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타 GT86을 둘러싼 타이어 제조사의 전쟁

  • 기자명 전인호 기자
  • 입력 2017.12.1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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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에서 가장 큰 모터스포츠 경기는 오토백스 슈퍼 GT(Autobacs Super GT)다. 이 경기의 가장 최상위 클래스인 GT500 레이스에서 4개의 타이어 제조사가 경쟁을 펼치고 있는데 일본 기업인 브리지스톤과 요코하마, 던롭(스미토모 고무 공업) 그리고 미쉐린이다. 하위 클래스인 GT300에서는 브리지스톤, 요코하마, 던롭이 경합 중이다.

2017년 시즌에서는 GT500 경기에서 브리지스톤, GT300에서 요코하마 타이어가 종합 우승 타이틀을 가져갔다. 태국 원정 라운드를 제외한 모든 일정이 일본 자국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도 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물론 일본을 대표하는 모터스포츠 경기 슈퍼 GT에서만 타이어 제조사들의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브랜드인 가주 레이싱(Gazoo Racing)이 운영하는 원메이크 경기에서도 매우 치열한 타이어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현실로 말하자면 현대차가 운영하는 아반테 컵 마스터즈 / 챌린지와 비슷한 경기로 이해하면 된다.

토요타의 스포츠카 GT86 그리고 스바루의 BRZ 모델만이 출전하는 이 경기는 프로페셔널 그리고 아마추어 클래스로 나뉘어 치러진다. 특히 프로 클래스에는 슈퍼 GT에 출전하는 유명 프로 드라이버들이 다수 참가해 높은 경기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팬들을 확보했던 비디오매거진 ‘베스트모터링’에 자주 등장했던 핫토리 나오키, 오리도 마나부, 다니구치 노부테루 등도 이 레이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슈퍼 GT는 동일한 클래스 내에서도 경기에 출전하는 모델들의 성능과 특징이 다르다. 팀의 재정에 따라 차량 컨디션은 물론 성능 차이도 크다.

하지만 원메이크 경기는 차량 컨디션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저렴하고 무엇보다 같은 조건안에서 경기를 진행하기에 드라이버들의 실력이 가장 우선시된다. 순수 실력이 성적을 좌우한다는 인식 때문에 드라이버 간 자존심 대결도 굉장하다.

86/BRZ 경기에는 브리지스톤, 던롭, 굿이어, 요코하마가 참여해 경쟁하는데 이들의 경쟁도 드라이버들 못지 않다. 86/BRZ 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해 매년마다 경기 전용 사이즈의 제품을 새로 출시할 정도다. 경기 타이어 규정 조건은 일반 도로에서 주행이 가능해야 하고, 적어도 타이어 전체를 두르는 세로 그루브 선이 두개 이상 있어야 한다. 타이어는 205/55R16 이라는 하나의 규격이다. 마치 예전 70년대 레이스에 출전하기 위해 자동차 제조사가 어쩔 수 없이 만든 극 소량 양산된 호몰로게이션 고성능 모델이 떠오를 정도다. *대표적인 레이스 호몰로게이션 모델로 란치아 스트라토스가 있다.

자사 타이어를 사용하는 팀들을 위해 경기 현장에 타이어 엔지니어들을 직접 투입하기도 한다. 팀과 드라이버가 타이어 성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경쟁 제조사들이 내놓은 타이어도 관찰한다. 2014년부터 시작된 경쟁을 본다면 요코하마가 2014-2015년도 우승, 이후 시즌부터 브리지스톤이 시상대를 점령하고 있다.

2017년 개막전의 프로 클래스에는 총 29명의 드라이버가 출전했다. 그 중 브리지스톤 타이어를 선택한 차량이 16대, 굿이어 6대, 던롭 5대, 요코하마 2대로 꼽혔다. 4월 개막전부터 7월 2일 개최된 4라운드까지 브리지스톤 타이어를 사용하는 드라이버가 매번 우승했지만, 이후 경쟁 타이어 제조사들이 개선된 제품을 경기에 투입해 경기 결과에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굿이어 이글 RS 스포츠 V2 스펙

7월 30일 열린 5라운드 경기에서는 굿이어가 새로운 스펙의 타이어를 투입하며 브리지스톤이 독식하던 전세를 뒤집었다. 이글 RS 스포츠 V2 스펙, 긴 이름을 가진 새로운 타이어는 이전 모델의 비대칭 패턴 설계 대신 대칭 패턴으로 택하고 컴파운드 소재도 바꿨다.

던롭 디레자 β03

6라운드 경기는 무더운 여름 시즌을 쉰 이후 9월 1일에 개최됐다. 이번에는 던롭 타이어가 칼을 갈고 나섰다. 예선 경기 결과에서 던롭이 1, 2위를 차지하고 굿이어는 3위로 밀렸다. 결승에서는 상위 5대에 포진한 드라이버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는데, 그 결과 1, 2, 3위 세명의 선수들의 차량이 결승선을 불과 0.8초 차이로 통과하는 짜릿한 승부도 펼쳐졌다. 86/BRZ 레이스 참전 이후 던롭 타이어가 첫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던롭 타이어는 이때 자사의 스포츠 라인업인 디레자(DIREZZA) β(베타)03 모델을 선보였다.

요코하마 어드반 A08B

이미 승리의 기쁨을 여러 차례 맛본 브리지스톤. 하지만 요코하마 타이어는 새로운 강자들 보다 오랜 시간 레이스에 몸담았지만 이렇다 할 성적은 내지 못했다. 한동안 정체되며 2년동안 우승하지 못했던 요코하마 타이어는 드라이버들에게도 새로운 타이어 개발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기존의 어드반 A08B의 모델체인지를 감행하여 마른 노면 접지력을 높였다.

사진 설명 : 각 제조사의 엔지니어들이 새롭게 투입된 요코하마 타이어를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사진 출처 : GAZOO Racing Youtube)

새로운 요코하마 타이어가 투입되며 몇몇 드라이버들이 성적을 위해 새로운 요코하마 타이어를 선택했다. 그렇게 시작된 7라운드 예선에서 요코하마는 상위권을 독식했다. 결승에서도 결과는 연장됐다.

물론 프로 드라이버들의 세계 답게 마지막까지 승자를 알 수 없는 숨막히는 결승전이 전개됐고 요코하마 타이어를 장착한 드라이버들은 1위부터 3위를 기록하며 결승선을 끊었다. 그리고 그들의 기록 차이는 불과 0.3초.

5라운드 이후부터 매 경기마다 3개 타이어 제조사들이 성능을 높인 타이어를 내놓고, 그것이 바로 우승의 결과로 이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나 86/BRZ 레이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던 브리지스톤에게 자극이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브리지스톤 타이어도 신형 타이어를 출시며 8라운드 레이스를 맞았다.

브리지스톤 포텐자 RE-07D

브리지스톤은 기존 제품인 포텐자(POTENZA) RE-06D를 대체하는 RE-07D를 내놨다. 트레드 패턴에 극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마른 노면에 대한 접지 성능을 끌어올렸다. 사이드월 강성을 더 높여 조종성도 강화했다. 8라운드 레이스는 태풍에 의한 폭우로 예선 경기만 진행됐지만 브리지스톤 타이어를 장착한 드라이버들이 상위 5위까지 독식하는 결과를 냈다.

세계 어느 모터스포츠 경기에서도 한 클래스에 4개의 타이어 제조사가 참여해 경쟁하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한 시즌 동안 새로운 타이어를 계속적으로 개발해 투입하는 사례도 매우 이례적이다.

일반적인 레이스 전용 타이어는 인증과 일반 도로 성능에 대한 검증이 없이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86/BRZ 레이스에서 사용하는 타이어는 일반 차량이 도로에 장착하고 나가도 무방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무모하게 보일 정도로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격하게 일어나고 있는 타이어 경쟁이 서킷 안에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경쟁에 의한 가장 큰 수혜자는 일본의 모터스포츠 동호인들이다. 서킷을 즐기는 이들에게 익스트림 스포츠 타이어의 선택지가 더 다양해진 것이다.

국내 타이어 제조사들도 이와 같은 익스트림 타이어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타이어의 R-S4, 금호타이어의 V720, 넥센타이어의 SUR4G가 해당 그룹의 타이어들이다. 하지만 각 제조사들이 하나의 무대 안에서 직접적인 경쟁을 펼치지는 않는다. 때문에 입소문에 의존해 타이어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에 오토뷰는 차후 국내 시장을 이끄는 익스트림 스포츠 타이어에 대해서도 조명을 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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