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현대차, 일본 재진출 가능할까?

  • 기자명 김기태 PD
  • 입력 2019.06.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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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야 한다면, 전력 구축 후 이길 싸움 했으면…

국내 및 일본 일부 매체들은 현대차가 일본 시장에 재진출 움직임을 보인다고 보도했다. 현대차는 10년 전 일본 시장에서 철수한 바 있어 이번 뉴스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현대차는 토요타를 중심으로 쟁쟁한 경쟁자들이 포진한 일본 내수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이지 못했다. 이후 참담한 현실 속에 철수 결정을 내렸었다.

일부 매체들이 현대차의 일본 진출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현대차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이하 정의선 부회장)이 15~16일 열리는 G20 환경 에너지 장관회의, 글로벌 최고경영자 협의체 '수소위원회' 등을 이유로 일본으로 출국했다는 보도가 나왔던 시점과 같다. 현대차는 일본 진출에 대한 공식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

현대차가 다시 일본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까? 이 소식이 들리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진다. 우선 시기 문제가 있다.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 호황을 누리는 중이라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이유가 없다. 하지만 중국 시장을 비롯해 전체적인 실적이 절정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금 상황에서 일본 진출이라는 것은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기업에게 투자는 중요한 일이다. 시장 개척도 기업이 해야 할 일이다. 다만 시기의 적정성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지난해 일본 기업들은 경기 회복 및 기업 실적 향상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시장 1위인 토요타 자동차 전년 대비 약 10%에 늘어난 133만엔, 혼다도 10% 이상 늘어난 121만5000엔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하지만 올해는 어떨까? 최근 토요타는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여름 보너스를 삭감한다고 밝혔다. 대신 미래를 대비해 회사가 보유한 상당수 자원을 미래에 투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토요타를 이끄는 아키오 사장은 5~10년 뒤 토요타의 존립에 대해서도 자신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기업들은 미래를 위해 몸을 웅크리는 중이다. 반대로 현대차는 실패한 전력이 있는 시장 진출을 검토 중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실적에 대한 부담이다. 정몽구 회장 체제에서 결정했던 일본 시장 철수, 여기엔 실적 부진이란 근본적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관측이 많다. 우선 일본 시장에서 잘 팔리는 차들, 지금 현대차가 중심에 두고 있는 차들을 보자.

지난해 일본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들을 보자.

한국에서는 현대 기아차가 70% 이상의 시장을 쥐고 있지만, 자국 브랜드만 수개 이상 보유한 일본에서는 경쟁이 치열하다. 승용차 시장에서는 닛산(노트)가 가장 많은 판매량(13만 6324대)을 보였다. 소형차에 시장에서는 혼다의 N-BOX(24만 1870대)가 인기다.

우리 시장에서 익숙한 세단이나 SUV의 비중은 크지 않다. 경차, 여기에 박스카 스타일의 자동차들이 인기를 끈다. 국내 시장에서 현대차가 파는 모델 중 일본 시장에서 먹힐 차는 많지 않다. 유럽에서 팔리는 i10, i20 등을 들여오는 것이 현실적인데 일본 소비자들이 갑작스레 현대차 브랜드에 호의적일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반면 미국 시장은 우리와 유사한 것이 많다. 우선 넉넉한 공간을 선호한다. 부가적인 편의 장비에 대한 가치를 높게 본다. 애초 한국의 자동차 문화는 미국 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한국 시장과 소비자들의 대상으로 성장한 현대차 상품은 미국에서도 일부 먹힐 경쟁력을 갖는다.

하지만 경차의 천국이라 불리는 일본은 다르다. 위의 내용처럼 경차 및 소형차의 판매량이 절대적이다. 왜건에 대한 수요도 많다. 홋카이도 등의 북부 지역이라면 AWD 수요도 늘어난다. 경차에조차 AWD를 쓰는 것이 일본 북부 지역의 특징이다. 현대차에서 AWD 시스템을 갖춘 승용차는 제네시스 라인에 밖에 없다.

그렇다면 제네시스는 어떨까?

일본 자동차 시장은 경제성을 중시하는 경차 및 소형차 시장, 고급 차 시장으로 크게 구분된다. 제네시스? 현대차도 자리를 못 잡은 마당에 고급 라인이 설 자리는 없다. 고급 차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다. 브랜드 자체의 가치는 물론 기술적 가치 외 다양한 것들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제네시스는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지만 아직 세계 시장에서 안착한 지역은 없다. 고급 차 자체가 쉽지 않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렉서스 정도가 자리 잡은 일본 시장이기에 제네시스가 자리 잡을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또한 벤츠, BMW, 아우디 등의 프리미엄 브랜드조차 다양한 엔진 라인업으로 싸우는 것이 일본 차 시장이다. 우리 시장에서 볼 수 없는 2리터 미만의 엔진들이 잘 팔리는 시장이기도 하다.

대중 차 가격에 제네시스를 구매할 정도의 파격적 혜택이 아니라면 제네시스 상품을 눈여겨볼 소비자는 많지 않다.

일본 차 얘기가 나오면 정치적 문제를 끌어들여 상품(일본 차)을 깎아내리려는 세력들이 있다. 이런 우리 현실에서 '반한' 정책을 펴려는 일본 내 세력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내수 시장에서의 현대차는 대단한 힘을 가졌다. 여론조차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 현대차의 힘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터줏대감들이 그대로 보고 있을 가능성도 작다.

물론 손실과 실적에 대한 책임은 CEO가 떠안으면 된다. 하지만 이제 시작점에 있는 정의선 부회장 체제에서 너무 큰 도박을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현대차는 해외 투자자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일부 투자자들은 그들의 주도하에 현대차 그룹을 휘젓고 싶어 한다. 이 상황에서의 큰 손실은 경영진에 타격이 될 수 있다.

현대차 브랜드가 안착하려면? 업계 최저가를 내세우며 편의 장비 등을 내세워야 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다양한 홍보, 광고, 마케팅 전략도 펴야 한다. 말 그대도 일본 시장에 돈을 퍼부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상품들이 경쟁력을 갖췄다면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일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라인업이 부족한 상태이기에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일본 시장에서의 승산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승산이 크지 않은 시장에 대한 검토보다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조금 더 많은 혜택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큰 차를 좋아한다. 하지만 일본은 시장이 다르다. 정의선 부회장이 최고급 호텔, 큰 도로가 즐비한 도심이 아닌, 일본의 골목길과 소도시들 그리고 그 도시의 중심에 있는 주택가를 둘러봤다면 일정 부분 확신이 서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이브리드로 강세를 떨치는 토요타 모델들. 내수 시장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자랑한다. 프리우스, 아쿠아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시장에서 현대차가 파는 하이브리드 모델들도 순수 연비에 대한 경쟁력에서 충분하다.

현대차는 누가 뭐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1등 기업이다. 한국 자동차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역할도 한다. 이왕 진출을 검토하다면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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