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차를 만들어 판다", 현대 모터스포츠

  • 기자명 전인호 기자
  • 입력 2018.02.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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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R&D 박물관을 가다 2부

스쿠프(Scoupe)는 현대차가 처음 선보인 쿠페형 모델로 지난 1990년 출시됐다. 당시 승용 모델인 엑셀의 차체를 활용해 만들었으며 국산차 최초로 1.5리터 휘발유 터보차저 엔진을 탑재했다. 그리고 티뷰론(터뷸런스), 투스카니, 제네시스 쿠페에서 고성능을 상징하는 N의 첫 번째 모델인 i30N의 출시까지 무려 2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고성능 모델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모터스포츠와 연결된다. 현대차가 자사의 이름으로 참가했던 첫 경기는 세계 랠리 선수권 대회(World Rally Championship, 이하 WRC)였다. 베르나(수출명 엑센트) 모델로 참가했던 현대차는 2001년부터 출전,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2003년 철수를 결정하게 된다. 당시 현대차는 모터스포츠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기에 WRC의 참전과 철수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얻은 교훈이 됐다. 그리고 약 10년의 공백이 있었다.

현대차 모터스포츠팀 이종권 팀장

우리는 현대차 모터스포츠팀을 이끄는 이종권 팀장을 통해 많은 얘기를 들었다.

“현대차 내부에서도 WRC 참전에 대해서 의견이 나뉘었다.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WRC를 포기한 적이 없다. 잠시 준비 기간을 가졌을 뿐이다.”

2012년 12월 19일 현대는 독일 알체나우(Alzenau)에 현대 모터스포츠 법인(Hyundai Motorsport GmbH.)을 세웠다. 그리고 법인 출범과 동시에 유럽 모터스포츠 업계에서 경력을 쌓은 인재들을 스카우트 했다. 현대모터스포츠 팀 감독 미쉘 난단(Michel Nandan)을 필두로 과거 푸조 WRC팀에서 활약했던 프랑스계 핵심 인력들을 차례로 영입해 제조사 모터스포츠 팀으로서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법인 출범 이후인 지난 2013년 5월에는 새로운 i20 WRC의 시운전(Shake down)을 실시했다. 2014년 시즌 데뷔를 위해 차량과 팀도 재정비했다. 그리고 2014년, WRC 무대로 돌아온 현대차는 독일 랠리 시상대 정상에 오르며 과거와 다른 진일보한 현대차 그리고 N 모델의 가능성을 알린다.

뉴 제너레이션 i20 WRC

2015년 WRC 시즌에는 전체 제조사 중 3위의 성적도 기록했다. 그리고 2016년도에는 2위까지 올라섰다. 또한 올해 2018년 WRC 제2경기 스웨덴 랠리에서도 우승하여 현재까지 통산 8회의 우승을 달성했다. WRC에 참전한 현대 모터스포츠 법인은 커스터머 레이싱(Customer Racing) 시장까지 영역을 넓혔다. 일반 승용차를 다루던 대중 브랜드에서 시작해 모터스포츠를 위한 레이스 전용 차량도 판매하게 된 것.

첫 번째로 선보인 커스터머 레이스카는 WRC2 i20 R5이다. 이 차는 WRC의 하위 클래스 레이스에 참가할 자격을 갖췄다. 또한 온로드 서킷을 겨냥한 i30 N TCR을 내놨다. TCR(Touring Car Race)은 저비용 고효율을 지향하며 여러 커스터머 레이스 고객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클래스다. i30 N TCR은 지난해 중국 저장 서킷에서 열린 TCR 인터내셔널에 출전, 세계적인 브랜드의 경주차들과 함께 달리며 잠재 고객들의 시선을 이끌었다.

i20 R5 WRC2

i30 N TCR

커스터머 레이싱 시장 분야는 우리에겐 생소하다. 대중적인 양산차가 아닌 레이스 전용 차량을 판매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커스터머 레이싱의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까? 이에 이종권 팀장이 답했다. “i20 R5가 속하는 WRC 2의 전체 시장 규모는 470대, i30 N TCR에 해당되는 TCR 클래스는 규모는 전체 300대 정도다. 여기서 WRC 2는 제조사 경쟁이 치열한 편으로 현대차는 전체 WRC 2 규모 중 5%를 노리고 있다. 반면 TCR 영역에서는 그보다 높은 10%를 판매 목표로 잡았다.”

최근 i30 N TCR을 구매하는 고객들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북미에서 다양한 클래스의 모터스포츠 경기에 참전하는 레이싱 팀 브라이언 헤르타 오토스포츠(Bryan Herta Autosport)는 최근 두 대의 i30 N TCR을 구매했다. 새롭게 신설되는 피렐리 월드 챌린지 TCR 레이스 참전하기 위해서다.

유럽 무대에서는 이반 뮐러(Yvan Muller) 레이싱 팀이 두대의 i30 N TCR을 선택했다. 이반 뮐러는 WTCC 4회 챔피언, 우승 횟수 48회를 기록한 투어링 레이스의 장인과 같은 드라이버다. 여기에 2017년 WTCC 챔피언인 테드 비요크(Thed Björk)도 영입하여 WTCR에 참전할 예정이다.

브라이언 헤르타 오토스포츠 i30 N TCR

현대차는 WRC와 TCR 참가 등 해외 모터스포츠에서의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가는 중이다. 하지만 일부 모터스포츠 팬들은 정작 국내 모터스포츠에서 현대차가 소극적이라며 비판한다. 서킷을 달리고 있는 현대차 모델들은 많지만 정작 현대차가 직접 모터스포츠용으로 개발한 경주 차량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며, 국내 프로 레이스의 최상위 클래스도 현대차와 관련 없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지금까지 일부 현대 자동차의 모델들이 국내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경주를 펼친 것은 맞지만 사실상 현대 자동차가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 레이싱팀들이 자사 모델을 튜닝해 경주를 펼치는 모습에 현대차 내부에서도 상당한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자사 이름으로 국내 모터스포츠에 발을 들인 것은 현대 아반테 스포츠 시리즈를 통해서다. 과거와 다르게 현대차가 직접 대회 운영을 맡았다. 이전에 현대차로 운영됐던 단일 차종 모터스포츠 경기(원메이크 레이스)에서는 자동차 성능을 높이기 위해 애프터 마켓 튜닝 제품들을 썼다.

하지만 아반테 스포츠 시리즈 운영을 제조사가 직접 진행함에 따라 남양 연구소에서 개발된 튜익스(TUIX) 파츠를 장착하고 레이스의 컨셉도 명확하게 정리됐다. 이 경기를 위해 빠른 랩타임 보다 가속과 감속 그리고 코너링이 또렷하게 구분된 교과서적인 주행을 추구하도록 했다. 이런 이유로 아반테 스포츠 컵의 타이어 역시 스포츠 성향을 지닌 일반 레디얼 타이어로 정해진 바 있다.

아반테 스포츠 컵 마스터즈

아반테 스포츠 컵은 참가자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마스터즈, 챌린지 두 개의 클래스로 운영된다. 오랜 경험으로 경력을 쌓고 능숙한 실력을 자랑하는 드라이버들의 진검승부가 펼쳐지는 마스터즈 클래스, 그리고 모터스포츠 경력은 전무하지만 열정 가득한 신인 드라이버들의 성장판이 될 수 있는 챌린지 클래스로 구분돼 있다.

참가 선수에 대한 부상도 유례없이 파격적이다. 지난 2017년 아반테 스포츠 시리즈 마스터즈 클래스 챔피언에게 호주에서 개최된 WRC 경기를 VIP로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현대차는 올해 아반테 마스터즈 클래스 챔피언에게도 동일한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국내 모터스포츠 활동을 점점 넓혀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우선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인 N이 벨로스터를 통해 국내 출시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아반테 스포츠 레이스보다 상위 클래스 격인 세미-프로를 위한 벨로스터 N 레이스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 또한 아반테 스포츠보다 적은 비용 부담을 통해 진입장벽을 낮춘 기아 모닝 레이스도 개최를 앞뒀다.

신설되는 KSF 모닝 챌린지 레이스

비교적 소박한 규모의 국내 모터스포츠에 비해 해외 모터스포츠 무대는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 최상위 커스터머 레이싱 시장은 FIA GT3 클래스다. 세계 굴지의 브랜드들이 참가하는데 페라리, 람보르기니, 아우디, BMW, 포르쉐, 벤틀리, 메르세데스-벤츠, 렉서스 등 다양한 제조사가 자사의 슈퍼카급 양산차를 기반으로 이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현대 모터스포츠팀의 야심이 궁금했다. 가장 치열하며 다양성을 가진 FIA GT3 클래스에 도전할 것인가? 이 팀장은 “FIA GT3급 커스터머 레이싱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기틀이 되는 슈퍼카급 양산차 생산이 필요하다. 우선 현대 자동차의 브랜드로 슈퍼카를 만들어 판다고 가정해도 손익 여부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주식회사다. 회사는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손해가 발생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주주들에 대한 배임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기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몬자 서킷 그리드에 도열해 있는 다양한 GT3 레이스 카 가운데 국산 레이스 머신이 속했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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