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관하여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05.12 12:0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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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앞으로 우리는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더 이상 경험할 수 없게 될 것만 같은 분위기다. 실제로 유럽 국가 중 상당수가 몇 년 후부터 내연기관의 판매를 금지한다는 발표를 한 상태이니 내연기관의 멸종은 기정사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자동으로부터 사라지는 것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부터 현재는 남아 있지만, 앞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자동차의 부위들에 대해 알아보자.

단 완전히 소멸될 것과 흔적을 남기는 것을 구분해 알아볼 예정이다.

사이드 미러 (흔적)

거울은 자동차 디자이너와 에어로다이나미스트들이 없애고 싶어 하는 대표적인 부위이다. 특히 사이드미러는 매끈한 자동차를 구성하려 할 때 가장 거슬리는 부위이며, 동시에 공기역학 구조를 설계할 때 가장 성가신 부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미래를 이야기하는 컨셉트카에서는 이 부위가 과감히 생략되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은 법규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의 도로 교통법에 사이드미러는 있어야 할 것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이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도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렉서스는 몇 해 전, 물리적 형태의 거울을 없애고 카메라 포트로 사이드미러를 대신하는 양산차를 내놓았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전례 없이 빠르게 그 자동차를 정식 자동차로서 도로를 달릴 수 있게 인정해 주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99.9%의 자동차는 거울로 뒤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조만간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미 레이더 센서나 카메라와 결합되어 있기도 하며, 현대, 기아자동차의 경우 계기반에 후방을 보여주는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따라서 기술은 이미 확보되어 있으며, 법규와 인식만 바뀔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사이드미러는 사라질 것이다. 훨씬 얇고 작은 형태의 카메라 포트로 흔적만 남겨둔 채 말이다.

센터 터널 (소멸)

자동차의 가운데에는 불룩한 턱이 올라와 있다. 구동 방식에 따라 높이가 다르기는 하나, 모노코크 타입의 차체 방식을 가지고 있는 자동차라면 어김없이 존재하며 가운데를 관통하는 비어있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센터 터널이라 부른다.

이 공간은 세로 배치 엔진의 경우 기어 박스가 지나가는 공간이기도 하며, 드라이브 샤프트가 지나가는 공간이자 동시에 머플러가 지나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공간은 모노코크 차체의 비틀림을 방지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운전석과 동반석을 완전히 양분하며 심지어 뒷좌석 가운데에 아무도 앉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며, 따라서 실내 공간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들에게는 없애버리고 싶은 부위에 해당된다. 이 부위도 조만간 사라질 전망이다.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기반으로 하는 자동차들은 모노코크 방식이 아닌,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이라 부르는 납작한 구조 위에 탑승자를 위한 캐빈쉘을 올리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특징은 차체의 비틀림을 감당해야 할 부위가 모두 납작하고 평평한 플랫폼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버스나 대형 트럭의 구조를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드라이브 샤프트나 기어 박스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없으며, 결국 센터 터널을 완전히 없애고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어도 무방하다. 대부분의 전기자동차들의 바닥이 평평한 것, 특히 뒷좌석 바닥이 평평한 것도 모두 이런 이유 때문이다.

버튼과 스위치 (흔적)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나 CD 플레이어를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세대들에게 버튼과 스위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버튼과 스위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기능이 많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따라서 한마디로 뭔가 있어 보인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 버튼이 있어야 할 자리를 뭔가로 막아놓은 더미 버튼이 많으면 많을수록 옵션이 부족한 자동차로 보였으며, 반대로 고급스러운 자동차일수록 버튼이나 스위치로 빼곡하게 실내를 채워 넣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버튼리스 & 스위치리스(Buttonless & Switchless)가 자동차 인테리어 디자인의 트렌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는데, 첫 번째는 자동차의 실내를 주거 공간의 연장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과 두 번째는 터치 패널에 익숙해진 세대들을 위해 한두 장의 모니터에 화려한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세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새롭게 출시되는 자동차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더 큰 사이즈의 모니터를 넣었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반드시 필요한 몇 가지 버튼을 제외하고 실내에서 버튼이나 스위치를 과감히 제거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차의 경우 에어컨을 위한 버튼조차도 없애고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급진적인 브랜드는 테슬라다. 그들의 인테리어는 사실상 우리가 기억하던 자동차의 인테리어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한 장의 초대형 태블릿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다.

기어 노브 (흔적)

스티어링 휠과 함께 기어노브는 자동차 인테리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운전을 시작하면 반드시 2번 이상은 조작해야 하는 필수적인 기관이기도 한 기어노브는 점진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기관이기도 하다. 매뉴얼 기어에서 오토매틱 기어로 넘어올 때 한 번의 변화가 있었으며, 전자식 오토매틱으로 넘어오면서 또 한 번의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룩 솟아 오른 형태는 유지했는데 최근 이것조차도 바뀌고 있다.

바로 버튼과 다이얼로 말이다. 재규어가 근사한 다이얼 타입의 기어 레버를 선보인 이후 최근에 출시된 현대, 기아 자동차들의 센터터널에는 손으로 잡고 조작하는 기어 노브 대신 손가락으로 누르거나 돌리는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 브랜드들은 비교적 일찍 이런 방식을 도입했다.

처음 도입됐을 때는 불편해 보인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면 비교적 빠르게 적응하며 이후에는 불편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물론 지금도 손으로 잡고 위아래로 조작하는 기어노브를 고집하는 브랜드도 많다. 하지만 그들도 조만간 이런 분위기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특히 전기자동차로 플랫폼이 완전히 전환되면 더 이상 불룩하게 올라온 레버는 필요치 않다. 그저 모터의 구동과 회전 방향만을 결정하면 되기 때문에 온 / 오프 스위치의 개념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전히 없어지진 않겠지만, P, R, N, D로 전환하는 버튼이나 다이얼 형태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에어벤트 (흔적)

자동차의 실내는 집과 달리 온도가 매우 급격히 변하므로 온도 조절이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자동차의 대시보드 혹은 B 필러나 센터 터널 그리고 시트 바닥에 에어벤트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대시보드 전면에 거대한 에어벤트가 놓여 있는 것이 거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져왔다.

그런데 최근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에어벤트를 무척 보기 흉한 기관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는 비단 자동차뿐만 아니라 가정용 에어컨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릴 형태의 에어 벤트 대신 타공이 된 패널을 사용하거나 혹은 에어컨 본체의 측면에 숨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릴을 감추고 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로, 한때 LED를 넣거나 크롬으로 장식하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대시보드 디자인에 완벽히 숨겨버리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특히 수평 방향으로 대시보드를 넓게 펼치는 디자인이 유행하면서 에어벤트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대시보드의 진행 방향에 묻어버리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아예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춰 간접적으로 바람을 배출하는 형태로 진화시키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스티어링 휠 (소멸)

스티어링 휠은 지금까지 소개한 사라질 것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만큼은 분명하다. 레벨 5 자율 주행 자동차는 더 이상 사람의 운전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스티어링 휠 자체가 필요치 않게 된다.

그래서 근미래에는 분명 스티어링 휠은 소멸될 기관에 해당된다. 물론 이것 역시 단계별로 퇴화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완벽한 전자식 조향 시스템으로 바뀐다면 지금처럼 왼쪽 오른쪽에 고정된 스티어링이 아닌 좌우로 이동이 가능한 형태로 바뀔 수 있으며,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아마도 필요할 때만 펼쳐지는 폴더 방식으로 형태가 바뀔 수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스티어링 휠은 자동차 인테리어에서 사라지며, 조이스틱이 잠시 이를 대신했다가 그마저도 없어질 것이다. 스티어링 휠이 사라지면, 가속과 제동을 위한 페달도 소멸할 것이다. 클러치 페달이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스티어링 휠과 가속 페달이 사라지는 시대가 온다면 아마 자동차는 무인 전철과 같은 개념의 이동 수단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사라지고 있거나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하지만 아직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자동차의 기관들에 대해 알아봤다. 이 외에도 물리적 형태의 열쇠, 방향 지시등이나 와이퍼처럼 소소하지만 중요한 기관들이 사라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럼 왜 이렇게 모든 것이 바뀌거나 사라지는 것일까?

기술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자동차를 바라보는 관점과 기대하는 가치의 개념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오직 달리기 위해 모든 것이 특화된 공간만을 바라지 않는다. 보다 느긋하고 안락하며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서 가치를 발휘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SUV가 세단의 인기를 꺾어 놓은 것도 공간 활용성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의 사람들은 자동차의 공간을 그야말로 주거 공간의 연장으로 여기게 될 것이며, 우리가 거실을 바라보듯 자동차의 내부 공간을 바라본다면 위에 나열한 기관들은 거실에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므로,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결국 상자 같은 거대한 거주 공간과 네 개의 타이어 정도만이 남게 될지도 모른다. 반중력 시스템이 개발된다면 그나마 남아있는 타이어조차도 사라지게 되겠지만.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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