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를 홍보팀에서 쓴다고요?

  • 기자명 김기태 PD
  • 입력 2018.05.23 18:27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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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4월 르노삼성차는 자동차 담당 기자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연재했다.

3월 14~15일, '쉽게 잘 찍는 자동차 사진'이란 주제로 강연을 시작해 다양한 교육을 이어나갔다. 사용하는 카메라를 가져오면 사용법을 알려주고, 카메라가 없을 경우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최근 트렌드를 의식해 영상 제작자를 불러 '자동차 영상 제작의 기본'이란 주제로 업계 기자들을 위한 강연도 했다. 심지어 컨텐츠(기사) 기획이나 시승기 쓰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강연도 이어졌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기자들의 반응이 꽤나 좋았다고 밝혔다.

얼마나 한심해 보였으면 제조사가 직접 나섰을까?

다양한 언론 매체들이 쏟아내던 그 많은 시승기, 도대체 어떻게 쓰여진 것일까?

모르면 배워야 한다지만 르노삼성이 기획했던 이 행사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지금의 미디어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수없이 쏟아지는 다양한 시승기. 하지만 일부 기자들은 소비자들 보다 차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단지 부서 발령 때문에 자동차를 담당자가 된 기자들도 많다. 애초 차에 관심 없던 경우라면 시승기 쓴다는 것이 곤욕이다. 남자라고 다 차에 관심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는 기자가 타봤지만 시승기는 다른 사람들이 써주는 경우도 있다. 일부 제조사 홍보팀 직원들은 매체에 게재될 기사를 대신 써준다. 모수입사 홍보 관계자는 자동차 업계에서 일한 지 오래됐지만 귀찮으니 기사를 대필해 달라는 기자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홍보팀 직원들이 시승기를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은 아니다. 기자들의 요구가 있기에 쓰는 것이다. 심지어 심층취재를 위한 기획기사를 써주는 경우도 있단다.

과거 현대차가 기자들에게 시승기를 나눠줬다는 이유로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현대차는 기자 시승회에서 자신들이 작성한 시승기를 나눠줬고 이에 네티즌들은 현대차가 시승기마저 조작한다며 질타를 쏟아냈다. 하지만 업계 상황을 들여다보면 현대차도 피해자다.

애초 시승기를 작성하기 어렵다고 토로하는 기자들이 많으니 제조사 홍보팀에서 시승기 샘플을 제공했던 것이다. 현대차 차원에서는 자사에게 유리한 내용을 담아낼 수 있어 좋고, 기자는 어려운 시승기를 쓰지 않아도 되니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셈이다.

지금도 홍보팀 직원이 쓴 시승기 마지막 바이라인에 자신의 이름(기자명)을 써넣는 기자들이 있다. 어떤 기자들은 시승차를 받아 아무 곳에 나 세워둔 뒤 스마트폰 카메라로 대충 사진을 찍어 마무리한다. 그 흔한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조차 동원할 성의는 없다.

일부 자동차 업체 담당자는 그나마 차를 빌려 갔다면 시승기라도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줄어들긴 했지만 취미로 차만 타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 자동차 산업의 중심에서 일부 매체들이 쏟아내는 컨텐트가 이제 막 입문한 블로거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제조사가 기자들을 모아 기사 쓰는 법, 사진이나 영상 찍는 법을 가르쳐야 할까?

물론 예외적인 케이스도 있다. 수년 전 포르쉐는 홍보팀 담당자가 해외 시승회에 참석한 뒤 자신이 쓴 시승기를 일부 매체들에게 나눠줬다. 포르쉐 기사가 아쉬우면 가져다 쓰라는 이야기였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기사들. 포털 메인에 수많은 기사들이 노출되지만 사실 검증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서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소비자들이 컨텐트를 선별할 지식을 갖추는 것 외에 마땅한 방법이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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