물 렌탈 시장에 VHS 테이프를 보급하면서 소비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렇게 하나의 패러다임이 새롭게 태동할 때, 전 세계 회사들은 자신들의 기술이 세계 표준이 되기를 원하며 엄청난 자본을 미리 투자한다. 베타맥스와 VHS의 전쟁은 하나의 예시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런 전쟁에 가까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바로 전기자동차의 표준이다. 그리고 이 표준 전쟁에 뛰어든 진영은 BEV라고 부르는 배터리 타입의 전기자동차와 연료전지를 기반으로 하는 FCEV(퓨얼 셀 타입)이다.

근본적으로 이 두 타입은 전기를 동력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동일한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근본적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를 가져오는가?"이다.

잘 알고 있겠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배터리는 외부에서 전기 에너지를 끌어와 저장하는 패키지의 일종이다. 화학적으로는 조금 더 복잡한 내용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외부에서 전기를 가져와 저장한 뒤 필요할 때 방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연료전지는 전기에너지를 외부에서 끌어오지 않는다. 대신 전기 에너지를 만들만한 원료를 가져와 자체적으로 전기를 만들어 방출하는 식이다. 그 에너지원이 바로 수소와 산소이며,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에너지로 전환해 전기모터로 보내는 방식이다.

따라서 두 방식은 결과적으로는 같지만 알고 보면 출발점은 완전히 다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장점과 단점이 엇갈린다. 배터리는 어디에서든 쉽게 전기를 가져와 저장할 수 있는 반면, 연료전지는 아직까지 수소를 충전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하다. 반대로 배터리는 충전하는데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연료전지는 기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것과 거의 같은 시간에 압축된 수소를 충전할 수 있다.

만약 배터리의 충전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할 수만 있다면 이 전쟁의 승리는 간단히 BEV로 넘어가겠으나, 문제는 배터리 충전시간을 줄이려면 배터리 용량을 줄이는 것 말고는 현재로서는 이렇다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해결책은 소비자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방식이 될 것이다.

그래서 최근 다양한 제조사에서 수소 연료전지 방식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일단 배터리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배터리 수급과 더불어 배터리 가격 상승과 같은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다양한 국가에서 전기자동차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긍정적인 상황이긴 하나, 불행하게도 보조금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반해, 배터리 가격은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 판매되는 전기자동차들의 원래 가격을 보면, 크기는 소형 차인데 가격은 대형 차에 육박한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배터리 가격이다. 상황이 이러니 배터리 주도의 전기차 경제권을 다시 자동차 위주로 전환해 브랜드의 시장 주도권을 탈환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제조사들은 상상하기 싫겠지만, 만약 배터리 주 공급사의 공장이 일시적으로 멈춰버리거나 혹은 다른 제조사가 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배터리 우선 공급을 요구해온다면, 뼈대만 남은 자동차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생산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배터리는 자동차 회사뿐만 아니라 오늘날 거의 모든 IT 기기 제조사들조차도 가장 원하는 부품이므로, 전보다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부품 수급 경쟁을 펼쳐야 한다.

이런 상황은 엔진을 탑재했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부품을 자체적으로 제작하니 공급에 휘둘릴 일도 없었으며 타이어와 같은 부품 공급업체는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어느 한 협력사가 공급을 일시 중단한다 해도 빠른 시간 안에 생산 속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자동차 제조사들은 생산의 주도권을 잡은 채 한 세기 동안 충분한 이득을 얻어왔다.

그러나 BEV 보급률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제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연료전지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편이 주도권 확보 차원에서 보다 안정적이라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제조사 측면에서도 무척 매력적으로 보이는 연료전지에도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우선 연료전지는 수소 충전소가 더 많이 보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충전소의 보급 속도를 보면 한두 해로는 충분한 보급이 일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수소의 생산 효율을 두고 여전히 기술 개발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아, 폭발적인 수요 창출이 일어난다고 해도 과연 석유처럼 즉각적인 연료의 보급이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또 하나는 배터리 이상으로 연료전지의 가격이 비싸다는 점이다. 특히 연료전지의 음극재에는 백금이 코팅되는데, 금보다 더 비싸고 희귀한 백금은, 셰일 오일처럼 대규모 광산이나 채굴 기술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연구하더라도 대량생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양한 제조사들이 연료전지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제조사가 바로 현대자동차다. 현대자동차는 이미 넥쏘를 선보였으며, 넵튠과 같은 연료전지 방식의 상용차 컨셉트카는 물론 수소 연료전지 버스 등 다양한 분야에 전방위로 나서고 있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토요타 역시 미라이로 연료전지 방식을 선보였으며, BMW는 오랫동안 수소에 관심을 가져왔던 제조사다. 메르세데스 벤츠 역시 20세기 말 이미 FCEV 테스트카를 개발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연료전지 방식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경제적 주도권 확보를 원하는 회사들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당연히 반대 진영도 있다. 대표주자가 바로 테슬라다. 일론 머스크는 특히 연료전지를 혐오하는 쪽으로, 그는 과거부터 연료전지(Fuel Cell)을 바보 세포(Fool Cell)로 바꾸어 부르며 연료전지에 대한 극도의 부정적 의사를 드러내왔다. 물론 그 이면에는 기가 팩토리와 같이 거대한 배터리 공장 및 배터리 충전 시설 그리고 충전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와 더불어 그를 지지하는 투자자들이 존재한다.

뒤 상황이 이러하니 연료전지를 어리석은 쓰레기 덩어리라 표현하는 그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KPMG의 조사에 따르면 약 1,000여 명의 자동차 제조사 고위 경영자들 중 78%가 연료 전지야말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진정한 솔루션이라 믿고 있다고 했다. 표면적으로 그들 중 상당수는 기존 자동차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오랜 습관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거부감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현재의 상황은 어떻게 보더라도 베타맥스와 VHS의 전쟁과 거의 다르지 않다. 물론 언젠가는 어느 한 쪽이 표준으로 선정될 것이며, 그렇지 않은 쪽은 막대한 선행투자에 대한 크나큰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다. 당장은 BEV의 보급률이 확실히 우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 자동차 시장을 기준으로 봤을 때 BEV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3%에 불과하다.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비율이라는 의미다. 과연 이 표준 전쟁의 끝은 어디이며, 누가 승리를 거머쥐게 될까? 만약 승리를 붙잡고 싶다면,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VHS가 어떻게 시장을 장악했는지 말이다. 끝으로 표준화 전쟁의 승리가 대부분 소비자들의 선택에 따라 결정됐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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