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40~50대 아재들을 설레게 했던 일본 스포츠카들

  • 기자명 뉴스팀
  • 입력 2018.09.1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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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9년 7월 수입선다변화 조치(일제 직수입 금지)가 폐지 이후 일본 차들이 국내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1년 한국토요타가 렉서스로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설 수 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수입금지 조치가 풀리며 일본산 중고차들이 먼저 시장에 들어왔다. 특히 고성능을 앞세운 일부 모델들은 성능에 굶주린 카마니아들을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 90년대 성능을 내세우던 모델로는 현대차의 스쿠프와 티뷰론이 꼽혔다. 스쿠프는 1995년까지 명맥을 이어나갔지만 96년 상반기 등장한 티뷰론에게 자리를 내주며 사라졌다. 당시 티뷰론의 성능은 150마력 전후다. 2.0리터 베타 엔진으로 무난한 성능을 이끌었지만 사실상 쏘나타 등의 세단 대비 월등한 성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때문에 다양한 튜닝을 통해 성능을 올리려는 카마니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의 튜닝이란 것이 다소 주먹구구식이었다. 에어클리너 바꿔서 몇 마력, 배기 매니폴드나 머플러를 바꾸면 몇십 마력이 늘어난다는 식이 주를 이뤘다. 어떤 경우는 튜닝카가 순정차 보다 뒤처진 성능을 내기도 했다. 수많은 돈을 들여 투자했지만 성능 향상이란 것이 미미했다는 얘기다.

티뷰론이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티뷰론 터뷸런스로 거듭났지만 성능 변화는 미미했다. 그리고 이맘때 즈음 일본산 중고 스포츠카들이 국내 시장에 들어왔다. 기본 사양만으로도 높은 성능을 냈고 이에 매료된 카마니아들도 많아졌다. 지금을 기준으로 보면 200마력조차 평범하고, 국산 브랜드조차 고성능 모델을 내놓는 단계에 있지만 당시 90년대를 주름잡던 일본산 스포츠카의 등장, 그 자체는 지금의 포르쉐, 페라리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줬다.

십수 년 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스포츠카는 닛산이 만든 스카이라인 GT-R 이었다. GT-R은 일본 내에서도 상징적 모델로 분류되는데, 지난 2002년 단종된 이후 16년이 흘렀음에도 높은 잔존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BNR34로 불리는 스카이라인 GT-R은 연식에 따라 8천만 원(800만 엔 이상)의 가격에 거래된다. 사실 이 가격이면 차기 버전의 GT-R을 구입할 수도 있지만 일본 내에서도 스카이라인 GT-R에 대한 사랑만큼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당시의 스카이라인 GT-R은 2.6리터 엔진에 두 개의 터보차저를 더해 280마력의 성능을 냈다. 이 성능은 당시 일본 시장의 마력 규제에 의한 것으로 머플러 하나만 바꿔도 수십 마력이 오르는 등 넘치는 성능을 자랑했다. 닛산의 4륜 구동 시스템 아테사의 유명세를 만들어 준 장본인도 GT-R 덕분이다.

한때는 이런 스카이라인 GT-R의 성능을 수백 마력 또는 1천 마력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튜닝이 유행하기도 했다. 국내 일부 카마니아들도 이 차를 구입한 뒤 일본 튜닝업체를 통해 유사한 성능을 만들어 내기도 했었다.

대중적 브랜드의 상징 토요타를 대표하는 모델은 수프라(SUPRA)였다. 보수적인 토요타 스타일에 맞춰 탄탄한 차체를 가졌지만 지금처럼 초고장력 강판들이 널리 쓰이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무거운 차체 무게를 가졌다. 하지만 다른 모델과 달리 출력을 높여도 차체가 이 성능을 모두 받아냈기에 초고속을 즐기는 카마니아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일본에서는 0-300km/h 가속을 30초 내외에 마크하는 하드코어 튜닝을 즐기는 소비자들도 있었다.

스푸라에는 3.0리터 자연흡기 엔진이 장착되는데 기본 모델은 SZ, 여기에 6단 수동변속기라 올라가면 SZ-R로 분류됐다. 고성능 모델인 RZ는 3.0리터 엔진에 두 개의 터보차저를 달았는데 출력 규제에 의해 최고출력은 280마력에 묶였지만 최대토크가 48Kg.m에 달했다. 이 수치는 현세대 3.0리터 터보 엔진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다.

닛산의 스카이라인 GT-R이 4륜 구동을 기초로 했다면 수프라는 후륜구동이 기본이었다. 당시 후륜 차에 익숙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이를 구입해 운전하다 사고를 내는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묵직한 느낌의 고성능 스포츠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닛산 실비아도 마니아들 사이에 입소문을 탔다. 실비아는 가벼운 차체, 또한 우리에게는 생소하던 드리프트라는 장르를 소개한 대표적인 모델로 꼽힌다.

자연흡기 SR20 엔진을 얹은 기본 모델도 있었지만 SR20DET라 불리는 싱글 터보 엔진을 장착한 실비아는 가벼운 차체를 무기로 꽤나 활동적인 성능을 냈다. 특히 마지막 버전인 S15형 실비아는 250마력을 기본 성능으로 제공했다. 당시만 해도 250마력의 터보 엔진, 수동 6단 변속기라는 조합은 카마니아들을 설레게 한 조합과도 같았다. 이와 같은 후륜구동 차들이 시장에 나오자 시장에서도 후륜구동 차에 대한 지지층이 많아지게 됐고 이는 훗날 제네시스 쿠페를 개발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혼다는 NSX로 고성능 스포츠카 시장을 이끌었다. 다른 스포츠카 대비 고가를 가격을 가진 NSX는 한 대를 생산할 때마다 혼다에게 손해를 입힌 차로도 유명하다. 알루미늄 차체, 자연흡기 엔진이 만드는 280마력의 출력은 터보 엔진으로 무장한 타사들과 다른 노선을 걸었던 혼다만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예였다. NSX는 일본의 페라리로도 불렸는데 엔진을 차체 중앙에 얹은 미드십 방식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고성능의 NSX Type-R은 혼다가 가진 기술을 모두 집약시킨 모델로 평가받았다. 혼다에게 적자를 안겨주는 모델이긴 했지만 이 덕분에 혼다는 자사의 기술력을 한층 향상 시킬 수 있었다.

NSX는 지난 1990년 등장한 이래 꾸준한 개선을 거쳐 2005년까지 생산됐다. 이후 시장 상황에 따라 쓸쓸히 단종됐지만 혼다는 2016년 다시금 NSX를 부활시켰다. 새로운 NSX는 1세대의 후륜구동과 달리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춘 4륜 구동 모델로 진화했다.

당시의 혼다는 고가의 NSX 외에도 대중적 성향이 짙은 전륜구동(FF) 방식의 빠른 차들도 내놨다. 특히 저 배기량 엔진에 가변 밸브 타이밍 기술을 더한 VTEC 엔진을 장착한 시빅 타입-R과 쿠페인 인테그라 타입-R은 고회전 지향 자연흡기 엔진의 매력을 내세우며 카마니아들의 관심을 끌었다.

마쯔다에게는 RX-7이 있었다. 세계 최초의 로터리엔진 상용화. RX-7은 두 개의 로터를 가진 심장으로 특유의 매력을 뽐냈다. 하나의 로터는 654cc. 두 개의 로터를 더해도 1308cc에 불과한 배기량을 갖는다. 덕분에 국내 수입된 RX-7에 부과된 연간 자동차세는 당시 소형 해치백이던 기아 프라이드 보다 적었다.

하지만 두 개의 로터에 터보를 달아 280마력의 출력을 자랑했다. 로터리 엔진은 특히 고회전에 강했는데 일반적인 엔진 대비 고회전에서의 회전 질감이 뛰어났다. 반면 로터의 회전에 의해 실린더 내부 마모가 발생하는 특징 때문에 내구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해외에서는 수십만 원 정도로 수입 가능한 내부 부속 교체비용이 국내에서는 수백만 원에 달해 유지 보수에 부담을 느끼고 차를 매각한 소비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가벼운 차체, 낮은 무게 중심 뛰어난 핸들링 성능에 매료된 카마니아들이 많았기에 지금도 마쯔다 RX-7을 그리워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앞서 언급된 모델들이 쿠페형 차체를 갖고 있었다면 미쓰비시는 준중형 세단을 튜닝한 고성능 모델 랜서 에볼루션으로 주목을 받았다. 사실 GTO라고 불리는 3.0리터 터보 엔진과 4륜 구동 시스템을 갖춘 쿠페도 있었지만 다른 모델 대비 성능이 좋지 못하다는 평을 얻게 되며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반면 랜서 에볼루션은 WRC를 통해 구축된 이미지 작은 차체와 어우러진 280마력 출력과 높은 토크를 바탕으로 일반 도로 및 서킷에서 매우 빠른 모델로 자리를 굳혔다. 특히 과거 영화계를 주름잡던 홍콩의 영화배우 성룡은 미쓰비시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성룡의 CIA 등 몇몇 영화를 통해 랜서 에볼루션이 가진 매력을 담아내기도 했었다. 터보 엔진과 4륜 구동의 조합은 빠른 가속은 물론 안정적인 코너링을 이끄는데 도움을 줬는데 7세대 모델 이후 다판클러치를 사용한 4륜 구동 시스템 조합을 통해 더 막강한 성능을 자랑하게 됐다. 10세대 모델은 국내 시장에서도 팔렸는데 당시 수입 판매사인 MMSK가 판매 부진을 겪으며 사업권을 포기, CXC 모터스가 이를 이어받아 사업을 전개하다 판매 실적 문제로 2013년 하반기 국내 시장에서 단종됐다.

미쓰비시는 지난 2016년 최종 진화형인 파이널 에디션을 판매한 이후 랜서 에볼루션을 단종시켰다.

미쓰비시에게 랜서 에볼루션이 있었다면 스바루에겐 임프레자 WRX STi가 있었다. 이 역시 준중형 차를 바탕으로 튜닝된 스페셜 카로 명성을 쌓았는데, 미쓰비시처럼 WRC를 통해 인기를 끈 모델로 기억되고 있다.

이 밖에도 대중적 성향이 강했던 토요타 셀리카, 미드십 방식의 MR-2, MR-S 등 카마니아들의 관심을 받았던 모델들이 많았다. 지금은 보기 힘든 모델 또는 클래식 스포츠카가 되었지만 지금도 이 차들을 회상하며 맥주 잔을 들이켜는 카마니아들도 많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 스포츠 카들은 과거의 향수와 함께 그 수요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보관 상태가 뛰어나고 주행거리가 짧은 희귀 모델은 웃돈을 주고 구입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과거의 향수를 떠올리는 소비자들은 게임을 통해 해당 모델들을 접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다소 시들한 인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도 초기 일본 스포츠카(튜닝카)의 인기에 힘입어 입지를 굳힌 영화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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