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부 긴급 제동 시스템, 정말 문제일까?

  • 기자명 전인호 기자
  • 입력 2017.11.06 17:46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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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팀은 몇몇 독자님들로부터 말리부의 긴급제동 시스템이 일반 주행에서 위협이 될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한 운전자가 서킷에서 말리부를 타던 중 긴급제동 시스템이 작동한 사례에서 파생된 내용이었다. 서킷에서 일어난 일이 마치 일반 도로에서도 위험할 수 있다는 식으로 확대돼 소문으로 번져나갔던 것.

자동차 제조사들은 사고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운전자 안전 시스템들을 개발해 왔다. ABS(Anti-lock Brake System)가 모든 대중차에 의무적으로 탑재되게끔 법제화 되었듯,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AEB) 또한 법제화를 앞두고 있다.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 또는 AEB(Autonomous Emergency Braking). 말 그대로 운전자의 조작과는 별도로 자율적으로 상황을 판단해 긴급한 상황에서 충돌 사고를 방지하려 제동을 실시하는 시스템이다.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은 전방 추돌 감지 시스템(Forward collision detection)과 제동 보조 기술(Braking assistance technology)에서 한 발 더 진보된 안전 사양이다.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은 초음파, 적외선 센서, 디지털 카메라, 레이더 등의 센서를 조합으로 전방 차량에 대한 접근이나 장애물을 감지한다. 아우디는 한발 더 나아가 A8에 레이저 레이더 기반의 라이다(Lidar)를 최초로 사용했다.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탑재된 센서로 전방 차량 또는 장애물, 보행자와의 거리를 항시 감시하다가 추돌이 예측되는 순간 차량이 운전자에게 경고한다. 이후 제동 시스템을 작동시켜 감속 또는 완전 정지를 진행한다. 긴급한 완전 정지의 경우 차량이 시스템 적으로 낼 수 있는 최대의 브레이크 성능이 발휘된다.

효과는 어느 정도 일까? 유로 NCAP은 저속 주행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방 차량의 후미 추돌 사고가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이 탑재에 의해 38% 감소된다고 밝혔다. 또한 2012년에 진행된 조사에서는 유럽의 모든 차량에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이 탑재되면 사고 발생률이 27% 줄어들고, 매년 8천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에서 판매된 볼보 차량들의 사례를 보자. 2009년에서 2015년까지를 기준으로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이 장착된 볼보 모델들은 비 장착 차량에 비해 사고율이 69% 줄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국가에서는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이 장착된 차량에 한해 보험료를 할인해 준다. 국내 보험개발원도 첨단안전장치를 장착한 차량은 사고위험도가 감소되기 때문에 2.7~12.6%의 자동차 보험료 할인요인이 있다고 발표했다. 현재 일부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할인해 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이 탑재됐다고 모든 전방 추돌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지 가능 속도와 노면 상황에 따라 제동거리에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센서가 작동하기 어려운 우천 등의 악천후 환경에서 작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조사 별로 작동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운전자는 차량에 탑재된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된 ㄱ서처럼 오토뷰팀은 쉐보레 말리부 차량의 시스템의 작동방식에 대해 독자들의 문의를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지난 10월에 진행된 말리부와 소나타의 비교 시승 시간에 이를 검증했고 그에 대한 답을 마련했다.

우선 당시 질문을 받았을 때 제조사인 한국지엠으로 문의했고 당시 담당자는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놨다. 브레이크 온도가 높아진 경우 또는 수 차례 강한 제동이 발생할 경우 차량 스스로 긴급제동을 판단해 조작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답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리부의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 작동은 브레이크 온도와 관련이 없다. 말리부에는 브레이크 온도를 차량이 감지해 판단할 수 있는 별도의 온도센서가 없다. 우리팀은 이 시험을 위해 인제 스피디움과 영암 F1 국제 서킷을 달렸다. 그리고 경우의 수를 고려해 자세제어장치와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 설정을 변경하고 반복 주행을 실시했다. 또한 제동 시스템에 최대한의 부하가 걸리도록 강한 제동을 구사했다. 실제로 서킷 주행에서 전륜 디스크의 표면 온도는 수백도 이상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두 번째 케이스는 강한 제동이 수차례 반복될 경우 긴급제동 장치가 작동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상식적으로 자동차 스스로 강한 제동을 몇 차례 했다고 차를 정지시킬 근거가 없다. 또한 서킷은 짧은 시간 내에 빠른 가속과 강한 감속을 필요로 하는 곳이다.

서킷 주행에서는 제동 순간 디스크 표면 온도가 매우 높아진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작동하게 될까?

최근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이 탑재된 새로운 차량들이 서킷에서 사고를 일으킨 사례가 늘었다. 이에 해외 일부 트랙데이 이벤트 주최자들은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이 있는 차량들을 이벤트에 참여할 수 없도록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이유는 이렇다.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을 해제해도 극한의 상황에서 개입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 운전자가 차량 시동을 끄게 되면 다시금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이 활성화 되는데 운전자가 이를 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차량들은 자세제어장치를 운전자가 해제해도 극한의 상황에 이르면 다시금 개입하는 방식의 셋업을 사용한다. 때문에 자세제어장치와 연동되는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이 다시금 작동할 확률도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서킷 주행 환경에서는 다수의 참가 차량들과 함께 달린다는 환경이 만들어 진다.

서킷을 주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빠르게 후미에 붙은 차에 양보하기 위해 제동을 했을 때,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이 탑재된 차량은 이 앞차의 움직임을 차량의 감속으로 인식하고 추돌 가능성을 감지해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을 작동 시킬 수도 있다. 참고로 전방 추돌 경고 시스템이 작동하는 속도는 차량에 따라 시속 120~200km이며, 긴급 제동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는 속도 영역은 80km/h 내외다.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이 작동 중일 때, 전방에 차량이 근접하면 안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서킷이라는 주행 환경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있는 독자라면 위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것이다. 본래 제동 포인트가 아닌 가속 지점에서 급제동하는 차량은 정말로 위험하다. 뒤따르는 차량들은 해당 지점에서 앞 차량이 제동할 것을 예측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위 상황이 발생하는 위치가 차량 속도가 가장 높은 코너 진입 직전이라고 생각하면 이로 인한 사고 파장은 상당히 커진다. 특히 긴급 제동 시스템이 탑재된 차량의 경우 추돌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면 자동으로 제동력을 최대한 끌어내도록 설정됐기 때문에 갑작스런 제동에 후미 차량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전방 차량에 의한 AEB의 갑작스러운 작동은 뒤따르는 후미 차량과 추돌 사고 확률을 높인다.

위 상황을 일반도로로 가정해보자.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쭉 뻗은 직선구간의 고속도로를 주행하던 중 전방 차량이 갑작스레 최대한의 제동력으로 서버리는 상황과 같은 것이다. 다른 추측을 해보자. 서킷에 배치된 구조물 인식이다. 연석 혹은 서킷 구조물을 전반에 두고 근접하며 제동을 할 때도 시스템은 이를 위험 요소라 판단해 긴급제동을 활성화 시킬 수도 있다. 연석을 앞두고 강한 제동을 할 경우 센서가 아래쪽을 향하며 실제 구조물보다 크게 인식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 특히 구조물이 50m 내외의 거리에 위치한다면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갑작스러운 차선이탈방지 기능의 작동은 추월 의지가 있는 후미 차량과 사고 위험을 높인다.

긴급제동과는 관련 없지만 차선이탈방지 기능도 서킷에서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 보통 서킷 도로의 경계는 공통적으로 일반 도로와 동일하게 흰 페인트로 실선을 시공한다. 차선이탈방지 또는 유지 기능이 탑재된 차량을 운행할 때 이 기능을 해제하지 않고 실선에 근접할 경우, 강제적으로 조향을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 이때 근접 차량이 있을 경우 사고 위험이 높아지므로 차선유지기능도 반드시 해제해야 한다. 서킷 주행에서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기 위해 노면의 모든 폭을 모두 사용해야 하는 주행이 이상적인 만큼 페인트가 칠해진 서킷 경계까지 주행하는 일도 매우 빈번하다.

서킷 노폭의 가장자리에는 페인트가 시공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서킷 주행 때는 이유를 막론하고 반드시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을 해제하고 주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TCS만 해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도 안전장비는 정상 작동한다.

각종 안전장비의 해제는 나의 안전과 상대방의 안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조치다. 서킷에서의 사고는 각자 본인들의 책임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레이스가 아닌 일반 서킷 주행에서 사고라면 사고를 발생시킨 상대방의 고의성, 부주의함을 입증해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다.

결국 말리부 브레이크 이슈는 서킷 환경에서 해제되지 않은 액티브 세이프티에 의한 일종의 헤프닝으로 해석된다. 아무리 좋은 장비라도 사용법을 잘 숙지해야 정상적인 성능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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