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미터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명품의 기준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04.2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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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이 조립 될 때는 반드시 허용 오차 범위라는 것이 존재한다. 주로 제품을 구성하는 한 부분과 다른 한 부분 사이의 간격에 대해 허용 오차 범위를 기준으로 두고 조립하는데, 가격이 비싼 제품일수록 허용 오차 범위가 매우 좁은 편이다. 대표적인 제품이 바로 자동차다. 우리가 흔히 “단차"라고 표현하는 제품 조립상의 실수도 허용 오차 범위를 초과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자동차는 이 허용 오차 범위에 대한 기준이 매우 까다로운 편으로 예를 들어 자동차 외장을 감싸는 패널의 경우 아주 가느다란 틈을 두고 패널과 패널이 마주하고 있다면 시각적으로는 보기 좋겠지만, 문제는 차체가 비틀릴 경우 패널의 가장자리나 모서리가 다른 패널과 간섭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밀폐에 가까운 수준으로 서로 맞붙는 것도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게다가 너무 간격을 좁게 설정할 경우 조립과정에서 손상이 발생하는 등, 조립 시간의 지연 문제도 발생하기 때문에 양산화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점까지 고려해 허용오차를 엄격히 지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단 외장 패널 뿐만 아니라 내장재에서도 이런 기준은 엄격히 적용된다. 너무 큰 간격으로 내장재가 조립되어 있으면 주행 중 진동에 의해 온갖 잡소리를 만들어 낼 것이며, 반대로 너무 가깝게 붙어 있다면 마찬가지 서로 부딪히며 불쾌한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만약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라면 이런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겠지만, 자동차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험난한 환경에서 이리저리 비틀리는 물건인데다가 시속 200km/h가 넘는 속도로 달릴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허용 오차는 매우 까다롭게 지켜져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허용 오차를 엄격히 지킨다는 것은 결국 이에 대한 품질 검사를 하는데 그만큼 시간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생산 공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면 그만큼 비용도 올라가기 때문에 저렴한 자동차들이 비교적 허술해보이고 잡소리가 심한 것도 이런 이유가 어느 정도 작용하기 때문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반대로 고급차일수록 시각적으로도 완벽해 보이며 잡소리도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그만큼 시간을 들여 허용 오차에 대한 검사를 보다 철저히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벤틀리 같은 브랜드들이 대표적이다.

벤틀리의 공장에는 이러한 허용 오차만 전문적으로 체크하는 계측 전문 팀이 존재한다. 약 25명 가량으로 구성된 이 팀은 생산 중인 거의 모든 종류의 벤틀리를 대상으로 허용 오차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는지를 체크하며, 만약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재조립을 명령하거나 설계상의 결함이 아닌지 재검토하도록 지시한다.

이 팀은 모든 벤틀리를 대상으로 아주 작은 나사 하나부터 바디패널, 인테리어 트림을 비롯해 심지어 엔진 부품까지 설계자에게서 넘겨받은 CAD 데이터를 기준으로 정확한 사이즈로 제작이 되었는지 측정하며, 각 부품간 기밀성을 비롯해 허용오차가 얼마나 지켜졌는지를 검사하는데, 검사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

단적인 예로 벤틀리 플라잉 스퍼 그릴 위에 자리한 플라잉 B 엠블럼의 경우 차량의 중앙과 완벽히 정렬되어 있어야 하며 높이 역시 엄격히 제한되어 있는데, 허용하는 오차 범위는 고작 0.15mm이다. 0.15mm면 초극박막에 해당되는 두께로 우리가 스마트폰 커버에 붙이는 보호 필름의 두께가 평균적으로 0.15mm에 해당된다.

바디 패널도 마찬가지다. 알루미늄으로 구성된 플라잉 스퍼의 바디 패널 역시 모든 부분을 일일이 체크하는데, 이들은 mm단위도 이 과정에서는 엄청나게 큰 단위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정교하게 모든 부분들의 단차를 맞추어간다는 것이 벤틀리의 설명이다.

엠블럼이나 패널만 해도 이렇게 까다로운데, 엔진은 어떨까? 벤틀리의 이야기에 따르면 엔진의 경우 거의 적혈구 한 개의 두께보다 더 가느다란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크랭크 샤프트로 6.0L W12 엔진에 포함되는 크랭크샤프트와 연결되는 커넥팅 로드 사이의 최대 허용 간격이 이 정도라는 것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수준의 얇은 공간만 사이에 오일 막을 형성한 이후부터는 허용된 운동 방향 이외 다른 방향으로는 움직여서 안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우리는 벤틀리를 구성하는 모든 부품들을 특별한 장비를 이용해 체크합니다. 가죽 표면부터 실린더의 보어에 이르기까지 미크론 단위로 분석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되는 장비는 실로 다양한데, 대표적인 장비가 레이저 스캐너다. 레이저 스캐너의 경우 주로 표면의 거칠기를 판단하는데 사용되는데, 가죽 역시 이 장비로 표면의 거칠기를 측정한다고 한다. 벤틀리는 모기나 파리에 물린 자욱 없는 매끈한 가죽으로 실내를 마감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단순히 육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져서는 정말 가죽 표면이 매끈해졌는지 정밀한 판단이 어려우므로 레이저 스캐너를 이용해 미크론 단위로 표면의 거칠기를 측정하며 품질 검사를 한다는 것이다.

엔진의 경우 까다롭게 측정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만약 크랭크 샤프트와 피스톤 사이에 기밀성이 떨어진다면 6.0L W12 엔진에서 뿜어내는 엄청난 힘에 의해 조금씩 틈이 벌어질 것이며,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불쾌한 진동을 끊임없이 운전자에게 전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배기량이 더 크고 더 큰 폭발력으로 더 큰 힘을 내는 엔진일수록 더 정교하게 조립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벤틀리는 이 측정작업을 모두 영상 20도로 유지되는 공간에서 진행한다. 그래야만 금속으로 구성된 부품들이 온도에 의해 수축되거나 팽창하는 일 없이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공정만큼은 절대 외부인이 참관할 수 없다고 한다. 무척 의미없어 보이고 지루해 보이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측정실에 사람의 출입이 잦을수록 온도의 변화도 피할 수 없으므로, 외부인 출입을 제한할 수 밖에 없다. 이곳에도 엄격한 허용 온도 차가 존재하며, 기준은 +- 0.5도 정도라고.

이러한 이유로 그간 이 부서는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벤틀리는 이들을 숨은 영웅이라 부르는데, 무척 까다롭고 피곤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완벽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기꺼이 많은 시간을 보내며, 결국 고객들의 만족도를 최상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이다.

비단 벤틀리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이러한 과정 중 일부를 진행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엔진의 내구성을 비롯해 고객의 감성품질 만족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허용 오차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체크를 반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물론 고객들은 내 자동차가 0.01mm 단위의 까다로운 검사를 받은 끝에 나에게 인도되었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지 못할 것이다. 자동차는 원래부터 잡소리가 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엔진은 원래부터 10년 이상 멀쩡하게 제 성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다 해왔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가격이 비싸면 비쌀수록 이런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은 더욱 더 길다. 누가보면 똑같은 금속과 가죽으로 만든 차인데, 왜 그리 가격에는 큰 차이가 있을까? 궁금해할지도 모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사람의 손길과 눈길이 닿은 시간의 가치가 더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정밀한 단위의 세계를 위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기에, 명품, 명차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한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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