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반 소비자의 가성비, 부자들이 따지는 가성비는 다르다

  • 기자명 김기태 PD
  • 입력 2018.07.16 12:40
  •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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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차량에 대한 기사가 올라온다. 여기에 많은 댓글이 달린다. 같은 상품을 놓고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

1억 원이 넘는 고가의 자동차들도 많다. 특히나 프리미엄을 넘어 럭셔리 브랜드로 넘어가면 '1억' 미만의 차를 찾기 힘들다.

일부 네티즌들은 아반떼 풀옵션 보다 떨어지는 구성을 갖는다고 폄하한다. 뒷좌석이 좁네, 큰 배기량에 출력이 떨어진다 등등 폄하의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아반떼 풀옵션에는 액티브 세이프티(ADAS)를 비롯해 통풍시트 등 여러 가지 편의장비가 담긴다. 2천만 원대 예산에서 바라는 것이 많다면 매우 좋은 선택이 된다. 하지만 고가의 럭셔리 카들은 이런 부분에 인색하다. 아반떼가 갖춘 것들이 수억 대 차에 없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다.

벤틀리를 예로 보자. 630마력대 성능을 갖는 플라잉-스퍼 W12는 정지 상태서 100km/h까지 4초대에 가속된다. 순수 4초대에 의미를 두고 가성비를 따진다면 4천만 원대에 구입할 수 있는 기아 스팅어나 제네시스 G70 3.3T 모델이 낫다. 실제 그런 주장을 펴는 네티즌들도 일부 있다. 하지만 고출력 차량들은 초기 발진 가속 때 휠스핀 때문에 가속 시간에서 손해를 보기도 한다. 런치콘트롤이 있어도 일정 손실은 발생한다.

고출력 차량들은 기어가 2단으로 넘어간 이후부터 최대한의 가속을 이어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모델들은 시속 100km를 넘어 200km까지도 순식간에 가속된다. 물론 시속 300km 이상도 가능하다.

하지만 벤틀리 소비자들은 초기 발진 가속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또한 가성비를 따져가며 스팅어나 G70를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 자신의 라이프 영역에 존재하지 않는 차량들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들이 3초대 기록을 내더라도 관심 없다. 4~5천만원대 차들은 벤틀리가 가진 가치에 근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제네시스의 최고급 모델 EQ900 조차 구매 대상이 아니다.

이들이 가성비로 상품을 선택한다면 옵션이 가득한 포르쉐 파나메라,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메르세데스-AMG의 S63S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모두 2억 원 이상의 가격을 갖는 모델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을 가진다.

1억 원 이상을 쉽게 지출하는 소비자와 2~3천만 원의 예산을 갖고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는 많은 것이 다르다. 차량의 구입 예산이 제한적일수록 따지는 것들이 많아진다. 공간이 넓었으면, 정숙했으면, 핸들링도 좋고 뛰어난 성능을 갖췄으면, 여기에 많은 장비들이 포함되길 바라는 것이 보통이다. 장기 보유를 감안해 뛰어난 내구성도 바란다. 유지비 절감을 위한 고연비도 필수다.

반면 예산이 넉넉한 소비자들은 상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고가의 브랜드이거나 성능이 좋거나 승차감이 뛰어나다거나 여러가지 요소에서 취향에 따라 한두 가지에 집중해 상품을 고른다. 통상 3년 내외로 다른 차로 바꾸는 경우도 많다. 다만 시간이 곧 '돈'과 연결되는 만큼 잔고장이 높은 모델은 선호하지 않는다. 물론 잔고장률에 대한 부담이 있어도 대외적인 가치가 높다면 그 가치에 의미를 부여해 상품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 제품 외에 대안이 없는 경우다.

통상 수억 대 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이미 많은 것들을 갖고 있다. 큰 집, 여유로운 통장 잔고, 생활에 필요한 도구들도 제법 이름값 하는 것인 경우가 많다. 홈 오디오 하나에 수천, 수억 원을 쓰는 소비자들도 있다.

골드 문트라 불리는 오디오 시스템은 제품에 따라 수억 원의 가격을 가진다. 이런 상품의 소비자들에게 JBL, BOSE 등의 수십만 원대 사운드 시스템을 들먹이며 가성비를 논한다면 아무 말 없이 웃고 말 것이다. 애초 대중 브랜드 시장과 최고급 상품 시장은 다르다.

여성들은 명품 백을 좋아한다. 가성비로 보자면 에코백, 더 나아가면 비닐봉지가 최고다. 비가 와도 걱정 없고 오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물건을 담아내는 기능성에도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수백수천만 원짜리 명품 백을 왜 갖고 싶어 할까? 고가의 백이 보여주는 가치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백들은 사실상 사치품이라 불린다.

예산에 맞춰 자신이 구입하면 가성비, 남들이 구입하면 개념 없는 사치품일까?

고가차에 대한 기사에 '돈이 있어도 안 산다'라는 댓글을 남기는 네티즌들도 있는데, 이들과 대화하는 것은 의미 없는 소모전에 불과하다. 엠블럼 하나에 수천, 수억을 쓰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결국 자신도 그런 사치를 할 수 있는 그룹에 속해야만 한다.

튜닝한 국산 쿠페가 수백 마력 포르쉐 보다 빠르다고 주장하는 소비자도 있다. 이 역시 의미 없는 소모전의 일부다. 이들은 포르쉐를 튜닝하면 더 빨라진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포르쉐의 성능을 주어진 예산안에서 맞추다 보니 그와 같은 억지스런 주장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마세라티의 일부 모델을 두고 '소리만 좋은 차'라고 말하는 네티즌들도 있다. 거장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생전 마세라티를 즐겼다. 단지 사운드 때문이었다. 돈이 없어서? 남들보다 소리에 특화된 직업을 가진 거장의 선택이 그 차가 들려주는 사운드에 있었다. 다른 차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통한 존재감 그것이 선택의 이유였다.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단순한 요소, 그 매력을 바라보며 거액을 투자하는 소비자들도 있다는 얘기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맥라렌 등의 슈퍼카는 차를 인수한 후 시동 버튼을 누르는 순간 수천만 원이 날아간다. 이런 고가 차들은 감가가 매우 크다. 편의장비 같은 것들을 기대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이들은 엠블럼 하나가 수천~수억이라 말한다. 머스탱의 로고를 장식하던 말이 하늘을 향해 도약하는 순간, 차량 엠블럼 가격은 억대로 바뀐다. 페라리 얘기다.

그렇다면 고가의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고가의 브랜드 상품을 갖기 위해 많은 돈을 쓰는 것이고, 그것이 대중적인 승용차와 고급차를 구분해주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명품 백 중 하나로 꼽히는 에르메스 제품은 천만 원 이상을 호가한다. 좋은 가죽을 사용하는 것도 이유지만 그들의 브랜드 가치가 가격을 주도한다. 패션 세계에서도 브랜드를 상징하는 문양 하나가 천만 원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는 얘기다.

가족 모두를 위해 패밀리카를 구입하는 소비자라면 뒷좌석 공간이나 화물 적재 능력을 따진다. 하지만 내 취향을 살린 액세서리, 사치품으로 고가차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내용이다.

모든 소비자들이 수억 대 차를 가질 수는 없다. 만약 다수가 고가차를 소유하게 된다면 그 차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 부자들은 더 비싼 차를 찾아 떠날 것이다.

다양한 차량에는 저마다의 색과 타깃 소비자가 있다. 내가 고급차의 소비자는 아니어도 각 상품이 가진 매력, 이를 바탕으로 상품을 바라보는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댓글을 남기기 전에 먼저 생각하자. 내가 가질 수 없기에 '폄하'를 통해 만족감을 채우려는 것은 아닌지. 그보다 언젠가 그런 명품들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분들이 자신이 원하는 멋진 차의 운전석에 오르시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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