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싸게 부르고, 할인으로 생색...이것이 수입차 문화?

  • 기자명 김기태 PD
  • 입력 2019.06.07 14:31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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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성은 두번째 가격 정책 튜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삼모사 (朝三暮四)'

요즘 일부 수입차 제조사들을 보며 떠오르는 말이다.

20년 차 기자 생활. 아직도 한 주에 2~3일을 지방 외진 도로, 고속도로에서 보낸다. 대략적 스펙으로도 그 차의 일부 성능이 예상되곤 한다. 또한 특정 브랜드의 신차가 나올 때 대략적인 가격대도 예상된다. 그리고 그 예상이 크게 빗나간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일부 브랜드의 것들은 예상이 안된다. 저마다 합리적이라는 말을 반복하지만 누가 봐도 수입사에만 합리적인 가격이다. 냉정히 말하면 팔 수 없는 가격, 아니 팔기 싫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는 가격이다.

지난해 'HOT'하게 여름을 보낸 브랜드. 얼마전 자사의 컴팩트 세단을 내놨다. 시장의 중심이 되어 온 인기 모델의 후속이다. 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비싼 가격이다. 디젤은 5천만원대 중반선, 가솔린 모델은 6천만원대를 넘어섰다. 4륜구동까지 달면 6천만원대 중반이 된다.

기존 모델도 정상가와 실거래 가격 차이가 컸지만 이를 감안해도 이번 가격은 비싸 보인다. 특히 가솔린 4륜구동 모델은 1%의 부자들을 위한 특별한 차 같다. 컴팩트 세단의 2.0 가솔린 모델을 6천만원대 중반에 구매하라는 것인데, 상당수 소비자는 그 예산을 들고 중형급(어퍼미들) 시장으로 갈 것이다.

처음 구매한 소비자만 바보로 만드는 구조. 아직도 이런 가격 정책이 익숙한 오늘이다. 하지만 그런 바보 소비자들을 잡아 한 몫이라도 챙겼을까? 아쉽게도 판매 실적 부진으로 이득도 많지 않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본사에 판매 부진이란 성적표를 지속해서 들이밀 자신감이 없다면 이제 슬슬 할인율을 높여야만 한다.

물론 가격을 고수하는 것도 방법이다. 고가 정책을 펴는 것인데, 일정한 가격을 유지해 소비자 간 형평성만 유지해 줄 수 있다면 질타받을 이유가 없다. 적어도 신차 발표 이후 2~3년 정도는 지속하면 된다. 그렇게 버틸 수 있다면 시장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쌓을 수 있다. 다만 5시리즈 때 버티다 무너진 전례가 있어 볼륨 모델 3시리즈에서 이런 정책을 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제 범위를 넓혀 전체 수입차 업계를 보자. 최근 시장에 나온 일부 상품들. 할인 없이는 판매가 안 될 것을 예상해 공식 차 값에 할인 예상 가격을 포함시켰다는 느낌이 짙다. 구성(편의장비)도 허술한데 경쟁차 보다 비싼 느낌이 드는 경우다. 물론 신차 출시 직후엔 형식적인 할인을 한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 하지만 일정 시간이 소요되면 곧 대대적인 할인을 시작된다. 1천만원 이상의 할인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격을 정한 파이낸스 담당자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다수의 소비자 머릿속에서 그 차에 대한 관심도 멀어진다는 것. 소비자들이 매일 그 차의 할인율만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 비싸다고 낙인 찍은 이후 경쟁사의 다른 모델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렉서스 LS도 한숨이 나오는 차 중 하나다. 비싸다. 특히나 LS500h는 고급 차에 어울리지 않게 핸들링만 쫓다 승차감을 망쳤다. 가격은? 시장에서는 가솔린 모델인 LS500과 유사한 수준으로 LS500h를 구매하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진다.

재규어도 이 그룹에 속한다. 고급 SUV 이미지가 강한 랜드로버와 달리 재규어는 할인이 많다. 잠시 소형 SUV를 보자. E-PACE는 동급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 무장했다. 하지만 정가에 차를 구입할 소비자는 1명도 없다. 누구도 이 가격을 합리적이라 여기지 않는다. 결국 상당 수준의 할인을 통해 판매를 지속한다. 애초 소비자 가격에 의미가 없었다.

이 밖에도 많다. 캐딜락은 예로 ATS 프리미엄의 공식 가격은 5천만원대 중반이다. 단 한 대의 차량도 이 가격에 팔렸을 리 없다. 벤츠? 다르지 않다.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S-클래스 등 특정 모델은 정가 수준을 유지하지만 대부분의 모델에 할인이 주어진다. 예전엔 제한적인 할인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특히 올해 판매 실적 달성을 이루려면 대대적인 할인이 필요하다.

아우디? 현재 인증 문제로 차를 판매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우디는 할인가의 선두주자, 아니 황제로 통한다. 황제의 귀환을 기다려 봐도 좋을 것. 다만 그 황제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올바른 삶을 살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기대감을 키워보자.

이제 수입차 시장에서 역행하는 다른 브랜드를 보자.

럭셔리 브랜드 마세라티도 할인으로 밀어내기를 했던 브랜드 중 하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전략을 바꿨다. 할인율을 높여 판매 대수를 늘리기보다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는 데 힘을 쓰겠다는 것. 고급 브랜드에 있어 당연한 행보다. 프리미엄 및 럭셔리 브랜드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다. 그리고 가격 정책도 이미지에 이바지한다.

요즘 뜨는 브랜드? 아니 이미 떠서 시장의 중심에 있는 인기 브랜드라 말하는 것이 맞겠다. 여기엔 포르쉐, 볼보가 있다.

포르쉐는 스포츠카 브랜드다. 하지만 프리미엄 브랜드 대비 약간 더 고급 브랜드로 인식된다. 덕분에 다수의 프리미엄 브랜드에 익숙해진 소비자들 상당수가 넘어가고 있다. 포르쉐도 파나메라, 카이엔으로 이들을 맞는다. 포르쉐는 할인이 없다. 있다고 해도 1% 내외의 형식적 할인이다. 그들에게 최대 예후를 받는 것은 차량 인도 시기가 조금 당겨지는 정도. 결국 이런 가격 정책은 다시금 브랜드 가치, 상품 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다른 브랜드로는 스웨덴 태생 볼보가 있다. 이들도 과거엔 할인을 남발했다. 하지만 이제 볼보의 중심 모델에서 할인을 기대하긴 어렵다. 상품성의 향상, 물량 부족이란 것도 할인율을 제한하는 데 역할을 했지만, 이제 가격 자체를 합리적으로 잡아나가고 있다. 차를 계약하고 수개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아쉬움이나 적어도 소비자간 구매 가격 편차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할인 문제가 아닌, 애초 좋은 가격을 제시한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이 두 개 브랜드는 좋은 정책을 펴고 있다. 그 덕분에 한층 잘나가는(?) 브랜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친김에 국산 차 얘기도 해보자. 르노삼성? 오래된 모델 가격을 낮췄다. 단종을 앞둔 SM5는 2천만원대 팔린다. 오래된 SM3도 공식 판매가격을 갖춰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한다. 물론 모든 르노삼성 모델들의 가격 경쟁력이 높지는 않다. 하지만 사골 모델조차 제값을 받으려는 일부 브랜드들에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그들은 꿈쩍하지 않겠지만. 모하비, 네 얘기다.

한국지엠은 어떤가? 브랜드 이미지 저하로 매달 할인 정책을 펴는 중이다. 정가로 구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가격을 낮추고 합리적으로 간다는 전략을 펴면 어떨까? 어차피 받지도 못할 정가를 내세우지 말고 부담 없는 실거래 가격을 통해 건전한 소비문화에 일조하는 브랜드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경기가 나쁘다. 이 얘긴 시장이 극과 극으로 갈 것이란 전망을 만들어 낸다. 대중 시장에서는 가격이 최우선이다. 가격으로 눈길을 잡을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생존 전략을 다시 구축할 수 있다. 크루즈, 이쿼녹스. 단종과 저조한 판매. 이 차들이 완성도가 떨어져서? 아니다. 완성도는 동급에서 최고다. 가격이 이들을 죽였다. 한국 지엠이 싸우는 곳은 프리미엄 시장이 아니다. 가격이 중요한 대중 시장이다.

자동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이다. 적어도 가격으로 소비자와 씨름하는 회사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일부 수입 자동차 딜러들은 매장을 찾은 소비자들이 이곳저것 가격을 묻고 흥정을 벌여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볼까?

'비싸게 포장한 뒤 선심쓰듯 가격 깎아주는 거, 그거 너희들이 만든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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