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완성도는 자신감! 하지만 가격은 자만?

메르세데스-벤츠가 신형 E-클래스를 내놓은 이후 프리미엄 시장의 주도권이 벤츠로 넘어갔다. 마침 시기도 좋았다. BMW의 인기 모델 5시리즈가 모델 체인지를 앞두고 한 풀 꺾였으며 A6는 디젤 게이트, 서류 조작으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규어 XF와 렉서스 GS, 캐딜락 CTS의 존재감 역시 해외만큼 크지 않다.

우리 팀은 이미 E300을 통해 신형 E-클래스의 완성도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E300은 가솔린 입문형 모델이다. 때문에 E-클래스의 중심을 잡는 것은 E400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가격 장벽이 높아 보인다. 9,870만 원짜리 E-클래스… 가격이 높아질수록 우리 팀의 평가 기준도 까다로워지기에 조금 더 신중하게 E400에 다가서야 했다.

국내 사양의 E400은 4륜 시스템인 4MATIC를 기반으로 각종 옵션이 모두 추가된 풀옵션 구성으로 판매된다. 하지만 외적으로 살펴봤을 때 뭔가 E400만의 차별점은 찾기 힘들다. E300과 동일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E-클래스에는 2가지 디자인이 제공된다. 스포티한 감각의 아방가르드, S-클래스를 연상시키는 익스클루시브 등이다. 도로 위를 다니는 E-클래스의 대부분은 익스클루시브 모델이다. 당연히 익스클루시브 테마로 꾸며진 E400 역시 하위 모델과 차이점이 사라지는 것이다.

익스클루시브 디자인 테마의 특징을 꼽아보자. 엔진 후드 위에 세 꼭지별 엠블럼과 S-클래스를 연상시키는 그릴 디자인이 눈에 띈다. 실내에는 S-클래스에나 적용되는 디지뇨 트림을 적용해 최상급 가죽이 둘러싼다. 햇빛은 물론 공기 상태와 습도까지 감지하는 3존 공조장치도 기본이다. 전 후 좌우를 보여주는 360도 카메라도 갖췄다. 여기에 적용된 카메라는 상당한 고해상도를 확보했는데 덕분에 야간에도 후방 차량의 번호판도 쉽게 읽을 수 있다.

12.3인치 디스플레이를 2개나 사용한 부분은 첨단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요소다. 메뉴부터 기능 설정까지 많은 부분을 조작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하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소비자들에게 어렵게 느껴질 듯하다.

기본 개념을 설명하자면 스티어링 휠 왼쪽 버튼은 왼쪽 모니터를, 오른쪽 버튼은 오른쪽 모니터를 조작하는 용도로 쓰인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대부분의 기능을 2~3번 조작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현대 기아차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만큼 직관적인 것은 아니다. 경쟁사 BMW나 아우디보다 많은 개선이 있는 수준으로 보면 된다.

13개의 스피커를 가진 부메스터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도 기본이다. 여기에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뒷좌석 승객을 위한 에어백이 내장된 안전벨트도 갖춰진다. 구성만 따지고 보면 S-클래스 부럽지 않다. 차체 크기를 조금 줄이되 S-클래스의 구성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 E400이라고나 할까?

E400 4MATIC의 주요 차이점은 엔진이다. E300까지는 4기통 2.0리터 엔진이 쓰이지만 E400부터는 V6 3.0리터 터보 엔진으로 바뀐다. 엔진 출력은 333마력, 최대토크는 48.9kg.m로 엔진 성능도 한층 강화된다. 변속기는 다임러의 9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하며, 4륜 구동 시스템을 통해 동력을 전달한다.

이 엔진은 이미 CLS400을 통해 경험한 바 있다. 또, 이 엔진을 튜닝해 AMG 43 시리즈에 얹기도 한다. 엔진의 성능을 떠나 요즘 같은 시대에 6기통 가솔린 엔진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호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CLS400의 경우 7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하지만 E400은 9단 자동변속기의 탑재로 한층 촘촘한 변속을 해나간다. 최대 가속력을 끌어낼 때 차이가 더 커진다. CLS400이 진득하게 속도를 올리는 스타일이라면 E400은 보다 바쁘게 변속하며 조금이라도 빨리 가속하려는 모습이다. 물론 가속력에서도 조금 차이가 난다. 우리 팀이 테스트한 CLS400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5.67초 만에 도달했다. 반면 E400은 5.58초라는 기록을 보였다.

사실 E-클래스에서 제로백 5초대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그보다 넉넉한 힘으로 편안한 운전이 가능하다는데 의미를 둬야 한다. 당연히 옆 차를 추월하기 위해 가속페달을 많이 밟지 않아도 된다. 엔진 회전수를 많이 높일 필요도 없다. 살짝만 가속페달을 밟아도 너무나도 쉽게 가속이 진행되기에 추월이 쉽다. 빠른 속도로 오르내리는 것도 별일 아니라는 듯 너무나도 쉽게 해낸다.

E400은 고급 모델답게 E300에서의 옵션 사양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반자율 주행이 가능한 드라이브 파일럿은 물론, 주차 위치만 지정하면 전진 후진까지 스스로 해내며 주차를 해준다. 파킹 파일럿 기능 덕분이다. 차고 조절과 주행모드 설정이 가능한 에어 서스펜션도 E400에서는 기본이다.

반자율 주행 시스템인 드라이브 파일럿(Drive Pilot)이라는 기술은 고속도로는 물론 시내에서도 앞차와 거리를 유지시켜주며 차선까지 지켜낸다. 스티어링 휠을 잡지 않아도 자동차 스스로 주행한다. 최대 60초까지 작동하기 때문에 경쟁 모델의 반자율 주행 시스템 대비 활용폭도 넓다.

참고로 벤츠의 시스템은 차간 거리를 유지할 때 브레이크를 조금 급박하게 작동시키는 성격이다. 이는 탑승자를 불안하게 할 수 있다. 때문에 시스템의 차간거리 설정을 조금 넓혀 설정하는 것이 추천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진입하면 조금은 유난스럽게 경고음을 전달한다. 비프음과 동시에 중앙에 위치한 메인 디스플레이가 다른 사물이 매우 근접해 있음을 카메라로 보여준다. 때문에 거리 감지 센서의 작동이 호들갑스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중앙선 인식률도 높다.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게 중앙선에 다가갔다고 판단할 경우 브레이크, 스로틀, 스티어링을 통제해 차체의 진행 방향을 변경시킨다. 만약 운전자가 차선을 변경할 때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으면 차량이 차선을 되돌리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물론 반자율 주행 모드가 완벽하지는 않다. 코너와 고저차가 동시에 존재하는 도로의 점선 등은 인식하지 못한다. 터널에서 바로 빠져나왔을 시 조도가 급격하기 변화하는 순간 인식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완전한 자율 주행 시스템 이전까지 반자율 주행 기능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기능으로만 활용해야 한다. 또, 이 기능을 사용하다가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다.

직접 시연할 수는 없었지만 다양한 사고 예방 장치도 갖췄다. 긴급제동 장치는 교차로에 진입하는 차량이나 보행자, 자전거까지 인식한다. 돌발 상황에서 스티어링 휠을 급하게 조작하면 차량을 안전하고 빠르게 회피시켜주는 기능도 탑재된다.

뒤에서 차량이 충돌하는 경우 1차적으로 비상등을 빠르게 점멸시키고 이후 브레이크 시스템의 압력을 높여 차량이 앞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도 있다. 만약 측면을 받히는 사고가 발생하면 시트가 미리 탑승자를 밀쳐내면서 충격을 감소시켜주는 기능까지 추가됐다.

앞좌석에는 안전을 위한 새로운 기능이 숨겨져 있다. 프리-세이프 임펄스 사이드라는 기술은 측면 충돌을 미리 감지해 시트가 탑승자를 밀어내 충격을 조금이라도 감소시켜 주도록 한다. 프리-세이프 사운드는 사고 발생 전에 미리 큰 소음을 탑승자들에게 들려줘 청각을 보호해주는 기능이다.

달리는 첨단 전자기기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은 E400. 그럼 지금부터 달려보자.

E300처럼 컴포트 모드는 편안함을 제공해 준다. 에어 서스펜션의 탑재로 부드러운 승차감이 한층 더 부각되는 듯하다. 스포츠+ 모드로 설정하면 지상고가 낮아지고 코너링에 적합하도록 서스펜션 설정을 탄탄하게 바꾼다. 사실 탄탄해졌다고 해도 변화가 큰 것은 아니다. 코너를 빠르게 돌아나가도 컴포트 모드 대비 조금 더 유연한 느낌을 줄 뿐이다. 어디까지나 E400은 고급스럽고 편안함을 지향하는 세단이다.

그렇다고 E400의 서스펜션이 코너에서 흐느적거리는 것은 아니다. 1,910kg에 이르는 무게를 가졌음에도 든든하게 차체를 받아내기 때문이다.

차량의 기본 운동 특성은 언더스티어를 시작으로 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언더스티어를 좋아하는 벤츠니까. 또한 주행 안전장치인 ESP를 비활성화시켜도 차량에 급격한 움직임이 발생할 경우 다시금 개입하기 시작한다.

의외로 4륜 구동 차의 느낌이 크지는 않다. 코너에서 가속페달을 많이 밟으면 언더스티어 성향이 짙어진다. 하지만 이후 보다 많은 동력을 후륜에 보내 전반적으로 평이하게 코너를 통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다임러의 9단 자동변속기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짧은 기어비를 바탕으로 성능을 높였으며, 넓은 기어비를 활용해 효율도 높였다. 9단 2,000rpm 내외가 시속 120km 정도를 커버해내고 있다. 변속기의 반응 속도 역시 빠르다. 속도와 반응성만 따지면 BMW에서 조율한 ZF 8단 스포츠 변속기 부럽지 않을 수준이다. 과거에는 3단에서 2단으로 내려올 때 이따금씩 변속 충격을 보였지만 이번에는 그런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는 약 36.49m였다. 짧은 제동거리를 기록할 정도로 수준급의 성능을 보였다는 점도 좋았고 브레이크 페달을 제어하는 감각도 만족스러웠다. 또, 제동 테스트가 반복되어도 쉽게 지치지 않는 성능 역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특이 사항이 발견됐다. ESP를 해제시킨 상황에서 제동 테스트를 진행하면 후륜 쪽이 잠기면서 미끄러지는 현상을 보였던 것. 바퀴가 미끄러졌다는 것은 그만큼 제동거리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E400은 후륜 휠이 잠겼을 때 최대 50m에 가까운 제동거리를 보이기도 했다. 이는 운동성능에 대한 신뢰성을 저하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부분이 해당 테스트 차량만의 문제일 수도 있다. 참고로 ESP가 정상 작동할 때는 좋은 수준의 안정감을 보였다.

6기통 엔진을 사용한 만큼 소음과 진동 부분에서도 만족스러운 감각을 전달한다. 아이들 상태에서 측정된 소음 수준은 약 34.5 dBA. E300이 36.5 dBA을 보였으니 조금 더 조용한 것이다. 참고로 렉서스 LS460이 35.0 dBA를 기록했으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될 것이다. 시속 80km의 속도로 주행하는 상황에서는 약 58.5 dBA의 소음을 보였다. E300 보다 넓은 사이즈의 타이어를 사용하며 노면 소음이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신차에서 보기 힘든 3리터의 엔진을 사용하고 4륜 구동 시스템까지 갖췄음에도 연비는 수긍할만한 모습이었다. 시속 100~110km 주행 환경에서는 약 14km/L, 평속 80km 정속주행 시에는 약 15.3km/L의 연비를 나타냈다. 평속 15km 도심 정체구간 시뮬레이션 테스트 결과는 약 6.1km/L 수준이었다. 평속 15km 구간에서는 2.0리터 가솔린 엔진과 유사하거나 조금 부족한 정도를, 나머지 구간에서는 3.0리터 수준의 연비를 기록해 냈다.

1.9톤의 무게와 파워트레인의 성능을 생각했을 때 수긍할 수 있는 연비다. 9,870만원의 가격을 갖는 차량을 구입하면서 연비에 불만을 토로할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연비를 원한다면 E-클래스 디젤 버전도 있으니까.

우리 팀은 여전히 E-클래스의 가격이 다소 높다는 입장이다. 차가 좋아질수록 가격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현재 벤츠의 가격은 수긍할 수준 보다 조금 더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E-클래스를 구입을 위해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심지어 E400은 6개월 이상 기다려야 구입할 수 있다.

그동안 프리미엄 중형 세단= BMW 5시리즈라는 공식이 통했다. 하지만 이 공식의 답은 E-클래스로 바뀌어버렸다. 불과 1년 만에 발생한 결과다. 그만큼 E-클래스의 완성도는 높았고,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할 대부분의 것을 갖추고 있었다. E-클래스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BMW가 7세대 5시리즈를 내놨기 때문이다. E-클래스가 우리 팀원들의 눈높이를 높였으니 신형 5시리즈 테스트에서는 조금 더 높아진 기준이 제시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오토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