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의 여섯 번째 제품은?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05.15 14:2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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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회사들 중에서 이따금 자동차가 아닌 엉뚱한 물건을 팔 때가 있다. 예를 들면 푸조는 지금도 회사 창립 초기에 만들었던 후추 그라인더를 판매하고 있으며, VW에서는 소시지(커리 부어스트)를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꽤 맛있으며 회사 매출에 중요한 파이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파츠 넘버 33D 069 602인 커리 부어스트는 원래 VW 볼크스부르크 공장에 일하는 근로자들의 식단에 나왔던 부품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한 해에 무려 7백만 개 이상이 판매되니 이 정도면 VW이 만드는 그 어떤 제품보다 높은 판매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이 자동차가 아닌 무언가를 판매할 때는 그만한 역사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제품도 그렇다.

롤스로이스는 최근 색다른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팬텀, 레이스, 고스트, 던, 컬리넌에 이어 현재 롤스로이스에서 판매하는 정식적인 제품이자 여섯 번째 제품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 제품은 롤스로이스 공장 인근에서 생산되며 무려 25만 명의 전문가들이 매일 같이 근로와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진다.

다름 아닌 꿀이다.

그리고 25만 명의 전문가들은 꿀벌들이며, 공장은 롤스로이스 공장이 위치한 굿우드 인근 42에이커에 달하는 초원과 숲이다. 이곳에는 약 50만 그루의 나무와 관목 그리고 야생화가 서식하고 있으며, 심지어 롤스로이스 공장 지붕에 자라고 있는 식물들까지 포함하면 거의 50에이커에 달하는 자연환경이 펼쳐져 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롤스로이스를 위해 일하는 꿀벌들은 굿우드를 벗어나 웨스트 서섹스 시골 곳곳으로 날아간 후 꿀을 채집해 돌아오는데 이동 경로를 추적해본 결과 이들은 거의 12,000에이커 (약 1,400만 평)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롤스로이스에 따르면 25만의 꿀벌 근로자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2,000명의 직원들처럼 책임감을 갖고 올바른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당연히 모든 작업은 그들의 감각기관에만 의존하며 채집한 꿀을 수거하는 과정에서도 기계가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2017년부터 양봉장 프로젝트를 시작한 롤스로이스는 처음에는 6개의 벌통으로 시작했으며, 각 벌통에는 롤스로이스 비스포크 워크샵에서 제작한 스테인리스 명판을 부착해 관리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일까? 영국은 대규모 제조 공장을 짓는데 비교적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환경을 해치는 시설이라면 더욱더 까다로운 것은 당연한 일이며, 심지어 자연경관을 해치면 안 된다는 기준도 가지고 있어 공장의 디자인까지도 충분히 고려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태극 모양의 공장인 맥라렌의 기술 연구 센터 (Mclaren Technology Centre:MTC)도 그렇고, 최근에 새롭게 개장한 싱글 몰트 위스키 브랜드, 맥캘란의 새로운 양조장도 이 기준에 따라 지어졌다. 그리고 롤스로이스 공장 역시 마찬가지다. 굿우드의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이 공장이 그곳에 있음을 인식하지 않도록 주변 환경과 비슷한 분위기를 갖추어야 했기 때문에 초원과 비슷한 높이의 건물에 지붕에도 각종 식물들을 심어야 했다.

게다가 롤스로이스 공장 앞에는 사우드 다운스 국립 공원이 자리하고 있어서 공장을 더 넓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곳에는 이미 수많은 꿀벌과 호박벌 그리고 희귀한 나비들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 공장이 자리하기에는 그리 좋은 장소라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들은 오랜 공장의 전통을 지키고자 이곳을 고수했고, 결국 자동차 공장이라도 얼마든지 자연친화적인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양봉 프로젝트는 환경 문제에 있어 우리가 굿우드와 약속한 것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진행한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연못을 이용해 열과 빗물을 관리하며, 야생 동물 보호 시설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지붕을 포함해 우리 공장 부지 주변의 생물 다양성을 더 높이는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의 노력이 더 많이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롤스로이스는 점차 개체 수가 감소하는 꿀벌을 환경 오염으로부터 지키고, 특히 주변 지역 농업 경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꿀벌을 기름으로서 인근 농가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전해주고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채집한 꿀은 롤스로이스 공장이 자리한 굿우드를 방문해 팬텀이나 레이스, 고스트, 던 그리고 컬리넌을 시승하는 고객들에게 한 병씩 제공된다고 한다. 대량 생산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아마 롤스로이스 서울 전시장에서 이 꿀을 경험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처럼 꿀을 채집하는 회사는 또 있다. 바로 포르쉐다.

포르쉐 역시 롤스로이스와 비슷한 시기에 꿀벌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라이프치히 공장 주변에 양봉을 위한 벌통을 만들고 거기에 약 150만 마리의 꿀벌을 길러왔다. 그 결과 2017년에만 약 400kg의 벌꿀을 수입할 수 있었다고.

아래는 포르쉐가 정리한 꿀벌에 대한 팩트다.

20,000

전 세계에는 약 20,000 종의 벌들이 살고 있다.

560

이 중 독일에는 560종의 벌들이 서식 중이다.

1kg

1명의 독일인이 1년간 먹는 꿀의 양은 약 1kg이며

1kg

그런데 한 마리의 벌이 1kg의 꿀을 채집하려면 지구를 여섯 바퀴에 해당하는 거리를 날아다녀야 한다.

80%

그리고 전 세계 식물들 중 80% 이상이 꿀벌의 수분을 필요로 한다.

3

그래서 꿀벌은 소와 돼지에 이어 인류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동물이다.

5월은 벌들이 꿀을 한참 채집하는 시기다. 야외 활동이 많은 이 계절이 우리 주변에 벌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열심히 일하는 그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절실해진 요즘이니까.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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