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륜구동 이야기] 5부, 페라리 4RM 이야기

  • 기자명 뉴스팀
  • 입력 2013.10.14 13:1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1년 제네바 모터쇼. 수많은 신차들의 향연 속에서 유독 페라리 전시장에 사람이 몰려들었다. 이유는 페라리가 내놓은 FF라는 신 모델 때문이다.

4명이 탈 수 있는 공간과 4개의 바퀴를 굴린다는 뜻으로 ‘Ferrari Four’, 즉 FF로 이름 붙여진 신모델은 페라리의 루카 디 몬테제몰로(Luca Cordero di Montezemolo) 회장의 요구에서 비롯되었다. 가족 4명을 태울 수 있고 458의 핸들링과 599GTB의 가속력, 그리고 각종 장비를 수납할 수 있는 넉넉한 트렁크를 갖춘 모델을 개발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 완성된 형태가 바로 지금의 FF다. 외관의 독특한 슈팅브레이크 형식도 쿠페의 구성을 갖추면서 4인이 탑승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만족시킨 해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페라리가 개발한 새로운 4륜 시스템은 FF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페라리는 FF를 발표하면서 ‘페라리 최초의 4륜구동 시스템을 탑재한 모델’이라고 강조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FF는 4륜 시스템을 탑재한 2번째 모델이다. 최초의 모델은 1987년 6월 컨셉트카의 형식으로 공개된 ‘408 4RM’. 현행 FF에도 적용되고 있는 4RM은 이탈리아어로 4륜구동을 뜻하는 4 Ruote Motrici의 약자다.

408 4RM은 페라리에서 새로운 경량화 섀시기술과 4륜 시스템을 시도한 실험적인 모델이다. V8 4.0리터 엔진을 차체 중앙에 얹고, 후륜과 결합된 변속기는 가느다란 센터터널을 통과해 앞바퀴로 동력전달이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페라리는 구동배분을 위한 새로운 유압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408 4RM은 차량 자체가 실험적인 성격이 너무 강했고, 당시 4륜 시스템의 적용은 특유의 주행 성능을 해치는 요소로도 작용했었다는 약점도 갖고 있었다. 스테인리스 섀시와 알루미늄 접합 섀시 2종으로 제작된 408 4RM은 현재 페라리 본사의 박문관에 전시돼있다.

24년만에 페라리가 FF를 통해 다시 들고나온 4RM 시스템은 흔히 말하는 ‘혁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4륜 시스템은 우선 엔진에서 발생된 동력이 변속기를 거치고, 여기서 센터디퍼렌셜 혹은 다판 클러치를 통해 앞뒤 바퀴로 동력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앞뒤 바퀴로 동력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앞바퀴와 뒷바퀴에 결합되는 드라이브샤프트와 별도의 디퍼런셜이 추가된다. 이는 무게 증가뿐 아니라 복잡한 동력전달 과정으로 효율성이 악화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4RM 시스템은 구조 자체가 기존의 4륜시스템과 전혀 다르다. 먼저 레이아웃 자체는 일반적인 프런트 미드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엔진은 앞바퀴 뒷편에 위치하고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는 후륜 구동축과 맞물린다. 그리고 엔진 앞부분에 또 하나의 2단 변속기가 추가되어 앞바퀴 구동축과 연결되는 구조다.

드라이브샤프트가 1개밖에 없고, 좌우가 대칭 구조를 이룬다는 점에서 스바루의 S-AWD(Symmetrical AWD) 시스템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대신 S-AWD가 1개의 변속기로 앞바퀴와 뒷바퀴로 동력을 나눴다면, 4RM은 2개의 변속기가 앞바퀴와 뒷바퀴를 각각 제어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페라리의 프런트미드십 구조를 유지하면서 무게증가를 최소화 할 수 있는 해법인 것이다. 또, 센터디퍼렌셜이나 드라이브샤프트가 필요 없고 구조가 단순해 기존 시스템에 비해 무게가 절반에 불과하다.

엔진 앞에 맞물려있는 또 하나의 2단 변속기는 PTU(Power Take off Unit)라고 불린다. 기본적인 개념은 엔진에서 생성된 동력이 앞뒤로 전달되어 4개의 바퀴를 굴린다는 것으로, 앞바퀴 구동축은 PTU가, 뒷바퀴 구동축은 7단 변속기가 담당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개의 엔진에서 발생되는 동력을 2개의 변속기가 어떻게 나눠서 활용할 수 있을까? FF가 1단을 넣고 출발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는 당연히 1단에 맞춰지고 PTU도 1단에 맞춰지면서 4개의 바퀴에 구동력이 전달된다. 7단 변속기가 2단으로 변속을 해도 PTU는 1단에 머물러 지속적으로 앞바퀴에 동력을 전달한다.

7단 변속기가 3단으로 변속을 하면 PTU는 2단으로 기어를 바꾼다. 다시 한번 4단으로 바꿔도 PTU는 2단에서 고정되어 동력을 전달한다. PTU 1개의 기어가 변속기의 2단 기어를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PTU의 기어비는 7단 변속기보다 6% 긴 기어비를 갖는다.

이후 5단부터 7단까지는 PTU 내부의 클러치가 떨어지면서 앞바퀴에 동력을 전달하는 것을 멈추고, 차량은 후륜구동으로 바뀌게 된다. 어디까지나 4RM 시스템은 눈길 혹은 빗길에서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PTU에는 2단 기어 이외에 후진기어도 갖춰 구덩이에 빠지는 상황에 대응했다.

PTU에는 변속 기어 이외에 다판클러치도 갖추고 있다. 일반적인 4륜 자동차에 탑재된 다판클러치가 앞바퀴와 뒷바퀴의 구동력을 배분했다면, PTU에 탑재된 다판클러치는 좌우 바퀴의 구동력을 배분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언더스티어가 발생하면 안쪽 바퀴의 구동력을 낮추고 바깥쪽 바퀴의 구동력을 높임으로써 토크벡터링 시스템의 효과를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판클러치 특성상 독립적인 구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디퍼런셜도 필요 없다.

페라리의 4RM은 PTU라는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으로 기존의 복잡했던 구조를 단번에 해결했다. 이 시스템 자체만으로 기존 4륜 시스템 대비 50%의 무게를 감소시킬 수 있었으며, 전후 47:53이라는 무게배분도 실현시킬 수 있었다. 또, 일정 조건에서는 앞바퀴의 어떠한 간섭도 없기 때문에 뒷바퀴 굴림 특유의 핸들링도 만족시킬 수 있다.

4RM 시스템은 5가지의 주행모드 설정을 지원한다. 스노우(Snow) 모드를 설정하면 4RM과 안전장비들이 차량의 미끄러짐을 최대한 막아준다. 웨트(Wet) 모드는 스노우 모드보다는 낮은 수준의 차량제어가 이루어지며, 컴포트(Comfort) 모드는 일상적인 주행 성격으로 맞춰진다. 이후 스포츠(Sport) 모드와 ESC 오프(ESC Off) 모드의 순서로 차량의 성격은 달리기에 집중되어 설정된다.

페라리의 4RM 시스템은 기능적으로는 분명히 제한된 4륜 시스템이라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삭제하고 필요한 부분마저도 ‘고성능’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 4RM은 어쩌면 가장 페라리다운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오토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