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유로 배기가스 규정은 배기량을 키우는 정책?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06.0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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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자동차 시장에 변화를 촉구한 키워드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다운사이징"이다. 유로6 규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전 세계 제조사들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자 극심한 엔진 다이어트를 감행해야 했다.

이런 영향 때문에 6기통 엔진이 당연했던 프리미엄 비즈니스 세단의 주력 엔진은 모조리 4기통으로 바뀌었으며,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는 더 이상의 V12 엔진 개발은 없을 것이라 선포했고, 볼보는 아예 4기통 엔진만으로 모든 라인업을 구성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경차 전용 엔진이라 여겼던 3기통 엔진을 소형 SUV에서 경험하는 시대를 맞이했고, 부드럽고 직접적인 엔진 필링을 제공해왔던 자연흡기 엔진은 지구상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 자리를 터보차저와 하이브리드가 대신하면서 거의 모든 제조사가 더 나은 연비를 제공할 것이라며 우리를 위안했다.

심지어 이런 움직임은 포르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Flat 6 엔진을 더 이상 박스터와 카이맨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968 이후 처음으로 4기통 엔진을 탑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한번 불어닥친 다운사이징 바람으로 인해 제조사들은 막대한 개발비를 쏟아부어야 했고, 소비자들에게 빈약해진 숫자와 감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난감해 했다.

많은 것이 너무나도 빨리 바뀌어버린 상황에서 어쩌면 또 다른 시대로 접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바로 2026년부터 다음 유로 규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유로 환경 규제는 가장 직접적이고 가혹하게 자동차 시장을 바꾸어 놓았는데, 매 규정이 바뀔 때마다 제조사들과 더불어 소비자들까지도 거의 몸살을 앓아야 할 지경이다. 물론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면 인류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엄격해질 필요는 있다. 게다가 새로운 규제는 새로운 기술 개발의 모티베이션을 제공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필요한 조치임에 틀림없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유로 7 규정의 다음 규정으로 환경 규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엄격하다는 것이 제조사들의 이야기다. 거의 레이스 카 테크니컬 레귤레이션 수준으로 기술적인 부분까지 깊이 파고들고 있는데, 가장 핵심인 규정은 바로 이것이다.

“리터당 출력의 제한" 이와 같은 조치는 유로 6과 7으로 인해 불어닥친 다운사이징 트렌드와는 또 다른 차원의 규제 조치다. 실제로 이 정도 수준의 규정은 모터스포츠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으로, 한마디로 말해 1L 당 발생시킬 수 있는 출력 상한선이 마련되는 셈이다. 이같은 강력한 규제가 시작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전동화 시대로의 빠른 전환이다.

일반적인 자동차를 개발, 생산하는 제조사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벽 뒤에 숨어 웃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몇몇 모델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A45 AMG나 미니 JCW와 같이 리터당 100마력을 뛰어넘는 출력을 보여주는 4기통 엔진들은 아마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큰 고민에 빠진 회사가 있다. 바로 스포츠카 전문 제조사들이다. 대표적으로 포르쉐가 있다. 포르쉐 스포츠카 책임자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밝혔다.

“2026년에는 유로7과 함께 새로운 단계의 규제가 시작될 것입니다. 실제 주행 및 실험실 테스트를 모두 통과해야 하는 이 규제는 배기가스 규제 중 전례 없이 가장 엄격한 규제가 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특히 리터당 출력의 제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우리는 유로7 이후의 규제가 시작되면 적어도 지금보다 약 20%가량 엔진의 배기량이 증가할 것이라 예상합니다. 어쩌면 어떤 회사들은 4기통을 6기통으로, 6기통을 8기통으로 바꾸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지금보다 더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포르쉐는 두 가지 선택 안을 두고 고민 중이라 전했다. 하나는 출력을 낮추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소비자들이 가장 달가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다 진보된 엔진을 개발하는 것. 그러나 두 번째 대안도 결코 만만치 않다. 포르쉐의 이야기에 따르면 출력을 현재 상태로 유지하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면 지금보다 적어도 3~4배 이상 큰 촉매변환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격 상승도 문제지만 자동차 바닥의 패키징에도 크나큰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결국 모든 것을 소비자가 부담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의미와도 같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엔진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특히 911의 경우는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낼 것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911이 상징적으로 지켜왔던 Flat 6 엔진을 끝까지 지켜낼 것입니다. 물론 아주 가혹한 연구와 실험을 해야만 합니다.”

그는 GT3와 같이 자연흡기 엔진은 앞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제한된 출력을 키우기 위해 배기량을 높이면서 배출가스를 더 줄이고 무게까지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르쉐는 ‘어쩌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자연흡기 GT3는 10년 안에 종말을 고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GT2나 GT3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과 호주의 경우 배출 규제가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718도 사정은 비슷하다.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해 이미 4기통으로 사이즈를 줄였는데, 여기에 다시 새로운 4L Flat 6 엔진을 삽입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며, 게다가 아예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는 것은 전동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서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안은 있다. 하이브리드 혹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적용하면 이 문제를 비교적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포르쉐는 이미 하이엔드 급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해본 적이 있으며, 919와 같은 프로토타입 스포츠카에서 더 강력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다.

결론은 지금의 엔진에서 출력을 제한하고 하이브리드의 힘을 더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다음 유로 규정이 목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전통적으로 스포츠카에 순수성을 고집하는 소비자들의 만족을 유지시킨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이런 고민은 포르쉐뿐만 아니라 페라리, 그 외 다양한 스포츠카 전문 제조사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이다. 유로 규정이 얼마나 빠르게 자동차 시장의 변화를 촉구했는지 우리는 이미 수차례나 경험해왔다. 그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10년쯤 후에는 어쩌면 순수하게 엔진과 과급기만으로 회전하는 포르쉐나 페라리를 더는 만나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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