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역사의 콜라보레이션, 마세라티 X 에르메네질도 제냐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07.08 17: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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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하나의 브랜드가 100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년에만도 생겨났다 사라지는 브랜드가 전세계에 수만개는 족히 되는데, 100년을 하나의 브랜드로 전세계 사람들의 머리속에 남겨진다는 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2013년, 마세라티는 창립 100주년을 맞이했다. 모터스포츠를 위해 태어난 이 브랜드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또 하나의 브랜드이자, 전세계 사람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를 위한 자동차로 인식되어 있다.

오늘 소개할 마세라티 기블리 그란 루소 SQ4는 섹시함의 정점에 도달한 모델이다. 기블리는 우리가 흔히 아는 4도어 세단과는 완벽히 다른 결을 갖고 있다. 겉으로는 차분하고 젠틀해보이지만, 잘게 쪼개진 아름다운 근육과 그에 걸맞는 날카로운 다이나믹을 리드미컬한 실루엣 속에 감추어 놓았다.

마세라티의 이미지는 구릿빛 피부와 헝클어진 긴 머리 그리고 더티 섹시의 상징인 수염이 항상 뺨과 턱에 자리한 남자 그 자체다. 그의 잘 가꾸어진 몸은 차분한 컬러의 수트 속에 감춰진 듯 드러나 있어 누가 보더라도 시선을 잡아 끌기에 충분하다.

익스테리어에서 느껴지는, 몸매를 드러내는 이탈리안 수트의 클래식한 감성은 익스테리어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일단 도어를 잡아 당겨보자. 차분한 세단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이 무게감은 무척 색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도어를 열 때 뿐만 아니라 닫을 때도 팔에 힘이 제법 들어간다.

2세대 전 유럽차들이 전형적으로 보여줬던 도어의 무게감이며 이는 안전에 대한 뜻모를 믿음으로 치환된다. 부드러운 톤의 시트는 눈으로 볼 때와 앉았을 때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말랑하고 푹신할 것 같은 시트는 의외로 단단하며 앉는 순간 비즈니스 세단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타이트하게 조여드는 감각이 기분 좋게 전달된다.

시선을 앞으로 돌려보자.

오늘날 세상 모든 자동차들의 계기반이 화려한 그래픽의 디지털로 바뀌고 있지만, 마세라티 기블리의 계기반은 여전히 아날로그 타입이다. 물론 가운데 모니터가 자리하고 있기는 하나, 80% 이상을 rpm과 스피도미터가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낡아 보이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이 감각은 마치 오토매틱 시계의 다이얼을 보는 것 같다. 실제 시계의 핸즈와 꼭 닮은 니들 뒤에 햇빛을 받았을 때 비로소 빛이 감도는 청판 다이얼은 그야말로 클래식 오토매틱 워치의 감성 그대로다.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난 우드 트림과 기막히게 부드럽고 촉촉한 가죽의 업 홀스터리 역시 클래식한 감각을 한 껏 드러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기까지가 대중들이 경험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아직 진짜 마세라티의 모습은 다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어쩔 수 없다.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브랜드가 아니기에 그 가치가 더한 것이므로, 경험의 한계로 인해 쌓이는 오해들은 마세라티가 감내해야 할 부분일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럭셔리 브랜드가 그러하듯 말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마세라티의 진면모를 이야기해보자. 우선 많은 사람들이 마세라티 기블리를 그저 잘 생긴 이탈리안 4도어 세단 정도로 여기지만, 한계 상황에서 기블리가 표현하는 다이나믹은 차분하지도 젠틀하지도 않다. 그런 특성은 시동을 걸 때부터 곧바로 드러난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는 순간, 비즈니스 세단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그라울링 사운드가 주차장 지붕을 치고 울려 퍼진다. 그대로 가만히 rpm이 진정될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도 이 차를 즐기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을만큼 들어도 들어도 기분 좋은 사운드다. 드라이한 사운드와 함께 카랑카랑하고 거친 하이톤의 음색이 함께 울려퍼진다. 음악가들과 함께 조율했다고 하는데 결코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그런 다음 가속 페달을 밟으면 이 사운드는 잠시 존재를 감춘다. 그 상태로 한 밤중에 골목길을 달려도 사람들의 달콤한 수면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다. 오른발에 힘을 조금 더 줘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른 아침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신체의 리듬을 차분히 끌어 올리며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심지어 이중접합 유리는 외부 소음까지 차단하기 때문에 우아한 클래식 음악 감상에도 무리없다.

요철을 기분좋게 타넘으며 불쾌한 진동을 거르는 솜씨도 훌륭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블리는 꽤 우아한 드라이빙을 경험하게 하는 좋은 비즈니스 세단 정도로 여기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스포츠모드로 전환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단지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수준의 사운드가 차체 바닥 전체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알던 비즈니스 세단을 초월하기 시작한다. 도어 만큼이나 묵직한 가속 페달에 힘을 주기 시작하면 이 차는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의 자동차로 변한다. 아무렇지 않게 앞자리 숫자를 바꿀 정도로 엄청난 가속력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에서 불안, 초조, 긴장은 없다. 심지어 어떠한 노력도 필요치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변속 간 들려오는 기묘한 사운드 역시 비즈니스 세단의 그것이 아니다. 재가속을 할 때면 주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다 빼앗아 올 만큼의 엄청난 사운드가 울려펴진다. 아드레날린 수치는 올라가지만 몸은 기막히게 편안한, 낯선 감각이 끝없이 펼쳐진다. 불안과 긴장이 사라지니 스티어링 휠을 비트는 것도 문제없다. 그 순간 느껴지는 서스펜션의 반응은 그간 우리가 경험해왔던 서스펜션의 반응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스포츠 서스펜션이 하드하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기블리의 서스펜션은 스포츠 모드에서도 안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묘한 감촉으로 노면을 정확히 읽고 불필요한 타이어의 동작을 생략하며 매우 정확히 그리고 날카롭게 도로를 가르고 나간다.

극도의 쾌락적인 사운드가 실내를 가득채우고 있음에도 매순간이 안정적이며 안락하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다보면 이윽고 깨달음을 하나 얻는다. 이게 마세라티 기블리의 디폴트 상태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마세라티는 스포츠모드로 변환되었음을 애써 알리지 않는다. 계기반에 변화라고는 고작 SPORT라는 글자 뿐이다. 어설프게 붉은색으로 긴장을 더하지도 않는다.

스포츠모드가 디폴트 상태라는 것. 이것이 마세라티에 대한 좀 더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이 차는 비즈니스 세단을 가장한 스포츠카이며, 매일 매일 출퇴근길에 함께 해줄 거의 유일한 스포츠 카라고 봐야만 한다.

스포츠카 기질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품의는 잃지 않았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협업한, 사치그럽기 이를데 없는 인테리어 트림이다. 시트와 도어트림 그리고 헤드라이너와 선바이저를 감싸고 있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패브릭 또는 직물 내장재는 다름아닌 에르메네질도 제냐에서 제작한 원단이다.

이 브랜드는 남성 수트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다. 호화로운 남성 수트에 거의 빠짐없이 들어가는 이른바 남성 럭셔리의 표준 브랜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혹자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양모 원단을 사용했다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원단의 완성도나 질감 그리고 소재에 있어서는 어쩌면 그것을 훨씬 앞설지도 모른다.

이 원단은 다름아닌 실크다. 남성 수트의 소재로 최고급으로 여기는 소재 역시 실크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실크는 무척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이며, 특히 내구성이나 오염에 취약하다. 자동차에 이 소재가 쓰인다는 것은 패션 아이템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까다로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실크의 사용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자동차의 인테리어에 쓰였다는 것은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실크 원단 제작에 있어 엄청난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실험정신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와도 같다. 이 원단이 적용된 마세라티의 시트는 400,000km를 달려도 처음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질좋은 가죽도 완전히 망쳐 버리는 커피, 콜라를 심지어 올리브 오일이나 케첩 등으로부터 원단의 우아한 색감을 완벽히 보호한다.

심지어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실크 패브릭이 적용되어 시트의 통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으며, 기블리 그란 루소에 포함된 통풍시트를 이용함에 있어서도 가죽에 구멍을 내는 안타까운 작업을 동반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은 보이는 그대로 섬세하며 우아하다. 그리고 품의를 지키면서도 편리한 기능은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2003년 마세라티 트로페오에 처음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이름이 모습을 드러낸 이후, 2013년부터 이 두 브랜드는 전략적인 파트너가 되었다. 두 회사 모두 이탈리아에서 성장한 브랜드이자 동시에 100년이 넘도록 최고의 브랜드라는 지위를 지키고 있었기에 두 회사의 콜라보레이션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2013년을 시작으로 상당한 시간동안 두 브랜드는 각자의 브랜드가 가지는 가치를 공유하며 함께 자신들의 품의와 가치를 지키고 있다. 또한 이들은 100년의 브랜드이자 동시에 여전히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브랜드로서 자동차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던 실크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발하고 시장에 소개해왔다.

만약 여러분들이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인테리어 트림이 반영된 마세라티를 마주하고 있다면, 이색적인 인테리어 소재를 지닌 마세라티를 너머, 100년의 역사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도 좋다. 마세라티 X 에르메네질도 제냐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100년 전통의 두 브랜드를 하나의 매개체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자동차를 통해 100년 역사의 노하우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과도 같다.

이것이 마세라티와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우리들에게 제시하는 진정한 가치다.

※본 기사의 의견은 오토뷰의 공식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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